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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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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설정 속 유쾌한 웃음들

시트콤 같은 캐릭터와 농익은 연기력 돋보이는 코믹첩보멜로 <7급 공무원>
등록 2009-04-24 18:53 수정 2020-05-03 04:25

시사회에서 관객의 웃음이 시원하게 터져나왔다. ‘코믹첩보멜로’ 영화 은 ‘웃자고 만든’ 영화의 목적에 충실하다. 웃음 대신 짜증만 나오는 여느 조폭 코미디나 로맨틱 코미디처럼 ‘화장실 유머’에 기대지 않고 자연스러운 웃음을 찾는다. 이야기나 설정이 세련되거나 새롭지는 않아도 캐릭터나 대사의 힘이 허술하지 않다. 신분을 속인 채 결혼한 킬러 부부의 이야기인 할리우드 영화 의 설정과 닮았다며 폄훼하기엔 영화를 얕잡아보던 이들도 배꼽 잡게 하는 유쾌함을 가졌다.

<7급 공무원>

<7급 공무원>

웃기긴 하되 ‘화장실 유머’는 피해

은 국가정보원 비밀요원이자 연인 사이인 수지(김하늘)와 재준(강지환)의 이야기다. 경력 6년차의 베테랑 국정원 비밀요원인 수지는 재준을 사랑하지만 사랑보다 일이 먼저다. “내가 갈게, 어디야?”라고 묻는 재준의 전화에 여행사 가이드로 직업을 속인 수지의 대답은 늘 “울릉도”다. 수지의 거짓말을 참지 못한 재준은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다. 3년 뒤, 국정원 해외파트 요원이 되어 돌아온 재준은 우연히 화장실에서 청소 중인 수지를 만난다. 청소부와 국제회계사로 위장한 두 사람은 감정의 앙금이 남은 상태라 보자마자 티격태격한다. 사실 두 사람은 국내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려는 음모의 관련 인물들을 각자 추적 중이다. 둘은 자신을 감추는 게 일인 비밀요원이다 보니 동료인 줄 모르고 서로의 정체를 의심하게 된다. 관객의 웃음은 여기서 터진다. 수지와 재준이 싸우고 헤어지는 순간에도 어색한 포옹을 하며 서로의 옷에 위치추적기를 다는 상황이 되면 관객은 박장대소한다.

은 비밀이 많은 연인이 결별했다 다시 만나 일도 성공하고 사랑도 찾는다는 흔하고 뻔한 설정을 그대로 사용한다. 하지만 잘 짜인 무술의 합처럼 어긋남 없이 맞아떨어지는 대사나 시트콤에 나올 듯한 캐릭터로 웃음을 짜내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타깃을 차로 미행하라는 지시를 받은 신참내기 재준이 미행 대신 에스코트를 하게 되는 상황이나 중요한 정보가 든 컴퓨터 파일에 암호가 걸려 있어 작전 수행 때마다 문제가 되는 장면에선 관객 웃음소리에 대사가 들리지 않을 정도다.

장면 곳곳서 관객 웃음 터져나와

영화의 만듦새를 매끄럽게 한 건 탄탄한 시나리오에 숨을 불어넣은 배우들이다. 슬픈 멜로드라마였던 에서 시청자의 눈물을 쏙 뺐던 강지환과 김하늘은 이번엔 농익은 코믹 연기로 관객의 웃음을 훔친다. 두 사람의 팀장으로 나오는 류승룡과 정영남은 맛깔스러운 연기로 이들을 받친다. 네 배우는 상영 시간 내내 관객에게 강약 있는 웃음으로 잽과 훅을 날린다.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한 스릴러 을 만든 신태라 감독은 코미디 영화로 전향해도 손색이 없을 듯한 매끄러운 연출력으로 다시 한번 이름을 높였다. 4월23일 개봉한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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