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오타니대학 박물관, 전투교범 유일본 공개… 임진왜란 전 명나라 교본을 조선 갑진자로 찍어 변방에서 활용해 </font>
▣ 교토=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16세기 말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전리품으로 털어간 조선의 16세기 초 기밀 군사문헌이 일본 교토에서 500여 년 만에 처음 세상에 나왔다.
교토에 있는 불교계 학교인 오타니대학 박물관은 최근 취재진에게 연산군 재위 연간인 1501년 이전 조선에서 인쇄해 쓴 중국 명나라 야전 전투교범인 의 간행본 1책과 고려 말~조선 초 희귀 문헌들을 단독 공개했다. 특히 는 조선은 물론 중국에도 다른 판본이 전하지 않는 유일본으로 확인돼 전통 전쟁사 연구에 획기적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훈련장 배치도, 위치와 규모 등 담아
는 1권 1책으로 여러 대열을 세워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방법과 무기, 전차(수레), 병사 편제에 대한 원칙 등을 담은 병법서다. 표지에는 1501년 3월 당시 압록강변에서 여진족과 대치하던 평안도 이산(오늘날 평북 초산) 군수 이지방에게 왕실이 이 책을 하사했다고 기록돼 있다. 문서 맨 앞부분에 왕실이 하사한다는 ‘내사’(內賜)란 구절이 보이고, 병서 1책을 주었다는 증빙으로서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던 관리인 좌승지의 압인(날인)도 찍혀 있다. 1484년 등장한 조선의 금속활자 갑진자로 찍은 이 병서는 1501년 책을 하사하기 전에 인쇄한 것이 확실하다.
는 원래 1492년 중국 명나라에서 처음 펴냈다. 서씨라는 전략가가 북방 이민족과 대치했던 최전방 고을인 산시성 다퉁을 배경으로 효과적인 방어전략과 훈련법을 서술한 것인데, 조선의 국방 상황에도 맞아 당시 왕실이 신속히 입수해 재판을 찍고, 변방 지방관들에게 간간이 건넸던 것으로 보인다. 변방의 외적 침입 때 야전 전투교범을 제시한 이 병법서는 군진의 배치와 훈련방법, 적과의 대치시 대응법, 전투 시나리오 등을 최전방 다퉁의 지형지세에 맞게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박물관 쪽이 일부분 공개한 를 살펴보면, 평상시 야전 훈련의 필요성과 마음가짐 등에 대한 교훈을 강조한 서문(머리말)과 일부 훈련 진법, 대형 등에 대한 구절, 그림 등이 보인다. 서문에는 장수는 반드시 훈련한 뒤 정예로워지고, 병사는 반드시 훈련한 뒤에야 쓰일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어 훈련하면 익혀지고 익히면 통하고 통하면 변화무쌍해진다는 병법의 기본을 서술했다. 본문에는 훈련장의 배치도, 위치와 규모, 실전 전술훈련을 위한 기병·보병의 배치 얼개 등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말 탄 기병과 서서 싸우는 보병, 그리고 전투용 수레인 전차의 3요소를 어떻게 조합시켜 훈련하는지를 풀어쓰고 있다. 각 부대별로 진을 세워 적 앞에 내세우는 전법을 실제 장기판의 말판과 비슷한 그림을 넣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설명한 대목도 눈에 띈다. 적진에 포위됐을 때 수레인 전차를 우선 방벽으로 세우고, 사이사이 화약무기(일종의 대포)인 ‘신기’를 배치해 적을 타격하며, 그 내부에 일종의 정예 기동예비대인 ‘유군’을 배치해 만일에 대비하는 전술 교리의 내용도 흥미롭다.
