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끼를 딴다’는 말이 있다.
무수한 직업 용어는 대부분 관행적으로 선배들을 통해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단어의 출처에 대한 특별한 의심 없이 통하는 의미 그대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어느 집단이든 그들만이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그중 하나다. 디자이너 혹은 그들과 협업의 형태를 띠는 업종에 있는 분들이라면 ’누끼’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보고 또 써봤으리라. 누끼는 ‘뺌, 제거함’이라는 뜻의 일본말이다. 즉 ‘누끼를 딴다’는 것은 이미지 작업을 할 때 사물이나 인물을 배경과 따로 분리해내는 작업을 말하는 전문(?)용어다. 사진 합성을 위한 중간과정이거나 사물을 따내서 깔끔하게 보여주기 위한 최종작업으로, 디자이너는 누끼 따는 일을 많이 한다. 많이 하는 만큼 방법도 몇 가지가 있다. ‘포토샵’ 프로그램에서 누끼로 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어서 숨은 고수들은 각자의 노하우가 있다.
어찌됐든 누끼 작업을 위해 목표하는 물체의 외곽선을 따야 하는 것은 고수든 하수든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후에 어떤 툴을 사용할지 어떤 메뉴를 활용할지는 개인의 몫이다. 사물의 외곽선을 따기 위해서는 돋보기 툴로 해당 부분을 최대한 확대해야 한다. 디테일을 위해서다. 그러나 확대한 돋보기로 누끼 따려는 물체만 따라가다보면 자칫 길을 잃을 수 있다. 배경이 복잡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누끼를 진행하고 마는 경우가 생긴다. 적절한 상황에 돋보기를 마이너스로 바꿔서 전체를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가는 길이 맞는지 그때그때 확인해야 한다.
이때 문득 삶은 참 복잡하지만 또 단순하다고 느낀다. 어떤 상황이 전체를 함축해버린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는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한다’는 말과 통한다. 속담이나 경구의 상황이다. 살다보면 이런 일이 가끔 있다. 놀랍게도 인생의 진리는 하나일지 모른다고 크게 깨달은 듯 머리에 손을 짚고 눈을 번쩍이는 상황 말이다.
디테일을 살피고 동시에 전체를 봐야 하는 것은 무슨 일을 하든 필요한 삶의 지표라 말할 수 있다. 개인의 인생이든 국가든, 또는 역사든 이 원칙은 하나로 꿰어질 것이다.
당장의 이에만 몰두하고 눈을 들어 미래를 보지 않는 역사는 암울하다. 포토샵에서 디테일만 보다가 엉뚱하게 누끼를 땄다면, 짜증 좀 나고 시간이 들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러나 강을 뒤엎어 ‘공구리’를 친다든지 언론이 어느 한 세력에 의해 독점되는 일 등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장광석 디자인주 실장· 디자인 디렉터 dizzzi@designz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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