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드라마의 파급력은 강력하다. 텔레비전 시청은 여성의 42.8%, 남성의 39.6%가 선호하는 여가활용 방법이며, 그중 드라마(37.1%)의 선호도가 가장 높다. 드라마는 방송사의 수입과 직결되는 문화상품이자, 가장 많은 공적 관심이 촉발되는 장르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드라마는 이미 현실의 일부이다. 여성 시청자의 경우 영향력은 더 커진다. 드라마 선호도는 여성(61.6%)의 경우 남성(10.9%)에 비해 압도적이며, 몰입도도 훨씬 높다. 제작자들은 드라마 소비자인 여성의 욕구를 반영하려 한다. 그 결과 ‘캔디렐라’의 성공 스토리는 밑밥이요, 여기에 ‘꽃남’과 ‘근육남’의 전시가 각축을 이룬다. 전통적인 남성 장르로 치부돼온 사극 역시 방송 3사( ) 모두 여성 권력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렇다면 드라마의 성차별적 불평등은 논의될 필요가 없을까?
여성적 연대 박탈한 신데렐라 스토리여기 생생한 반례로 드라마 (문화방송, 월·화 밤 9시55분)가 있다. 는 무려 삼중적으로 반여성적이다.
첫째, 신임 셰프(이선균)는 여성 요리사 4명을 해고한다. 사유는 각기 달랐지만,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며 그 자리를 남성 요리사(한 명은 방금 들어온 주방보조였다)들로 메우는 장면에서 해고가 성차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명백한 위법이다. 헌법엔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32조 4항)고 나와 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한 사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11조·37조)에 명시돼 있다.
여성에 대한 셰프의 악감정은 개인적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니 이해하라고? 만약 군대 고참에게 괴롭힘을 당한 그가 “내 주방에 전라도 놈은 없다”는 말을 해대며 해고했다면 드라마 안팎에서 이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 여성 해고는 지역 차별 못지않은 정치 현실이고, 그 역사적 산물로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드라마가 해고를 정당화한 건 아니지 않느냐고? 여성노동자의 대응을 보자. 사내연애를 하다 둘 다 해고됐을 때, 여성노동자가 남자친구는 놔두고 자기만 해고해달라 사정하자 받아들여진다. 구조조정 때 사내 부부 중 여성노동자를 우선 해고하는 걸 연상시키는 이 에피소드는 한편으로 여성노동자 스스로 노동권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그린다. 해고된 여성들은 복직을 위한 어떠한 노력 없이 새 일자리를 알아볼 뿐이며, 여주인공(공효진) 역시 경력을 낮춰 주방보조 자리로라도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다가 콘테스트를 거쳐 재취업된다.
둘째, 권석장 PD는 “남자들만 있는 주방에 여자 하나가 들어가는 설정을 만들다 보니, 여자들이 다 해고되는 스토리가 됐다”(1월14일 인터뷰)고 밝혔다. 부당해고를 전제하지 않고는 홍일점 스토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이미 여성들은 다양한 영역에 진출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은 여성을 업무의 파트너로 인식하기보다는, 남성 상사가 보호해주어야 할 존재나, 사적 관계 속에서의 연애 대상으로만 상상한다. 는 이런 여성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는 여성적 연대를 철저히 박탈하면서 시작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여성 선배들은 해고됐다. 누명까지 쓴 그녀에게 셰프는 자신을 구제해줄 유일한 사람이다. 1회에서 자신을 해고한 셰프가 “나랑 사귀자”고 말했을 때 그녀는 어리둥절해하지만, 5회에서는 그녀 스스로 그에게 뽀뽀한다. 그간 셰프는 머리를 만지거나 몸을 밀착하는 등 온갖 성희롱을 했지만, 이제 그녀는 이를 사랑으로 인식한다. 관계가 진전될수록 동료들은 셰프가 그녀를 특별히 비호한다고 여길 것이고, 그녀의 성공은 ‘소파 승진’으로 비웃어질 것이다. 제작진은 홀대받던 여주인공이 셰프에게 사랑받으며 직업적으로 성장하고, 여성에게 악감정이 있던 셰프가 여주인공과의 사랑으로 인식이 전환되면 성공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그리 간단치 않다. 도제훈련을 요하는 전문직 여성이 겪는 고립과 음해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조수-사수’ 관계에서 배척될 것인가, 상사와의 사적 관계를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이중 구속을 제시하고, 실패하면 무능이요, 성공하면 ‘소파 승진’이 되는 끔찍한 현실을 로맨스로 물타기하는 것이다.
오빠 손을 잡으라, 구원을 얻으리라
셋째, 그녀에겐 “실땅님~”을 넘어서는 막강한 존재가 있다. 3년 전 입사 때부터 그녀를 ‘키다리 아저씨’처럼 지켜보던 숨은 사장이다. 단골을 가장해 “당신의 요리가 섹스보다 좋다”며 성희롱을 하거나, 그녀에게 불현듯 나타나 등 두들겨준다. 마치 올림포스 산정의 신처럼, 전지전능하며 현실 관계로부터 초월해 있다. 셰프와의 비대칭적 관계만으로 모자라 사장의 핵우산까지 씌워주며 응원하는 ‘캔디렐라’의 억지 성공 스토리를 보며 어떤 감흥을 느껴야 할까? 여성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사적 존재로 환원시킨 뒤 ‘오빠의 손을 잡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팔자가 구원을 얻으리라’는 ‘오빠교’에 귀의해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이 이 드라마의 교의인가? “오빠 못 믿니? 이제 매 맞자”를 외치던 느끼한 남자 ‘리마리오’보다 더 느끼한 드라마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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