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0돌을 기념해 기획한 ‘매그넘 코리아’, 매그넘 작가 20명이 잡아낸 434개의 한국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그네들 사진 속에는 언제나 다채로운 색조의 휴머니즘이 넘쳐흘렀다. 포연이 흐르는 전장의 한순간이나 난민의 고통스런 피난길에도, 지구의 대지를 으깨어 곳곳에 인간의 진군을 표시한 개발 현장에도 살 냄새, 욕망과 의지, 갈등이 어김없이 흐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진들. 지난 60년 동안 사람들은 보도사진가 집단 ‘매그넘’의 앵글을 통해 이런 이미지의 진실을 깨닫곤 했다.
매그넘은 지금도 다큐, 저널 사진의 최고봉이다. 1947년 전쟁사진의 거장 카파와 순간 포착의 대가 브레송 같은 당대 최고의 저널사진가들이 결성한 이 장인 클럽은 언제 어디서든 ‘상황과 진실’을 환기시킨다는 주체성과 자유가 신조다. 휴머니즘 다큐 사진들의 교과서로서, 역사 현장 속의 숨겨진 진실을 캐내는 인간 탐험가로서 건재해온 매그넘의 장인들이 지난해부터 돌연 한국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카메라 뷰파인더에 우리 풍경을 잔뜩 넣고 끓이더니, 그 성찬을 올여름 베풀어놓았다.
한국 곳곳을 돌며 찍은 빛, 젊음, 전통…
이 지난 2~3월 수차례 지면에서 일부 선보였던 매그넘 작가들의 한국 사진들이 전시장에 모였다. 매그넘의 야심적인 대한민국 탐구 프로젝트이면서, 창간 20돌을 기념해 기획한 ‘매그넘 코리아’전이 7월4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막을 올렸다. 와 기획을 맡은 한국매그넘에이전트가 수년간의 치밀한 준비 끝에 마련한 이 대형 사진전은 세계적인 사진 대가들이 오직 한국을 소재로, 한국을 생각하며 작업한 국내 최초의 시도다. 정회원 사진가 20명은 지난해 10~30일가량 한국의 서울, 지방 곳곳을 누비며 종교, 전통, 도시와 지방, 빛, 젊음, 영화 등을 테마 삼아 사진을 찍었고, 그 결과물을 추린 434점을 간추려 내놓았다.
작가별 전시관, 8개 주제별 전시관의 순서로 이어서 배치된 출품작들은 대체로 현대 한국 사회의 어수선한 풍경에서 느껴지는 힘과 아름다움에 앵글을 맞추었다. 입장 직후 처음 만나는 벨기에의 색채파 작가 그뤼에르의 사진부터가 세운상가 내 조명기구점을 야릇한 키치풍 구도로 찍은 것이다. 온갖 색깔로 ‘강력하게’ 빛나는 조명 장식 너머로 비치는 세운상가 건물의 강퍅한 풍경이다. 이 작가는 인천공항 철제구조물 아래 벤치에 널브러진 한국인들의 실루엣을 잡아내고, 강변공원의 레스토랑 창가 커튼 아래에서 한강 위 백조보트떼의 어수선한 정경도 초현실적으로 포착하는 내공을 발휘했다. 알렉스 웨브는 도시공원의 기념조형물 위를 떼지어 기어오르는 한국 아이들의 독특한(?) 놀이에 앵글을 들이대 웃음을 머금게 한다.
소비문화에 냉소적인 영국 작가 마틴 파는 핫도그, 국적불명 인형, 울긋불긋한 컵라면을 쌓아놓은 상점의 풍경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뜻밖에도 얼핏 조잡해 보이는 사진 속에서 기묘한 한국적 에너지가 발산되는 것이 느껴진다. 무심코 지나쳤던 한국 풍경의 숨은 아름다움을 끄집어낸 작가들도 있다. 초점과 빛의 효과에 민감한 작가주의자인 핀카소프는 수산시장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냉동 생선상자를 거의 흑백톤에 가깝게 조탁하면서 미학적 풍경을 빚어냈고, 마졸리는 얼음에 채워진 냉동문어와 심각한 연인들의 사진을 초현실적으로 대비시키거나, 풀숲 사이 주차장의 차량들을 서정적으로 부각시키는 감각을 보여준다. 하늘바다에 잠긴 남산타워가 보이는 국립중앙박물관 정면에서의 조망을 인상적으로 잡아낸 회프커나 가을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든 전방 지뢰밭의 역설적 비경을 잡아낸 프랭클린의 작품들도 인상적인 감흥으로 남는다.
이언 베리는 지난 2월 불탄 남대문의 1년 전 모습을 음울한 주변 인물들의 모습과 함께 담아내 눈을 끈다. 아프간 소녀의 인상적 초상사진으로 유명해진 스티브 매커리는 산중 사찰 선승의 신비스런 일상을, 체 게바라 사진으로 유명한 르네 뷔리는 수리 중인 경주 감은사탑을 찍었다.
보수적 작업방식, 역동적 현대성
뒤이은 주제전은 종교사진 대가 아바스가 찍은 국내 각 종교행사의 풍경과 공연예술의 현장, 놀이문화, 시골의 삶, 사랑과 결혼 등을 담은 대한민국 요지경의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밖에 전시장 들머리에서는 참여한 작가 20명의 기존 대표작과 설명을 따로 보여주는 ‘20인의 눈’을, 로비에서는 61년째인 매그넘 역사를 도표로 설명한 역사관을 볼 수 있다.
최근 사실과 조작, 가상을 마구 뒤섞으며 현대미술의 영역으로까지 들어온 현대사진의 트렌드 속에서 매그넘은 다소 노쇠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사회와 현상을 직관하는 매그넘 사진가들의 앵글이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 장소가 여전히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라는 점 때문에 그들의 작업은 더욱 빛나 보인다.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사회적 에너지가 뜨겁고 역동적이며 소통의 욕구가 분출하는 한국에서, 그들의 사진은 보수적인 작업방식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동시대성과 현대성, 심지어 미학적 전위성까지 부여받은 느낌을 준다. 작품 400여 점은 그런 면에서 이미지 사냥꾼들의 눈으로 낯설게 포착한 한국 사회의 가장 객관적인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딸림행사로 전시기간 중 매주 토요일에 토마스 회프커, 브뤼노 바르베 등 매그넘 소속 작가의 대강연회와 사진가 김홍희씨, 곽윤섭 사진기자 등이 발제하는 대화 모임 등이 계속 열린다. 매그넘 회원들이 찍은 한국 요지경 사진 248점을 추려 304쪽에 실은 사진집도 전시 개막과 동시에 고급 양장본(값 10만원)으로 나왔다. 5천~1만원. www.magnumkorea.com, 02-710-0764~7.
[매그넘이 본 한국]
▶ 매그넘이 본 KOREA
▶ ①젊은이- 친근하고 변화무쌍하고 도전적인 눈빛들
▶ ②색깔- 한국의 빛, 한국인의 색
▶ ③종교- 한국에서 외치는 “오,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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