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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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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자식들’의 슬픈 귀환

친부모 찾아 한국에 온 해외입양아를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들…
세계 최대 고아 수출국의 그림자이런가
등록 2009-11-20 13:26 수정 2020-05-03 04:25

억압된 것은 기필코 귀환한다. 1956년에서 94년까지 한국은 38년간 세계 1위의 ‘고아 수출국’이었다. 전쟁 뒤 혼혈아를 대상으로 관행화된 해외입양은 이후 미혼모 아이들의 ‘수출’을 체계화한 ‘입양산업’으로 자리잡아, 1985년엔 9천 건으로 국내 출산의 1.4%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 50여 년간 전세계 해외입양 중 3분의 1이 한국인 입양이었다. 그동안 한국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전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왜?

해외입양인 문제를 다룬 영화가 최근에 잇따라 개봉했다. 입양인 출신 감독이 직접 만든 <여행자>(왼쪽)와 <귀향>은 억압된 실체의 귀환을 절절하게 그린다.

해외입양인 문제를 다룬 영화가 최근에 잇따라 개봉했다. 입양인 출신 감독이 직접 만든 <여행자>(왼쪽)와 <귀향>은 억압된 실체의 귀환을 절절하게 그린다.

전세계 해외입양의 30%는 한국 어린이

1960~70년대 경제성장은 도시로 유입된 여공들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억압적인 가부장제는 온존했다. 산아제한과 이민이 권장되었고, 미혼모 지원책은 없었다. 미혼모는 낙인이었으며 국내입양은 혈통주의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해외입양 기관들은 미혼모 시설을 운영하며 고아를 조달받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외로 보냈고, 양부모로부터 비용을 충당했다. 해외 가정에선 절차와 비용에 비해 온순하고 똑똑하다고 알려진 한국 아기들이 선호되었다. 가부장제와 민족주의는 해외입양을 미혼모 개인이나 국가에 수치로 간주하게끔 했다. 호적은 세탁되고 기록은 훼손되며, 해외입양의 실태는 ‘북한의 악선전에 이용되지 않기 위해’ 국가 기밀인 양 불문에 부쳐졌다.

그 결과 장성한 뒤 한국을 찾은 이들 중 2.7%만이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전세계에 약 20만 명의 한인 입양인들이 있지만, 자신의 뿌리를 찾지 못하며, 찾더라도 그들은 가족에게 또다시 비밀이 된다. 아주 드물게 그들이 ‘성공한 한국인’(?)이 되었을 때만 자랑스럽게 승인된다.

의 주인공(하정우)은 입양아 출신 미국 주니어 국가대표로 엄마를 찾아 한국에 오지만,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스키 감독은 말한다. 네가 한국 국가대표가 되어 성공해야 엄마를 찾을 수 있다고. 자신을 버린 나라의 대표가 된다는 아이러니를 감수하며 출전하지만, 팀은 다시 해체된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 내처졌다 느낀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당국의 조치는 해외입양을 양산한 대한민국의 통치성을 그대로 반복한다. 겨울철 올림픽 유치라는 국가적 필요에 따라 팀을 창단하지만, 메달은 ‘효자종목’에서 딸 테니 나머지는 ‘자비로 알아서’ 하게끔 하며, 그나마 불필요하다 느껴지면 가차 없이 없앤다. 그는 어머니를 찾아내지만 둘은 상봉하지 못한다. 입국 기자회견장에서 어딘가에 숨어 있을 어머니를 향해 외친다. 아파트를 사서 어머니를 모시겠노라고. 한국은 그런 곳이다. 자식을 전세계에 내깔겨놓고, 성공해서 돌아오는 ‘효자’만을 품을 수 있는.

의 주인공(대니얼 헤니)은 미국에 입양된 뒤 주한미군으로 자원해 한국에 온다. 미군 캠프에서 미국인은 인종차별을 가하고, 한국인은 그를 한국인이라며 응원한다. 그는 아버지를 찾지만, 사형수였다. 아들은 면회를 가고 효도를 다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유치원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거짓말이다. 자신이 밴드를 했다는 말까지 포함해, 그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생부가 아니었고, 댄서였던 어머니의 과거는 생부가 누구인지 모를 공백을 남긴다.

