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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의 소통법

등록 2008-07-18 00:00 수정 2020-05-03 04:25

오해와 갈등을 줄이려 대화를 많이 하고 경기에서 져도 선수탓 하지 않는 히딩크 감독

▣ 송호진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dmzsong@hani.co.kr

2002년. 비 오는 날 훈련장 한가운데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두 손바닥을 하늘을 향하게 하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사진기자들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누른다. 히딩크 감독이 잠시 뒤 사진기자들에게 윙크를 날린다. “이 포즈면 됐냐”는 신호다. 사진기자들은 “참 여우 같은 사람”이라고 한마디씩 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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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시간도 소통도 충분했던 ‘운(運)짱’

당시 히딩크 감독이 한 “난 여전히 배고프다”(I’m still hungry)란 말은 사회적으로 회자가 된 문장이었다. 단지 먹성 좋은 아이가 실껏 먹고도 또 배고플 때나 사용하기엔 쓰임새가 너무 다양한 문장이란 걸, 승리와 목표를 향한 열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히딩크 감독은 ‘달변가’였다.

돌이켜보면 그는 행운아였다. 대표팀 스태프의 누군가도 그를 두고 “운(運)짱”이라 부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거액 연봉과 협회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대표팀 훈련 시간을 원하는 만큼 거의 다 가졌던 처음이자 마지막 감독이었다. 프로 감독들은 선수 차출뿐 아니라 대표팀의 장기 전지훈련에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차경복 전 성남 일화 감독은 한-일 월드컵 직후 히딩크 감독과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이 태극기를 흔들며 카퍼레이드를 한 모습을 떠올리며 “국내 감독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없이 모든 영광을 히딩크와 정 회장이 다 가져갔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프로팀들의 희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떠나간 전임 감독 코엘류도, 본프레레도, 멀리 갈 것도 없이 부임 7개월밖에 안 된 허정무 감독조차 “훈련 시간 부족”을 얘기했던 것은 히딩크 감독이 누린 훈련 시간에 대한 부러움이요, 장시간 훈련을 통해 전력을 다질 수 있었던 그와 ‘우리들’을 비교하는 걸 좀 자제해달라는 하소연이라 볼 수 있다. 훈련 시간만 놓고 보면 그들의 탄식을 이해할 수 있는 면도 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과 같이 지냈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그를 “말이 통했던” “신뢰가 있던” 사람이라 얘기한다. 본프레레 감독 시절 선수들이 대표팀 통역한테조차 “스파이”라며 벽을 쌓은 감독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인 것이다. 본프레레 감독은 “훈련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짐을 쌌지만, 선수들은 훈련의 ‘양’ 대신 감독과 선수 사이의 소통 부재와 어긋난 신뢰에서 원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히딩크 감독은 선수단 내부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미리 차단하고, 감독과 선수 사이에 믿음이 무너져선 안 된다는 원칙만큼은 지키려고 한 지도자였다는 게 그와 함께한 이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당시 코치였던 정해성 현 대표팀 코치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스스로 ‘작은 독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단이 움직이는 시간의 기준은 철저히 자기 시계의 시간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녹음기도 늘 갖고 다녔는데 뭔가 떠오르는 게 있으면 잊지 않게 바로바로 녹음을 한 것이다. 공과 사의 구별도 확실했다. 한번은 선수들과 밥을 먹을 때 네덜란드 지인한테 전화가 왔다며 스태프 중 한 명이 전화기를 가져오자 지금 선수들과 함께 있는데 무슨 전화냐며 불호령을 내렸다. 그렇다고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다. 코치들과 스태프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경청하려 애썼다. 뭔가 말하면 그 의견을 다음날 훈련장에서 실현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선후배 간에 같이 밥 먹기’ 규칙 세워

정 코치는 코치들의 역할을 보장해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했다. 정 코치는 “훈련 프로그램은 모두 핌 베어벡 코치의 노트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선발 명단은 히딩크 감독의 머리에서 나왔지만, 경기 도중 교체멤버는 베어벡 코치의 판단을 따를 정도였다”고 했다.

