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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신드롬은 글로벌 현상

오석태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김학균 한국증권 수석연구원 ‘경제 담론’ 인터뷰
등록 2009-03-19 23:00 수정 2020-05-03 04:25

경제위기는 신뢰의 위기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가 따라 배워야 할 모범으로 떠받들여지던 ‘선진 금융기법의 본토’가 무너졌다. 유령처럼 잊을 만하면 다시 나타나는 ‘×월 위기설’은 한국 정부의 온갖 해명에도 종식되지 않는다. 급기야 지난 3월13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와 등 영국 언론들의 잇단 한국 국가위험 보도에 대응해 실상을 알리겠다며 런던으로 날아갔다. 지난 1년여를 돌아보자. 정부, 국책·민간 경제연구소, 보수 언론 등이 한목소리로 “위기는 없다”고 설파했지만, 이들과 정반대의 논리를 펴는 비주류 경제 논객들에게 귀기울이는 국민들이 오히려 많아졌다. 미네르바는 허위사실 유포죄로 철창에 갇혔지만, ‘유령’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나 제도권 전문가들이 권위를 내세워 윽박질러도 ‘유령’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정부는 무능하고, 금융회사는 탐욕스럽고, 싱크탱크는 비굴하다’는 세간의 평가는 과연 온당할까? 난세에 나타난 대안 제시 세력으로 누리꾼들에게 추앙받는 독립적 연구소들과 인터넷 논객들을 실제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3월12일 오석태 한국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와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을 만나 물어봤다. 이들은 과거의 경제 전문가 집단이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하면서, 대안적 경제담론들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김학균 수석연구원(왼쪽) · 오석태 이코노미스트(오른쪽).

김학균 수석연구원(왼쪽) · 오석태 이코노미스트(오른쪽).

-그동안 경제담론을 독식해온 전문가 집단이 대중에게 외면받는 까닭은 무엇인가.

오석태(이하 오)= 이라는 책에서 지적하듯, 금융시장 전문가나 이코노미스트라는 사람들이 실은 실물경제나 시장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또 금융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사태 앞에서 제도권 전문가는 기득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말을 마음대로 못한다. 밥줄이 달린 월급쟁이는 어차피 시장의 컨센서스(합의)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김학균(이하 김)= 금융기관의 보고서는 돈이 되는 쪽으로 맞추게 돼 있다. 자영업 위기나 외환 문제를 언급하기 힘든 구조다. 대중이 갈증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또 경제 정보의 공식 채널들은 특정한 포지션을 취하기 힘들다. 김광수경제연구소 같은 ‘재야’가 가진 장점은 (자금을 대출하거나 펀드를 발행하는 등의) 금융시장 내 위치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김광수 소장의 글들이 사후적으로 맞았느냐 틀렸느냐는 의미가 없다. 미리 경고해서 나쁜 상황이 발생하는 걸 막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오= 금융위기를 예언한 루비니 교수는 왜 그렇게 유명해졌을까? 그는 시장 참여자가 아니고, 학계에서도 ‘독불장군’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정부 등에서도 경력을 쌓았다지만 그가 유명한 비관적 예언을 제시한 것은 뉴욕대 교수로 옮기고 나서부터다. 이걸 보면 ‘미네르바’들이 각광받는 것은 전세계적 현상이다. 정부·금융기관·주류 학계에 있는 분들은 (이런 대혼란의 본질을) 잡아내지 못하는 운명이다.

-대안의 경제담론을 제시하는 사람들 중 눈길을 끄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오= 미네르바가 에 지난 3월11일 보내온 글들을 보자. 과도하게 비관적인 내용도 있지만 논리적 허점이 많지 않은 문장이었다. 특히 최근의 달러 강세에 대한 해석은 시장 컨센서스에 가깝다. 미국이 지금처럼 국채 발행 등으로 많이 빚을 지면 한국 같은 이머징 마켓에서는 돈줄이 말라버릴 수 있다는 지적 역시 설득력이 있다.

김= 미네르바는 전달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나도 학벌사회 코드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제도권에서 공부를 하지 않고도 그런 글들을 썼다는 게 놀랍다. 솔직히 외환보유고 문제나 리먼브러더스 파산 뒤 투자은행의 미래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동의하기 힘들다. 인용한 데이터나 자료에서 일부 오류도 보인다. 그러나 그런 실수들은 증권사 보고서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논리의 신뢰도에 큰 흠결을 줄 정도는 아니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4년쯤 전에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됐는데, 독립연구소로서 새로운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오= 최근 김광수경제연구소가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얼마 안 남았다고 주장했는데, 내가 보기에도 (분석이) 잘못됐다. 한국은행에서 발끈해 반박 자료를 내지 않았나. 또 부동산 시장에 대한 맹렬한 비판도 내가 금융권에 있는 처지에서 100% 받아들일 수는 없다. 부동산이 불로소득이라 문제가 있다는 것까지는 좋은데, 부동산 시장에 파국이 오면 금융도 같이 망가지게 된다.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는 식의 주장은 너무 급진적이라고 본다.

-정부나 대기업 소유의 경제연구소들이 불신의 대상이 된 것은 인터넷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외국 언론들도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반복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왜 그런가.

김= IMF 외환위기 직후 외국 언론이나 금융사들이 굉장한 권위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 스스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영향력이 줄었다고 본다. 물론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여서 외풍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외환보유고 등에 대해 ‘팩트’(사실)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2천억달러를 쌓아뒀느냐 아니면 3천억달러를 쌓아뒀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오=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지만 나도 한국인인지라 가끔 외국인 투자자들의 터무니없는 질문에 화가 날 때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 기업이 빚을 못 갚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불신을 보이는 까닭을 이해하려면, 지금 그들이 주요 금융기관을 넘어 국가까지 믿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5개월 정도를 돌아보면, 금융의 본토인 미국과 영국에서 극단적인 파국 시나리오들이 현실이 돼버렸지 않은가. 한국이 선진국이 아닌 이머징 마켓으로 분류된다는 것도 비관론이 사라지지 않는 중요한 이유다. 여러 지표로 볼 때 한국은 오스트레일리아보다 외화유동성 사정이 훨씬 좋지만, 외국인들이 보기에 오스트레일리아는 선진국이고 한국은 신흥시장이다.

-독립적 경제연구소나 인터넷 경제논객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금융시장 등에서 지금보다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까.

김= 2003년 즈음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디플레이션 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그 뒤로 실제 디플레이션이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활발하게 나눠야 한국 경제가 건강해진다. 당장 돈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런 경고들은 인문학적 가치를 가진다. 미네르바도 뭐가 맞고 틀렸냐의 문제로 볼 게 아니다. 주류 중의 주류 언론이라 할 수 있는 의 홈페이지만 보더라도, 요즘은 화면 왼쪽에 ‘자본주의의 미래’라는 꼭지가 마련돼 있다. 지금 경제위기는 진보의 위기일 수도 있고 보수의 위기일 수도 있다. 대안적 경제담론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오= 외국이든 한국이든 블로거들의 글이 너무 음모론으로 치우치는 데는 불만이다. 유명한 쑹훙빙의 저서 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금융위기가 정말 몇 사람들의 음모에 따른 것이라면 오히려 매우 좋은 일이다. 그들을 설득하기만 하면 위기가 해소될 테니 말이다. 지금은 금융 시스템, 또는 자본주의가 굉장히 망가져 있는 시점이다. 어떻게 새로운 체계를 만들 것인가. 제도권 바깥에 계신 분들의 생각이 참신하게 다가올 수 있다고 본다.

글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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