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누구보다 강해. 뭐든 할 수 있어. 넌 승자야.”
스스로 이런 다짐을 하는 사람은 대개 위기에 처해 있다. 영화 의 로즈(에이미 애덤스)도 거울을 보면서 이런 다짐을 한다. 거꾸로 이것은 로즈가 남들이 보기에 혹은 자신이 생각해도 패자(Loser)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로즈에게도 호시절이 있었다. 고교 시절 로즈는 치어리더로, 학교의 미식축구팀 쿼터백과 사귈 만큼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가 딸린 싱글맘에 탄탄한 직장도 없는 신세다. 게다가 이혼할 생각도, 그리고 로즈와 결혼할 마음도 없는 유부남과 모텔에서 밀회나 즐기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한심한 일상을 반복한다. 쿼터백 출신으로 지금은 경찰관이 된 유부남은 고교 시절부터 만났지만, 로즈가 아닌 로즈의 친구와 결혼했다.
로즈의 동생 노라(에밀리 블런트)는 한술 더 뜬다. 임시직마저 툭하면 잘리고, 성인이 돼서도 아버지 집에 얹혀 사는 신세다. 로즈가 답답한 현실을 어떻게든 벗어나보려는 의지라도 있다면, 노라에겐 그런 의지조차 희미하다. 물론 노라에겐 세상의 기준을 가볍게 조롱하는 유머의 미덕이 있다. 이렇게 답답하게 살아가는 자매를 더욱 나락으로 밀어내는 일이 생긴다. 로즈의 아들인 오스카가 다니던 공립학교에서 쫓겨난 것이다. 오스카를 사립학교로 보내기 위해서 로즈는 돈이 되는 일자리를 구한다. 마침 로즈와 만나는 경찰은 살인이나 자살 현장을 청소하는 일의 벌이가 쏠쏠하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자매는 피를 닦고, 시체의 흔적을 지우는 일을 시작한다. 처음엔 구역질만 나던 일이지만,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도 된다. 남편이 자살한 다음에 홀로 남은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뜻밖에 타인을 위로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돈벌이도 이전의 일자리에 비하면 쏠쏠하다. 자매는 청소도구를 실을 차를 마련하고 ‘선샤인 클리닝’이란 이름을 새긴다. 이렇게 ‘범죄현장 청소’라는 하기 싫었던 일은 뜻밖에 로즈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된다. 자매는 같이 일하며 서로를 더욱 이해하게 되지만, 현실적인 언니와 감성적인 동생의 갈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노라를 통해서 말하듯, 은 무언가 해보려고 하지만 제대로 되는 일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섬세한 노라는 범죄현장 청소를 사람의 흔적을 지우는 일로 여긴다. 그래서 가끔 차마 지우지 못할 흔적을 만난다. 노라는 자신이 치우다 발견한 유품을 숨진 사람의 딸에게 전해주려 하지만,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만 주는 일로 끝난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언니가 고교 동창을 만나러 자리를 비운 사이에 노라 혼자서 청소를 나갔다가 화재를 내서 다시 이들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 줄기 희망의 햇살마저 재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은 갈등과 화해에 이어 또다시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너무 깊은 진폭을 그리지 않으면서 조울의 리듬을 반복하는 영화는 제작진의 전작인 의 미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선댄스영화제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엔 비주류 미국 영화 특유의 현실감과 따뜻함이 공존한다. 어려운 처지를 그리되 지독한 상황으로 과장하지 않고, 희망을 말하되 장밋빛으로 물들이지 않는 미덕이다. 로즈의 절망은 끝없는 추락이 아니라 누구나 처할 법한 상황으로 생각되고, 로즈의 노력도 지독한 발버둥이 아니라 용기를 낸다면 누구나 할 법한 시도로 그려진다. 그래서 은 우리도 저랬지, 나도 저럴 것이다, 설득력을 얻는다. 영화는 인물을 과장된 상황에 밀어넣지 않고도, 캐릭터의 설득력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이렇게 세상이 실패자로 여기는 인물들에 남모르는 미덕을 더해서, 역시나 세상은 패자도 승자도 없는 곳이란 사실을 담담하게 증명한다. 자매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물론 아역부터 노역까지 누구도 빠지지 않는 탄탄한 연기는 이러한 영화의 미덕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자매를 연기하는 여배우의 호흡 못지않게 할아버지 조(앨런 아킨)와 손자 오스카의 연기가 빛난다. 특히 40년 넘게 연기 경력을 쌓아온 앨런 아킨은 에 이어 에도 캐스팅되었다.
부시 방식도 끌어안는 가족의 가치
결국 은 자매가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를 극복하고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나아가 제작진의 전작인 처럼 가족이 함께 어려움을 겪으며 서로의 가치를 발견하는 작품이다. 이런 면에서 과 은 ‘선샤인 시리즈’로 불러도 좋을 만큼 공통점이 많다. 그러나 두 영화가 말하는 가족의 가치는 도덕적 엄숙주의로 무장하고 소수자를 배제하는, 부시적 방식의 가족의 가치와 다르다. 마치 이들을 조롱하듯, 보수적 방식의 가족의 가치를 되뇌는 인물조차 ‘선샤인 시리즈’는 끌어안는다. 자매가 가진 트라우마를 다시 일깨우며, 그래도 여기가 얼마나 살 만한 곳인지 말하는 영화의 엔딩은 햇살처럼 따뜻한 울림을 남긴다. 9월3일 개봉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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