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그만하랄 때 한 대 더 갈긴다

8개 국제영화제 수상하고 독립 장편 극영화로는 최다 개봉관 기록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등록 2009-04-16 20:55 수정 2020-05-03 04:25
 8개 국제영화제 수상하고 독립 장편 극영화로는 최다 개봉관 기록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8개 국제영화제 수상하고 독립 장편 극영화로는 최다 개봉관 기록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는 발길질도 주먹질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에 한 대 더 ‘갈긴다’. 의 사내들은 육두문자가 아니면 말을 잇지 못하고, “퍽퍽”대는 주먹질 소리는 처음엔 끔찍하다 나중엔 익숙해진다. 정말로 ‘더럽게’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다. 하지만 똥파리 같은 사내의 욕은 결국엔 처절한 절규로 들린다. 는 끝없는 발길질로 수십 번 인상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최소한 다섯 번은 웃게 만들고 결국엔 한숨을 내쉬게 한다.

가계를 넘어 유전되는 폭력의 악순환

양익준 감독의 는 폭력적인 가정은 폭력적인 아이를 만든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때리는 아버지, 맞는 어머니, 숨죽이는 아이들. 그러나 여기엔 끔찍한 폭력을 넘어선 참혹한 가족사가 있다. 이렇게 끔찍한 기억을 가진 상훈(양익준)이 우연히 길에서 만난 여고생 연희(김꽃비)에게 ‘꽂힌다’. 연희가 상훈의 폭력에 주눅 들지 않고 대들었기 때문이다. 연희도 상훈에게 묘한 연민을 느낀다. 그들의 감정이 통하는 이유는 가족사에서 나온다. 연희의 가족은 상훈이 가족의 거울상. 베트남 참전군인 아버지는 정신분열로 딸에게 억지소리를 해대고, 남동생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다 갈수록 폭력을 일삼는다. 노점상을 하던 엄마는 오래전에 용역깡패의 칼에 숨졌다. 집안 남자들에게 밥을 해먹이고 욕까지 먹어야 하는 연희의 처지는 상훈의 죽은 동생을 닮았다. 그리고 연희의 남동생 영재(이환)는 상훈과 겹친다. 이렇게 상훈과 연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을 느끼는 처지다.

문자 그대로 죽이고 싶은 아버지가 15년 만에 출소한다. 그 사이에 상훈은 ‘생양아치’가 되었다. 용역깡패로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사채를 받으러 다니며 주먹질을 계속한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없었지만, 아버지의 폭력은 기묘한 방식으로 아들에게 유전됐다. 이렇게 폭력의 늪에 빠졌던 상훈은 ‘더럽게 질긴’ 핏줄을 확인하는 사건을 겪고, 이복누나와 조카를 돌보며 희망을 찾는다. 삐삐만 가지고 다니고 파친코로 돈을 날리던 상훈이 휴대전화를 장만하고(소통을 시작하고), 통장을 개설한다(미래를 준비한다). 그러나 가계를 넘어서 유전되는 폭력의 악순환은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전반이 지나면 대충의 흐름과 결말이 짐작이 가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끝까지 긴장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팽팽한 긴장은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에서 나온다.

는 각본, 연출, 주연을 다 한 양익준 감독의 영화다. 영화엔 막노동판, 가전제품 외판원을 전전한 감독의 정서가 진득하게 들어 있다. 밑바닥 인생을 향한 질긴 연민은 감독의 이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노가다·외판원 등 감독 밑바닥 경험이 재료

제도 안에서 영화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양 감독은 40여 편의 장·단편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며 현장 감각을 익혔다. 영화진흥위원회 등에서 받은 지원금에 자신의 전세금까지 담보로 잡혀 완성한 첫 장편이 다. 이렇게 만든 영화는 로테르담, 도빌,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8개에 이르는 트로피를 받았다. 수상의 성과에 대중성까지 갖춰 독립 장편 극영화로는 역대 최대인 50여 개 스크린에서 4월16일 개봉한다. 사내들의 악다구니 속에서도 연희가 끝내 벗지 않는 교복은 그가 끝내 붙드는 희망을 상징한다. 상훈의 욕설만큼 연희의 교복이 아프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