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가 돌아왔다. 스팽글이 샤방샤방하게 달린 쫄바지도, 어깨뽕이 들어간 가죽점퍼도, 블링블링한 철제 장신구도 2009년의 거리로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떠드는 80년대, 80년대 패션. 그러나 그들이 따라 하는 뽕재킷을 유행시킨, 쫄바지의 원조인 사람은 여기에 없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오랫동안 약물중독에 시달렸던 80년대 디바도 돌아왔다. 약물 복용으로 뼈만 앙상한 모습까지 파파라치 사진에 잡히며 과연 재기가 가능할까 싶던 휘트니 휴스턴이 7년 만에 새 앨범 (I Look To You)를 내고 돌아왔다. 세월의 흔적인지, 약물의 영향인지, 몰라 ‘듣게’ 허스키해진 목소리에 놀라는 이들도 있고, 여전히 여왕의 귀환을 반기는 팬들도 있다. 어쨌든 휘트니의 새 앨범은 발매 첫 주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주름이 늘어난 휘트니는 에 나와 “당신에게 의지해요”(I Look To You)를 어머니를 향해 부르며 울먹였다. 어쨌든 생존자, 그들은 살아서 돌아왔다.
음악감독·안무가·무대연출자인 마이클의 재발견
그러나 그는 죽어서야 비로소 돌아왔다. 21세기 문화에 80년대 음악뿐 아니라 80년대 패션과 댄스를 선물한 팝의 황제는 이제 여기에 없다. 80년대 아이콘 중의 아이콘, 마이클 잭슨. 2009년 6월25일 13년 만의 월드투어를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마이클은 비로소 죽은 다음에야 재평가됐다. 자신의 저택인 네버랜드에 갇힌 ‘와코 재코’(wacko jacko·괴짜 잭슨), 소년 성추행 의혹을 받는 성형 중독자의 그림자는 너무나 길어서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지난 9월13일 MTV 비디오뮤직어워즈(VMAs)에서 한 마돈나의 추도사처럼 “소문을 듣고서… 모두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가 숨졌단 소식을 듣고 나서야 “내가 그를 버렸다고 느끼고, 우리가 버렸다고 느낀다”.
역시 마돈나의 추도사처럼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맞고 나서야 뒤늦게 “인터넷으로 그의 춤과 노래가 담긴 비디오와 공연을 절박하게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음악과 춤이 “너무나 창의적이고 독특하고 드문”(so original, so unique, so rare) 것에 새삼 놀라며 “누구도 다시 그처럼 하지는 못할 것이다” 가슴으로 탄식했다. 마돈나뿐이랴. 그의 (Billie Jean)을 MP3플레이어에 넣고서 최신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곡과 나란히 이어 들으며, 오히려 20년 전의 이 요즘의 음악보다 때로는 훨씬 세련됐단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클럽에 다시 (Black or White), (Beat It) 같은 음악이 돌아왔고, 각국의 팬들은 마이클의 복장을 하고 거리에 모여 문워크를 따라 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어쩌면 그의 보컬과 리듬은 어디서나 흘러나오는 물과 공기 같아서 좋은 줄도 몰랐던 것이 아닐까. 그의 음악은 최고로 인기 있었으나 최후로 복권된 80년대 음악인지 모른다. 소녀 취향으로 폄하되던 듀란듀란을 비롯한 80년대 뉴웨이브가 음악적 재평가를 받을 때도 마이클 잭슨에 대한 재평가는 미뤄져 있었다.
이렇게 비로소 죽어서 다시 살아난 황제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10월28일(한국시각) 공개됐다. 실황으로 보지 못하는 마지막 콘서트의 리허설 영상 (This Is It)이 이날부터 전세계 극장에서 동시 개봉해 2주간 한정 상영된다. 여기엔 아이러니하게, 공연 실황이라면 보기 힘들었을 마이클의 ‘생얼굴’이 담겼다. 공연 준비 과정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면 뛰어난 음악감독이자, 안무가이자, 무대연출자인 마이클을 재발견하게 된다. (I’ll be There) 같은 잭슨5 시절의 음악부터 (Thriller), 사후에 공개된 (This Is It)같은 전성기의 히트곡을 보고 듣는 즐거움도 크지만, 무엇보다 인간 마이클 잭슨을 만나는 반가움이 더하다. 리허설을 지켜보던 댄서들이 그의 노래에 환호성을 지르자 목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자꾸 부추기지 말라고 하는, 그러나 스스로 노래를 멈추지 못하는 순수한 열정이 에 담겼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에 숨질 사람으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여전한 목소리, 놀라운 퍼포먼스도 있다.
마이클은 흑인에게 문을 열어준 사람으로 칭송받는다. 그의 음악은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의 구분을 넘어섰고, 융합을 이뤄냈다. 전세계에서 1억 장 이상이 팔린, 전무할 뿐만 아니라 후무할 앨범인 (1982) 이후에 흑인은 팝에서 주류가 되었다. 21세기 디바 비욘세가 최근의 투어에서 세계 곳곳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보면서 “마이클,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그리워요.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에 감사해요”라고 노래하는, 아니 절규하는 것이 ‘쇼’는 아니다. 비욘세는 가스펠 분위기의 (Halo) 가사에 ‘마이클’을 넣어 “나는 당신의 후광을 느껴요”(I can feel your halo), “당신은 나의 은총”(You’re my saving grace)이라고 절창한다. 마이클의 장례식에서 흑인 목사는 마이클을 두고 “버락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같은 사람이 주류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애도했다. 그의 장례식은 마이클의 절친인 브룩 실즈를 제외하면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백인이 거의 없었고, ‘흑인’이란 단어가 숱하게 반복되는 ‘오바마 시대의 장례식’이었다.
오바마 시대의 장례식그렇게 마이클 잭슨이 떠나고 나서야 세계는 그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심금을 울린 마이클의 동갑내기 스타 마돈나의 추도사도, 마이클 다음 세대 흑인 스타 비욘세의 추모곡도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황제여, 영원히!”(Long Live, The King!)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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