전통 군사사 연구자인 노영구 국방대학원 교수는 기존 문헌에 전해졌던 조선의 전투기법들은 전체적 차원의 전술·전략 중심인데, 이 병서는 일일이 군사와 말, 전차를 통제하는 법을 기록한 세부 교범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분석했다. 개괄적 진법만 보여주는 기존 병서들과 달리, 훈련장의 위치와 편제, 적전 상황에 대한 가상 묘사 등 생생한 실전 전투교범의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왕조실록을 보면, 15세기 조선은 평온한 듯 보였어도 실제로는 여진족과의 대치 국면이 지속되고 성종 때는 두 차례 토벌을 감행하는 등 국경에 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면서 “중국에서 일급 보안자료였을 이 병서가 중국 출간 불과 수년 만에 조선 활자로 다시 찍혀 지방 수령에게 전달됐다는 것은 당시 국방 정세가 그만큼 엄중했음을 암시한다”라고 짚었다.
개괄적 진법 대신 생생한 실전 전투교범
중국 역대 왕조는 우방국에도 군사용 병법서의 유출을 엄격히 금지했다. 이 때문에 이 병서는 베이징으로 간 조선 사신단이 몰래 입수하는 등의 ‘비공식적 절차’를 통해 조선 왕실에 전해진 뒤 다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노영구 교수는 “임진왜란 전 조선·중국의 변방 방비 체계 등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전하는 문헌이 드물었기 때문에 이 병서본 발견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하고, “교범은 변방에서 거의 그대로 응용하면서 요긴하게 썼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병법서는 15세기 초 조선 태종 때 제주도에서 찍은 (黃石公素書)로, 최근 고서연구가 박철상씨가 학계에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임란 이전의 병법서나 군사문서들은 일본으로 다수 유출돼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공개된 다른 문서 유물들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1277년 원나라에 부역한 고려인 관리 이윤승 부부가 중국 항저우 대보녕사에 발원하면서 중국 종이로 만든 대장경판, 천태종을 세운 대각국사 의천의 문집, 1575년 부제학 유희춘이 저명한 유학자의 전기와 문집을 모아 만든 희귀 문헌인 , 극히 드문 도자기 활자로 찍었다는 18~20세기 간행본 등이 보인다. 임란 전 명나라에서 전래된 불교 전파 사적기인 의 경우 당시 국내 변두리인 전남 화순 쌍봉사에서 다시 찍은 것으로 기록돼, 15세기 조선 나라 안 곳곳에 양질의 인쇄술 문화가 퍼져 있었음을 입증하기도 한다.
2003년 개관한 오타니대 박물관은 20세기 초부터 수집해온 고려·조선 시대의 불교·유교 관련 문헌, 서적, 탁본 등 1만4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컬렉터 기증으로 이뤄진 이들 소장품은 정밀한 문헌목록 해제작업이 본격화하지 않아, 공동 연구가 성사된다면 새 자료들이 추가 발굴될 소지는 충분하다. 문헌을 처음 확인한 동국대 정우택 교수(미술사)는 “오타니대 박물관은 중·근세 희귀 문헌의 숨은 보고”라며 “한·일 학자들이 장기 계획 아래 분야별로 문헌들을 정밀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요토미가가 가신들 선물로 나눠줘
오타니대 컬렉션은 상당수가 국립교토박물관 관장과 이 학교 교수를 지낸 간다 기이치로(1897~1984)에게서 기증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 전래 과정에는 흥미로운 물음표가 붙는다. 박물관 쪽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가에서 전쟁 뒤 노획품으로 가져온 수백 권의 서적을 가신이나 부하들에게 선물로 나눠주었고, 그중 일부가 간다 같은 컬렉터들 손에 들어간 것이라고 밝혔다. 는 도요토미가의 주치의 격이던 한 의사 가문에 치료를 위해 수고한 대가로 내린 선물이었다고 전해진다. 중요한 군사서적을 왜 의사에게 선물로 줬을까. 박물관의 문헌들은 말없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오타니대 박물관 쪽은 의 표지를 비롯해 조선, 고려, 중국 등의 옛 문헌 컬렉션 20여 점을 추려 8월4일까지 ‘중국·한국의 문물과 전적’이란 이름으로 기획전시도 하고 있다. www.otani.ac.jp/kyo_kikan/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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