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가 있는 사내가 있다. 아내의 친구와 불륜에 빠진 자신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남편이다. 아내도 남편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부부는 멀어진다. 그렇게 위기의 부부로 지내던 어느 날, 아내가 정성스레 립스틱을 바르고 평소에 아끼는 귀고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이날 형사인 남편은 조직폭력배 2인자가 살해당한 현장에서 아내의 귀고리와 립스틱 흔적을 발견한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남편은 살인 현장에서 아내의 흔적을 감추려 애쓴다.
더구나 아내는 옷에 핏자국을 묻히고, 귀고리 한쪽을 잃어버린 채로 밤늦게 집에 돌아온다. 초조한 남편은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만 아내는 대답하지 않는다. 더구나 살인사건 현장으로 젊은 여성이 들어갔다는 목격자도 나온다. 성열(차승원)은 아내가 살인범이라고 생각하지만, 왜 죽였는지 이유를 듣지는 못한다. 그러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형사 성열은 어떻게든 아내 지연(송윤아)을 보호하려 애쓴다.
웰메이드 장르영화, 그러나 처연한 심연은 보이지 않아
이렇게 첫째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아내와 진실을 알아내려는 남편의 대립이다. 범죄에 연루된 것이 분명한 아내는 남편에게 비밀(시크릿)을 털어놓아 수사를 피해갈 의사가 없고, 오히려 아내를 살인범으로 의심하는 남편만 형사의 본분을 어겨가며 아내를 보호하려 애쓴다. 자신 때문에 아이를 잃어서 아내가 사건에도 연루되었단 죄책감이, 아내와 관계를 복원하고 싶은 의지가 더욱 아내를 절박하게 보호하는 이유다. 이어서 진짜 대립은 범인을 감추려는 형사와 범인을 찾으려는 조폭 두목 사이에 벌어진다.
하필이면 살해당한 조폭은 악명 높은 조폭 두목 재칼(류승룡)의 동생. 재칼은 동생을 살해한 범인을 직접 찾겠다고 나선다. ‘짭새’가 잡으면 재판하고 무기형 때리고 시간만 오래 걸린단 것이다. 재칼은 성열에게 “혹시라도 내 동생을 죽인 새낄 먼저 보게 되면 모른 척해줘! 절대 나보다 먼저 그 새낄 잡으면 안 돼!”라고 말한다. 동생을 위한 피 끓는 복수심일까? 여기에 두 번째 비밀이 있다. 어쨌든 재칼이 나서면서 성열은 더욱 곤경에 빠진다. 더구나 같이 수사를 하는 최 형사(박원상)도 성열의 부인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란 사실을 알아차린다. 최 형사는 성열에게 과거의 일로 맺힌 구석이 있다. 이제 성열은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동료들을 따돌리면서 재칼로부터 아내를 보호해야 하는 이중의 난관에 처한다.
여기만 해도 복잡한 퍼즐인데 또 하나의 퍼즐이 더해진다. 또 다른 위협적인 존재의 등장이다. 살인사건 당일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녹화 테이프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 성열에게 접근한다. 이제 성열은 그 누군가가 재칼에게 아내의 모습이 담긴 CCTV를 넘기는 것까지 막아야 한다. 이렇게 은 성열과 지연, 성열과 재칼, 성열과 최 형사(박원상), 성열과 전화 속 인물의 대립까지 얽히고설킨 비밀을 풀어가는 영화다.
이란 영화의 제목처럼 성열과 아내와 재칼은 저마다 비밀을 하나씩 품고 있지만, 서로 다른 이유로 서로에게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 이렇게 흩어진 진실의 조각을 하나로 모으면서 영화의 후반은 빠르게 진행된다. 약간의 비약과 어설픈 조작이 없지는 않지만, 은 탄탄한 시나리오에 기초해 빠르게 사건을 풀어간다. 저마다 간직한, 짐작과 다른 비밀은 하나씩 풀리지만 진실이 한 꺼풀 벗겨지고 두 꺼풀 드러나도 끝은 아니다. 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지막 패를 준비해놓는다.
이렇게 은 스릴러로서 기본에 충실한 ‘웰메이드’ 작품이다. 시나리오의 구성은 탄탄하고, 사건의 개연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스릴러가, 더구나 가족의 불행을 다루는 스릴러가 남겨야 할 처연한 정조가 엔 충분히 깃들지 않았다. 재기가 넘치는 작품이지만 철학까지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비 내리는 도시의 밤골목을 배경으로 쫓고 쫓기는 추격신에 공을 들였지만 의 추격신만큼 박진감이 넘치지는 않고, 진실이 영화의 중반부터 하나둘 드러나면서 영화의 흐름이 롤러코스터를 타지만 아찔한 쾌감은 에 미치지 못한다.
차승원은 주인공 배역을 무난히 감당하고, 류승룡은 인상에 남을 만한 연기를 하지만 개성적인 조연이나 연기의 앙상블이 뛰어나진 않다. 탄탄한 이야기에 바탕해 웰메이드 스릴러를 만들긴 했지만 개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건의 퍼즐이 빈틈없이 서로 아귀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때로 이야기가 너무 자세하다. 그래서 오히려 관객이 상상할 여지를 좁힌다.
원작가 윤재구 감독의 데뷔작의 남녀 주인공 이름인 성열과 지연은 김윤진 주연의 스릴러 에도 남녀 주인공의 이름으로 나왔다. 의 윤재구 감독이 의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가족을 구하는 스릴러라는 공통점이 있다. 윤 감독은 “스릴러에 호러가 결합된 3편, 스릴러에 SF가 결합된 4편을 만들어 ‘세이빙 4부작’을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의 윤제균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 JK필름의 작품이다. 12월3일 개봉한다. 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뒤지지 않는 컴퓨터그래픽(CG)를 ‘과시’했다면, 은 할리우드 스릴러 못지않은 탄탄한 스토리를 뽐내는 작품처럼 보인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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