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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스토리, 기대 못 미친 스펙터클

한국형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해운대>… 윤제균 감독답게 연민 깔린 웃음 주는 가족 영화
등록 2009-07-23 17:15 수정 2020-05-03 04:25

쓰나미(지진해일)가 휩쓸고 간 자리엔 가족의 화해가 남는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가 거대한 파도를 동원해 말하는 것은 결국 가족이다. 한국전쟁 이래로 작금의 경제위기까지, 한국에서 가족은 세상에서 난파당한 개인들이 기댈 만한 유일한 조각배였다. 그러므로 쓰나미의 위기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존재가 가족인 것은 어쩌면 한국 영화에서 당연하다. 도 그렇게 안전한 항로를 택한다. 한국에선 슈퍼맨이 아닌 가족이 영웅이다.

영화 〈해운대〉

영화 〈해운대〉

이어 개발 문제 천착

한국인이 흔히 ‘가족 같은’이란 수식어를 붙여서 부르는 지역 공동체는 확장된 가족이다. 에도 이러한 ‘해운대 공동체’가 있다. 한국에선 지역이라도 혈연으로 맺어져야 감정이 이입된다. 그래서 는 ‘피의 추억’에서 시작한다. 2004년 인도네시아 해상의 원양어선, 해운대 동네 남자들이 쓰나미에 맞서 싸우고 있다. 여기서 숨지는 연희(하지원)의 아버지는 같이 배를 탔던 만식(설경구)에게 연희를 부탁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2009년 해운대, 공동체는 위기에 놓였다.

전통적인 공동체를 파괴하는 주범은 개발이다. 등에서 도심 재개발 문제를 다뤄온 윤제균 감독은 이번엔 해안가 개발로 주제를 변주한다. 인도네시아에서 난파당한 고깃배의 선주였던 만식의 작은아버지는 해운대에 거대한 상가를 올릴 계획을 세운다. 언제나 그렇듯 개발의 논리는 주민의 거부에 부딪힌다. 반대에 가장 앞장서는 이는 조카인 만식이. 공동체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공동체의 파괴에 앞장서고, 혈연이나 원한으로 연결된 인물이 반대에 나서는 전통적인 구도다. 여기에 외부에서 침입하는 위협으로 바캉스철을 맞아 서울에서 놀러온 청년들이 더해진다.

그러나 는 공동체의 문제에 크게 신경쓸 여유가 없다. 쓰나미의 폭풍에 맞서 싸울 남녀의 얘기를 풀어놓기에도 러닝타임이 짧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부의 갈등은 단지 결말의 감동을 위한 대비로 깔린다. 아이가 딸린 홀아비 만식은 연희의 주변을 맴돌지만 차마 사랑을 고백하진 못한다. 오히려 당찬 연희가 먼저 속 터져하며 다가간다. 또 다른 러브라인은 만식의 동생인 형식(이민기)과 서울에서 놀러온 삼수생 희미(강예원). 순박한 해운대 청년 형식에게 희미는 한눈에 반하지만, 서울에서 온 청년이 이들의 연애를 방해한다. 여기에 국제해양연구소의 지질학자 김휘(박중훈)와 해운대 문화엑스포를 준비하는 유진(엄정화)의 사연이 더해진다. 이들은 헤어진 부부다. 이들 사이엔 딸이 있지만 오랫동안 가족을 등한시해온 김휘는 딸에게 아버지가 아니라 아저씨로 소개된다. 이렇게 세 줄기 사연의 심연으로 들어가기엔 가지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하다. “사람 냄새 나는 재난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처럼 엔 많은 사람의 냄새가 나지만, 진한 인간의 냄새가 풍기는지는 의문이다.

만식과 연희가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드러내며 정서를 쌓아간다면, 김휘와 유진은 쓰나미의 위협을 알리는 구실을 한다. 김휘가 아무리 대마도와 해운대를 둘러싼 상황이 2004년 당시의 동남아와 비슷하다고 경고해도 관료들은 무시한다. 그러나 쓰나미는 연희와 만식의 사랑이 마침내 결실을 맺으려는 결정적 순간에 닥치고, 김휘와 유진은 혼자 호텔방에 남겨진 딸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이제 해운대는 쓰나미로 초토화되고, 도망가는 사람들의 생지옥으로 변한다.

아무리 사람 냄새를 강조해도 재난영화에서 컴퓨터그래픽(CG)은 초미의 관심사다. 의 재난 장면은 스펙터클이 부족한 대신에 클로즈업에 강하다. 거대한 파도가 해운대를 덮치는 장면이 정말로 실제 같은 쾌감을 주지는 않는다. 의 특수효과를 담당했던 한스 울릭이 만든 CG가 기대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연희와 만식이 쓰나미를 피해 도망가며 서로를 구하는 장면이나 유진이 물이 차오르는 엘리베이터에 갇혀 딸과 애절한 통화를 하는 순간은 관객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재앙이 닥치고 난 다음만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쓰나미가 덮치기 전에 서서히 밀려드는 공포가 충분히 살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쉽다.

서서히 밀려드는 공포 충분히 살렸더라면

결국 재난은 오해를 푼다. 서너 번의 기적과 두어 번의 이별을 거치며 쓰나미는 지나간다. 재앙은 반목하거나 무심했던 가족 사이의 진심을 드러내고, 흔들렸던 해운대 공동체를 제자리에 놓는다. 는 ‘다음’을 생각하는 착한 영화라, 구세대는 사라질지언정 미래 세대는 살아남는다. 같은 코미디 영화를 만든 윤제균 감독의 영화답게 는 연민이 깔린 웃음의 코드로 영화를 끌어간다. “생쑈를 하네.” 만식이 연희를 앞에 두고 “어~ 야~” 하면서 애교를 떠는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인상이 강한 배우인 설경구가 하지원에게 “쁘로뽀즈”를 하면서 “내 아를 낳아도” 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개그도 한다. 이런 장면에 웃음을 터뜨리느냐, 헛웃음을 짓느냐에 따라 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겠다. 7월23일 개봉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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