부재하는 생부, 더 아버지다운 양부

사실 생부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애초에 무의미했다. 영화는 혈연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와 대비해 혈연을 초탈한 미국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버지 찾기의 추리 과정을 통해 입양에 대한 어떤 입장을 제출한다. 사형수 아버지는 생부가 아니지만, 미혼모가 된 어머니 옆에서 1년 동안 돌봐주었다. 그리고 장성해 나타난 이에게 부모에 대한 좋은 환상을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매를 맞고 사진을 구해준다. 그것이 “부모 마음 아니겠느냐”고 신부의 입을 빌려 말한다. 그러니 부재하는 생부의 자리를 확인하는 것보다 부모 되기를 실천하는 한국인 양부의 진실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게는 두 명의 양부가 있었던 것이며, 이들은 부모가 어떤 존재이며 입양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준다.

(1991) 이후, 에 이르기까지 해외입양인을 그린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졌다. 이들은 정체성 위기를 겪는 존재로 그려지며, 주로 이질적인 대상이거나 멜랑콜리한 주체로 표상된다. 때로 그들의 고통이 민족적인 기표로 활용되기도 하고, 민족의 품에 다시금 안기며 봉합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작 와 은 지금껏과는 사뭇 다르다. 는 해외입양인인 감독 자신의 경험을 사회화한 작품으로 입양인이 대상이 아닌 주체의 위치에서 발언한다. 또한 은 해외입양의 밑바닥에 깔린 가부장제와 민족주의를 헤집어놓으며 떡 벌어진 상처를 봉합하지 않는다.

그들의 귀환, 대한민국은 뭘 준비했나

는 1975년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해외입양 기관에 온 소녀(김새론)의 시점을 따라가며, 부모와의 이별이 어떤 상흔이며 이를 극복하고 해외입양에 나서기까지 어떤 심리적 과정을 체험하는지 보여준다. 그녀는 분노하고 좌절하며, 스스로에게 죽음을 시연해보기도 한다. 그러곤 차츰 자신과 세상에 마음을 연다. 마지막에 프랑스 공항에서 이름이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정면을 응시하는 소녀의 오롯한 눈빛은 하위 주체로서의 명징한 발언을 대신한다. “우리는 이렇게 혼자서 국경을 넘었다.”

은 해외입양의 문제점을 노골적으로 까발린다. 말소된 기록과 생모를 보호하기 위해 기밀을 누설할 수 없다는 행정주의도 뼈아프지만, 겨우 돌아온 입양인이 자식과의 생이별로 미쳐버린 생모에 의해 다시금 죽임을 당하는 역설과 평행하게 전개되는, 10대 미혼모에게 해외입양이 유일한 선택지로 강요되는 현재진행형의 폭력을 맨눈으로 목도하는 건 참혹하다. 여기엔 어떠한 봉합이나 화해도 없다. 버려진 자식들은 귀환하지만, 그들은 다시 어머니(모국)에 의해 수장될 것이며, 아이를 떼어내진 소녀의 가슴팍 구멍엔 모래바람이 불며 미쳐갈 것이다. 그리고 입양아의 애인이 품은 태아 역시 죽거나 버려질 것이다. 폐광촌의 먼지와 카지노의 불빛이 병존하는 불모의 공간 사북, 그곳은 아이를 기를 복지는 없고 ‘카지노 자본’만 명멸하는 ‘불임과 기아(棄兒)의 나라 대한민국’의 환유로 보인다.

1980년대 정점에 달했던 해외입양아들이 이제 성년이 되었다. 곧 이들의 귀환이 봇물처럼 이어질 테지만, 한국 사회는 이들을 맞을 어떠한 준비도 없으며, 여전히 한 해 12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민간업체에 맡겨 해외로 송출하고 있다. 자식을 제 손으로 수장하며 “당신 자식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신에게 읊조리던 어머니는 과연 홀로 미친 것일까.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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