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요즘 청춘이다. ‘학업 평점 4.0, 토익 점수 900, 기업 인턴 수료 경험 다양….’ 화려한 스펙대로라면 뭐든 할 수 있지만, 능력을 펼칠 기회가 없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붉은 악마’가 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던 당당한 20대 청춘들은 ‘88만원 세대’라는 오명을 쓰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백수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놀고 있는 ‘슈퍼맨’의 비애다.
청춘의 본질은 ‘퀴즈’
뮤지컬 의 주인공인 대학원생 민수(이율)도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이다. 유일한 가족인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민수는 빚더미에 앉게 된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풍족하게 살 수 있었던 건 남의 돈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그는 집을 잃고 고시원에 들어가게 된다. 고시생 대신 밑바닥 인생만 가득한 고시원. 관점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라 믿는 민수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시급 4천원의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활, 화려한 스펙보다 집안 배경이 중시되는 취업 면접에서의 낙방을 겪으며 그는 좌절한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들어간 인터넷 퀴즈방만이 그의 안식처다. 초라한 ‘민수’를 잊고 퀴즈왕 ‘롱맨’이 되니 사랑하는 연인도 생긴다. 환상이 달콤할수록 현실은 더 냉혹하게 다가온다. 돈이 없어 고시원에서 쫓겨난 민수는 수상한 남자의 제안으로 ‘퀴즈만 잘 풀면 부와 명예가 주어진다’는 퀴즈 회사에 들어간다. 현실과 격리된 이곳에서 민수는 롱맨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07년 출간한 김영하의 동명 소설 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은 청춘의 본질을 ‘퀴즈’에서 찾는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과정인 퀴즈를 통해 갑자기 세상과 맞닥뜨리게 된 청춘이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해진 정답만 말해야 하는 퀴즈 회사가 속한 환상, 세상이 원하는 것이 정답인 비상식적인 현실. 두 세상이 가진 공통점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고 한 찰스 다윈의 말뿐이다. 현실에서도, 환상에서도 민수는 정답을 찾기 위한 수많은 물음표 속에 갇힌다. 두 세상이 강조하는 건 정답만을 위한 삶이다. 때론 오답을 정답으로 눈속임하며 대세에 따를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거짓이 진실로 변하는 마법은 돈이 부린다. 위험은 여기에 있다. 사회에 적응해 대세를 따를 거면 물음표를 가슴에 품으면 안 된다. 그저 하라는 대로, 이끄는 대로 따라야만 한다.
어느덧 뮤지컬의 엔딩. 오프닝에서 현실을 직면하며 좌절에 빠졌던 민수는 어떻게 됐을까? 오프닝과 엔딩에서 민수의 현실은 크게 달라져 있지 않다. 그저 그가 인생에 물음표를 던지며 살 준비가 되었다는 희망만 읽힌다.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환상에서 빠져나와 현실이란 거울 앞에 선 것만으로 관객은 그에게 박수를 보낼 뿐이다. “청춘은 문제를 만드는 시간,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란 민수의 마지막 노래가 불운한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좌절하지 말고 힘을 내라고 말하는 듯하다.
상징적인 영상과 빛으로 원작 소설 형상화소설이 깊이 있는 문장으로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었다면 뮤지컬은 인물의 감정과 머릿속 상상을 무대에 끌어내 표현한다. 고시원의 쪽방, 인터넷 퀴즈방 등 현실과 가상을 뛰어넘는 공간도 연회색 큐브로 담아 무대에서 재현한다. 상징적인 영상과 빛으로 채운 무대, 빠른 속도로 눈과 귀를 훑고 지나가는 인터넷 용어들이 컴퓨터와 영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반영한다. 지명도 있는 스타 대신 나선 신인 배우 이율도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2010년 1월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문의 02-580-1300.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검찰, 윤석열 ‘조사 없이’ 내란죄 수사 일단락…앞당겨진 재판 시계
법원,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 ‘불허’…오늘 구속기소 전망
[영상] 폭동에 맞서 각양각색 깃발 쥔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단독] 서부지법, 윤석열 구속심사 전 경찰에 ‘보호요청’ 했었다
경호처, “하늘이 보내주신 대통령” 합창 경찰에 30만원씩 격려금
인천공항 ‘비상’, 폭설 때보다 혼잡…공항공사 “출국까지 3시간”
[속보] 경찰, ‘윤석열 체포 저지’ 김성훈·이광우 구속영장 재신청
설 연휴 아침, 컨베이어에 끼인 22살 청년…“홀로 작업하다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