극과 극은 통한다. 여기 두 명의 남자가 있다. 둘은 다른 듯 똑같다. 가족을 제쳐두고 긴박하게 일한다. 암호를 통해 실체를 확인한다. 그러나 둘은 한참이나 다르다. 서로가 적이다. 한 명은 남파간첩(강동원·지원 역)이고, 다른 한 명은 국정원 대공3팀 요원(송강호·한규 역)이다. 그런데 둘은 순식간에 같은 위치로 전락한다. 단독 실행한 작전에서 대규모 사상자를 낸 한규는 국정원에서 잘리고, 작전에 실패한 지원은 오도 가도 못하고 숨어지내는 신세가 된다. 한규는 지원 때문에 실패했고, 지원은 한규 때문에 실패했다. 같은 듯 다른 둘의 뫼비우스띠 같은 관계는 새로운 모양의 뫼비우스 모양을 이룬다. 6년 뒤 지원은 이주노동자가 많은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고, 한규는 도망간 외국인 며느리를 잡으러 다닌다. 둘은 변두리 공장에서 극적으로 만난다. 서로를 단번에 알아보지만 그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 전락은 둘의 손을 잡게 한다. 한규는 자신의 흥신소 일을 도와달라며 지원을 스카우트한다. 여전히 그들 사이에 뾰족한 극점은 남는다. 어쨌든 이것도 한마디로 통한다. 그들은 남과 북의 ‘극우’다. 이 두 극우가 동거를 시작한다. 장훈 감독의 다.
장훈 감독은 를 통해서 아주 다른 두 남자가 닮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배우 강지환(수타)과 그의 액션 상대역으로 영화에 입문하는 깡패 소지섭(강패)이 주인공이었다. 촬영장에서 스타는 진짜 ‘연기’를 하고 깡패는 ‘진짜’ 연기를 한다. 촬영장 밖에서 스타는 깡패에게 깡패처럼 굴고, 깡패는 진짜 싸워볼 테냐며 촬영장 안 스타의 포지션을 훔친다. 그렇게 둘은 실제 싸움이 벌어지는 영화와, 영화의 현실이 옮겨가는 실제를 통해 조금씩 섞여 들어간다. 결국 둘은 유명한 진흙탕 싸움 장면에서 뒤섞인다. 그들의 얼굴과 몸은 진흙으로 모두 지워져 있다. 서로의 얼굴을 향해 팔을 뻗은 두 남자의 형체는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영화의 결말에는 극적인 화해도 준비해놓았다.
도 서로의 차이를 지워나가는 영화다. 그리고 그를 통해 명백한 주제를 준비해놓았다. 이미 제목에도 드러나 있지 않은가.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라는 뜻으로.
“잊었단 말인가 나를, 타오르던 눈동자를… 사랑을 하면서도 우린 만나지도 못하고… 서로가 헤어진 채로 우린 이렇게 살아왔건만….” 영화의 첫 장면 비가 내릴 때 흐르는 노래다. 남파간첩이 암호로 사용하는 노래는 남궁옥분의 . 한용운의 ‘님의 침묵’의 침묵한 님이 절대자·국가라고 ‘돼지꼬리 땡땡 용꼬리 용용’했던 우리에게 이 ‘재회’하는 사람이 한때 사랑했던 남녀의 은유로만 다가오랴.
영화는 남북관계에서 가장 반목하는 두 지점의 대표자를 내세웠다. 송강호는 국정원을 나온 뒤에도 ‘간첩 포상금 1억원’에 목맨다. 국정원 후배와 은밀히 내통한다. 를 구독하고(화면에 ‘PD수첩은 오류수첩이었다’는 제목이 선명하게 보인다) “PD라는 새끼가 빨갱이니…” 등의 발언을 내뱉는다. 지원은 찾아간 김일성대학의 옛 은사가 자수를 권하자 “저에게 사상교육을 시켰던 게 당신”이라며 거부한다.
화해는 서로의 차이를 눅이면서 온다. 화해의 동력은 ‘밥벌이의 괴로움’이다. 지원은 생계형 간첩이고, 한규는 생활형 흥신소장다. 한규는 국정원에서 잘리는 순간 “밥벌이하려고 간첩 잡는 놈 때문에 우리가 보수·꼴통 소리를 듣는다”는 말을 듣는다. 그가 현상금에 목매는 것도 이혼한 아내와 딸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서다. “빨갱이가 돈을 밝혀”라는 말을 듣는 지원도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 둘 다 국가와 민족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아버지다.
화해의 와중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잡아들인 외국인 며느리를 차에 태우고 수갑을 채우자, 지원은 달리는 차에 왜 수갑이 필요하냐고 항의한다. 공장에서 지내며 베트남 말을 배운 지원은 마구잡이가 아니라 설득을 통해 며느리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고맙다는 순박한 농촌 아저씨에게는 사례금 대신 닭과 배추를 선물로 받기도 한다. 또 다른 약자를 통한 에둘러 가는 길은 뫼비우스 띠의 아이러니를 푸는 방법이다.
비장한 대립, 절박하면서도 코믹한 개인
의연한 대립과는 다른 절박하면서도 코믹한 개인의 속사정. 베트남 청년들과 싸울 때 한규가 빼든 총과 비슷하달까. 한꺼번에 몰려드는 베트남 청년을 향해 한규가 총을 드는데 어설프다. 베트남 청년들은 한국어로 “가짜가짜?”라며 숙덕댄다. 총은 가스총이다. 가스총은 무력하고 베트남 청년들은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가 머리를 쥐어뜯고 함께 무너져내려 모래 위를 구른다. 배경으로는 코믹한 음악이 흐른다.
의 주제는 이렇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 액션을 통해서도 구현된다. 비장하지만 코믹한. 차가 질주하는 시장 골목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다. 차는 골목길을 주춤주춤 더듬더듬거리다가 벽에 박고, 초라하게 일그러진 뒤 식식거린다. 너덜너덜한 방음막이 그대로 보이는 고가도로에서 밀린 차들은 빵빵댄다. 집 나간 며느리를 잡아들이는 ‘나름’ 추격신은 농촌의 한가로운 풍경에서 우스워진다.
극도로 세련된 강동원의 얼굴은 영화에선 순박하게 보인다. 의외다. 송강호는 영화에서 특유의 활기를 되찾았다. 5분 넘게 원맨쇼를 하는데도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송강호의 얼굴은 북한군 장교였던 와 시골 형사였던 을 합친 것 같다. 두 영화 다 500만 이상이 들었다. 는 2월4일 개봉한다. 설 대목을 겨냥했다는 말이다. 한규와 지원의 운명이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의 긴장 여부에 달렸듯 영화가 그러할 듯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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