히딩크 감독은 특별히 오해와 갈등을 줄이는 데 애썼고, 대화는 아주 유용한 도구였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가 한국 대표팀에 오자마자 바꾼 것은 식사 습관이었다. 끼리끼리 모여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본 뒤 고참과 후배들이 뒤섞여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재배치한 것이다. 누군가 밥을 빨리 먹었더라도 선수단 전체가 같이 일어서야 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식사 시간이라도 서로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라는 것이다. 그는 또 “밖에서는 동료들과 얼마든지 친하게 지내라. 그러나 훈련과 경기에서 잘못된 점이 있으면 서로 정확히 지적하라”고 했다. 운동장에서도 말을 하라는 것이다. 경기 중에 후배가 거리낌 없이 “명보!” “선홍!” 하며 선배의 이름을 부르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히딩크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설 선수도 매일 2명씩 돌아가며 지정했고, 예전에 볼 수 없던 선수단 전체 인터뷰도 했다. 특정 스타 선수에게만 언론이 몰릴 경우 생길 수 있는 갈등의 싹을 사전에 없애겠다는 것이었다.

주장이던 홍명보 현 올림픽대표팀 코치는 “부상 등으로 9개월 만에 대표팀에 복귀했을 때 히딩크 감독이 따로 불러 그간의 훈련 과정과 전술을 설명해줘 적응이 한결 쉬웠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히딩크 감독은 잠재력이 충분했으나 골이 잘 터지지 않아 어깨가 처졌던 설기현에게도 “밤마다 거울을 보고 ‘나는 국가대표 설기현이다. 절대 자신감을 잃으면 안 된다’고 말하라”는 조언으로 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했다.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둔 폴란드와의 경기 전날에도 선수들을 한 명씩 방으로 불러 그간의 체력 상승 데이터를 보여주며 “네 체력이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선수보다 낫다”고 토닥인 것은 폴란드전 2-0 승리의 또 다른 힘이었다.

무엇보다 선수들은 경기에서 진 것을 선수 탓으로 돌리지 않는 감독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5월 프랑스에 0-5로 져 ‘오대영’ 감독이란 비아냥을 들을 때도 “미드필드에서 찬스를 내주게 한 내 판단이 패인이었다. 부끄러워 말자. 약팀에 이기는 것보다 강팀한테 지는 게 미래를 위해 낫다”고 분위기를 추슬렀다. 그해 11월 세네갈에 0-1로 진 뒤엔 “스루패스 한 방으로 무너지던 전례가 오늘 경기에선 나오지 않았다”며 선수들을 칭찬했다. 2002년 초 클럽팀 LA갤럭시에 0-1로 졌을 때 심판 판정에 짜증을 내던 선수들에게 한마디 했으나, 그 지적이란 것이 “경기는 늘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에서 하는 게 아니다. 불리함을 극복하는 능력도 필요하다”며 선수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식이었다.

선수들이 실수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관행을 따르고 변화에 주저하는 선수들의 습성엔 따끔한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됐을 때 한 말이다.

“우리 선수들은 조직 생활을 통해 익숙해진 한 가지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된 길이면 다른 길로 가야 하는데 그 길을 고집하려 한다. 공통적으로 잘못된 것은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인지 그 뒤에 숨어 스스로 책임을 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지 두 달여가 되던 지난 7월7일, 히딩크 감독이 시각장애인 축구 전용 경기장 준공식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잠시 들렀다. 2008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8)에서 러시아를 또 4강에 올려놓은 그는 한국 대표팀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선수들이 국가대표란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한다. 동기부여도 필요하고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야 한다. 선수들이 실수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선수에게 잘못을 돌리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선수들과의 소통과 믿음의 결과를 그라운드에서 보여줬던 그의 말이기에 허투루 들리지 않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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