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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매는 다시 날까

씁쓸한 1위 행진 황인뢰 감독의 <돌아온 일지매>, 실험은 환영받지 못하고 배우는 매력 보이지 못해
등록 2009-02-05 17:16 수정 2020-05-03 04:25

문화방송 가 강자 없는 수·목극 경쟁에서 씁쓸한 1위 행진 중이다. 1월21일 첫 방송에서 16.7%로 한국방송 와 SBS 을 눌렀지만, 4회(15.5%)까지 방영된 현재까지 시청률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등을 만든 ‘스타 PD’ 황인뢰 감독이 연출을 맡아 일찌감치 방송가에서 기대작으로 점쳐졌던 드라마지만 방송 뒤 반응이 냉랭하다. 이유가 뭘까?

지난해 7월 펄펄 날던 ‘일지매’의 부담

<돌아온 일지매>

<돌아온 일지매>

는 고우영의 만화 를 원작으로 기획됐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에 연재됐던 만화는 1971년에 2만 부 정도였던 의 발행부수를 30만 부까지 끌어올렸던 화제작이다. 청나라에서 성장한 뒤 대마도로 흘러들었다가 조선으로 돌아오는 일지매 이야기가 스케일 있는 영웅담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야기의 소재인 16세기 조선시대 영웅이 새롭지 않다는 게 문제다. 고귀한 혈통과 자질을 타고난 주인공이 고난에 처했다가 조력자를 만나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영웅담은 할리우드식 돌연변이 슈퍼히어로물처럼 너무 뻔하다. 6개월 전에 SBS 를 본 시청자라면 는 더 식상할 수밖에 없다. 먼저 방영된 이준기 주연의 는 펄펄 날았다. 시청률 30%를 넘으며 지난해 7월 인기리에 종영했다. 제작진에게는 같은 소재에서 다른 재미를 찾아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까지 더해지며 조선시대 민중영웅 이야기가 텔레비전에서 넘쳐났다. 황인뢰 PD는 드라마 방영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앞서간 작품이 잘된 걸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원작이 갖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있으니 시청자들이 차이를 발견하며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는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친다는 점에서 와는 태생부터 다른 드라마다. 는 체제 전복을 꿈꾸는 민중영웅 이야기를 작가가 새롭게 꾸며냈다. 세상사에 관심 없던 청춘이 아버지(조민기)의 원수를 찾다 민초들을 불행에 빠트린 탐관오리들과 절대권력자들을 응징하는 이야기는 절대권력의 핵심인 인조(김창완)에게 맞서면서 끝난다. 반면 는 중국 땅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일본 땅에서 청년기를 보낸 일지매가 조선에서 반정을 꿈꾸는 벼슬아치 김자점(박근형)과 맞서는 갈등이 이야기의 축이다. 여기에 원작에는 담겨 있지 않은, 중국으로 건너간 일지매의 활약상과 병자호란 발발 당시의 상황을 그려낸다. 일지매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기록을 기초로 고우영의 만화 원작에 황인뢰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진 팩션 사극이다.

4회까지 방영한 는 를 의식한 듯 확연히 달랐다. 청나라에서 무술을 익히며 자란 일지매(정일우)는 한국에 와서 평생 잊지 못할 연인을 만나고, 연인의 아버지로부터 ‘장백검법’이란 무술도 배우며 영웅적인 면모를 빠르게 갖춰가는 중이다. 익숙했던 드라마 틀도 버렸다. 정통사극이지만 현대물로 문을 연 첫 회부터 드라마를 읽어주는 여자인 ‘책녀’의 내레이션을 삽입했다. “하늘이 도시락 싸가면서 도와주는 왕횡보(박철민)와 하늘이 분리수거하듯 버린 구자명(김민종)” “가난한 백성들의 부서지는 삶을 지켜주는 것이 경찰 공무원의 사명이라고 믿는 구자명” 같은 익살스런 내레이션이 해설로 보태졌다. 하지만 새로운 실험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내레이션이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의견이 팽배한 가운데 “신선하다”는 평가가 맞섰다. 원작 속에서 자신을 등장시켜 해학이 넘치는 내레이션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던 고우영 화백의 역할을 이어받은 설정이었지만 결국 책녀의 역할은 줄었다.

익살스런 내레이션이 되레 독

는 와 다른 드라마라는 점을 과감한 실험으로 입증하는 데 성공했지만 작품 속에서 일지매란 인물의 매력은 아직 보여주지 못했다. 구르고 달리고 깨지며 불운한 개인사를 딛고 일어나는 불세출의 영웅 캐릭터가 연기가 어색한 배우 정일우에게 밀착되지 않았다. 가 오롯이 ‘이준기의 일지매’였다면 는 아직까지 ‘황인뢰 PD의 일지매’인 셈. 시대와 운명이 만든 조선의 영웅으로 일지매가 본격적인 활약을 펼칠 8회 이후에도 정일우의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는 수·목극 1위 자리를 내줘야 할지 모른다. 2월에는 만만치 않은 상대인 박예진 주연의 정통 멜로극 (한국방송)과 소지섭 주연의 (SBS)과 맞붙게 된다. 시대적 배경은 과거이되 현실적인 상황을 끌어들여 비극과 희극을 가볍게 넘나들었던 처럼 통쾌한 해학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에 남겨진 숙제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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