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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死해버린 외톨이, 한국 공포영화

등록 2008-07-10 00:00 수정 2020-05-03 04:25

올여름 개봉작은 한 편, 왜 한국 공포영화는 사다코처럼 목을 꺾어버렸는가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올여름 개봉하는 한국 공포영화는 (8월7일 개봉) 한 편이다. 다른 한 편의 공포영화 는 ‘올해 내 개봉’이라는 수세적인 개봉 일정을 내놨다. 그나마 올 초 혼자 외롭던 라인업에 빠르게 제작이 진행된 가 보태진 것이다. 지난해 같은 시기에 6월21일 을 시작으로 등 한두 주에 한 편씩 개봉한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개봉 규모도 훨씬 줄었다. 2006년 가 전국 277개관에서 개봉하며 세운 공포영화 최다 개봉관 기록을, 1년 만에 이 353개 스크린 개봉으로 갈아치웠었다. 올해 여름의 는 그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블록버스터의 위치로 올라섰던 공포영화가 사다코의 머리처럼 확 꺾였다.

장사가 안 되니까, 재미가 없으니까

올여름 개봉되는 한국 공포영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리에서 상영되는 ‘미국산 쇠고기 공포영화’의 위력이 그렇게 큰 것일까. 먼저 공포영화들의 성적표에 해답이 있다. 지난해 100만 명을 넘긴 작품은 3편이었다. 그나마 황정민이 나온 대작 은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한 참담한 성적이다.

“장사가 안 되니까”에다 한국 영화의 불황이 곱변수로 작용한다. 이영진 기자는 “공포영화는 한 번도 한국 영화의 주식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잘될 때는 쉽게 만들 수 있는 장르지만, 불황인 시기에 ‘간식’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장사가 안 되니까”에 이은 두 번째 이유는 “재미가 없으니까”다. 장르영화 전문 웹진 는 연말에 올해의 공포영화를 뽑는다. 기준은 흥행성이 아니라 장르의 완성도, 오락성이다. 지난해 이 리스트에는 한국 영화가 한 편도 포함되지 않았다. 김종철 편집장은 매년 비슷한 영화 스타일에 관객이 질렸다고 말한다. “2000년부터 꾸준히 5~7편의 한국 공포영화가 나왔다. 그런데 한 해 정리를 할 때 경향성이든 뭐든, 뾰족하게 할 이야기가 없다. 항상 똑같은 영화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객은 지난해에 본 것과 비슷한 것을 또 봐야 했다. 그게 10년 가까이 이어져온 것이다.

성공작은 한국 공포영화에서 창조성 없이 반복되었다. 2003년 전국 관객 300만 명을 넘은 이후 한국 공포영화에는 ‘벽지 공포’ ‘가구 공포’가 유행했다. 의 사다코는 맥락 없이 모든 영화에 출연했다. 안병기 감독은 말한다. “이야기도 대동소이하지만 비슷한 장면을 그대로 반복한다. A영화의 연기자가 놀라는 장면과 B영화의 귀신이 나오는 장면을 반복해서 연결해도 전혀 무리가 안 될 정도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공포영화를 신인감독의 입봉작으로 여긴다. 공포영화의 이해가 없는데도 영화의 메가폰을 맡긴다. 여기에 신인감독의 야심은 공포영화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공포영화는 철저한 기획영화여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숙련도 높은 테크닉이 필요하다. 공포영화는 이야기가 뻔해도 무섭게 잘 만들 수 있으며, 이야기가 기발해도 제대로 못 만들 수 있다.” 김종철 편집장은 같은 맥락에서 지난해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나 흥행에는 실패한 한 영화를 혹평했다. “공포영화 관객 입장에서는 괘씸한 영화다. 장르의 팬덤이 완전하게 형성된 상황에서는 작가주의 호러도 환영할 만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다른 재능있는 감독의 발을 묶을 수 있다.”

공포영화 감독들 “난 공포영화 안 좋아한다”

등 필모그래피를 공포영화로 채우고 있는 안병기 감독은 미국의 라이언 게이츠라는 작은 프로덕션을 모델로 삼아 2002년 토일렛픽쳐스를 세우고 공포영화 육성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진심으로 공포영화를 사랑하는 인력들이 없다는 점이었다고 말한다. “공포영화를 끝낸 감독을 만나보면, 사석에서나 지면의 인터뷰에서 80~90%는 자기는 원래 공포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 다음 작품은 다른 장르를 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한국 영화가 불황이다. 그런데 이런 믿지 못할 숫자들이 있다. 올해 개봉하는 공포영화 기대작인 스페인의 〈REC〉는 18억원을 들였다. 새로운 슬래셔 무비 열풍을 낳은 는 10억원 예산이었다. 강박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가 3억원만 들인 것은 전설이다. 완전히 바닥을 친 한국 공포영화는 지금 ‘그라운드 제로’에 서 있다.



닳고 닳은 공포영화 클리셰

닳고 닳은 공포영화 클리셰

▣ 김종철 영화평론가·익스트림무비(extmovie.com) 편집장

2000년부터 활기차게 제작된 한국 공포영화는 7년 남짓한 세월이 지나면서 원래 의도와는 다른 현상을 만들었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마땅히 무서워야 하는데, 그 반대로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모두 무분별한 베끼기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다.
그 첫 번째는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분한 야마무라 사다코에 대한, 개념을 상실한 복제 행위다. 한국 심령 공포영화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은 토속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귀신들은 너도나도 사다코를 지향했다. 긴 머리는 반드시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하고, 머리카락 사이로 분노에 찬 눈동자가 살짝 보이면 코믹의 강도가 올라간다. 이런 이미지 활용의 최고 히트는 두 편의 영화다. 며칠 간격으로 개봉된 이 두 영화는 소재가 전혀 다름에도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똑같이 사용하면서 관객의 실소를 자아냈다. 충무로가 얼마나 안일한 방식으로 공포영화를 만드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두 번째는 이 등장하면서 관절꺾기가 업그레이드되면서 벌어지는 촌극이다. 시작은 사다코의 각기춤을 모방하지만, 여기에 가야코의 필살기를 더하면서 궁극의 코믹 장면을 완성했다. 이 방면의 최고 영화는 를 당할 자 없다. 복도에서 나타난 붉은 옷을 입은 귀신은 로봇춤을 추듯이 거의 발광 수준으로 관절을 꺾으면서 순식간에 집 내부로 텔레포트하며 관객을 웃겼다. 극장용 영화만이 아니라, 케이블 공포시리즈 에서도 사다코의 외형과 관절꺾기, 그리고 순간이동 기술을 그대로 흉내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관객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는데 영화는 시치미를 뚝 떼고 엄청난 반전이 있는 것처럼 오버하는 경우다. 독특하게 한국산 난도질 스타일을 추구한 는 의 구성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베일이 벗겨지는 순간 허무한 웃음을 자아냈고, 의 경우 제목과 포스터만으로 비밀을 모두 알려줘놓고 결말 부분에서 꽝꽝 효과음을 때리면서 “이건 몰랐지!”라며 관객을 순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엽기 행각을 보여주었다.
반전은 아니지만, 관객은 웃고 있는데 극중 배우는 너무나 심각해 웃음의 강도가 업그레이드되는 경우도 있다. 에서는 다리를 저는 여자 연쇄살인마와 대적하면서 2:1이라는 수적 우위에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공포에 벌벌 떠는 건장한 남자를 집요하게 묘사하며 눈물을 뿌리게 했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웃어야 하는 현실은 정말 슬프다. 부디 관객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코믹이 아닌 무서운 장면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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