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 다툼을 넘어 인간 욕망의 본질적 문제로 ‘권력’을 말하는 장정일 원작의
▣ 안치운 호서대 연극학 교수·연극평론가
연극은 세속적인 예술이되 그 세속적인 것에 저항한다. 이 표현은 연극을 정의하면서 연극의 값을 매기는 중요한 잣대이다. 대학로 연극은 한국 연극의 세속적 중심이다. 내로라하는 희곡 작가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그러나 이 연극들이 연극의 본원에서 거세된 채로 있는 경우가 많다. 세속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겉잡아서 말하자면, 대학로는 더 이상 한국 연극의 중심이라고 볼 수 없다. 한국 연극의 미래는 대학로를 부정하고 그 밖에서 새로운 영토를 마련해야 한다.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한, 연극하는 우리 모두의 발목은 잡혀 있는 꼴이다.
내 삶을 연역하게 만드는 ‘품위’
장정일이 쓰고 김재엽이 연출한 (6월29일까지,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을 보기 전에 희곡부터 읽었다. 오늘날 대학로의 연극들은 대부분 너무나 뜨겁고 들떠 있다. 그러니까 차분하게 사건이 있고, 그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이 언어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연극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렇게나 하는 말들이 연극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통에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연극은 언어에 의해서 행동의 품위가 결정되는 예술이다. 오늘날 대학로 연극들은 이런 경향과 동떨어져 있다. 을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품위 있는 연극을 보고 싶다. 인간의 말과 행동이 고뇌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연극을 보고 싶다. 내 삶이 저 연극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싶다. 연극을 보고 나서 내 삶을 참으로 다시 한 번 연역하고 싶다.
많은 대학로 연극들 가운데 을 골라 쓰는 바는, 연극이 삶의 짧은 연대기이고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셰익스피어의 정의를 이번 연극에서 찾아볼 수 있어서다. 천하가 한 사람에 의해서 평정된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황제라 칭한다. 그러나 아직 백성들은 전쟁통에 어느 곳에도 귀속되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지식인들은 고전을 암송하며 세상의 본뜻을 본받으려 한다. 그럴수록 권력자는 법을 엄하게 하여 모든 백성들과 지식인들을 얽어맨다. 귀족들과 유생들의 결탁과 경거망동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분서와 갱유를 명한다. 책을 태우는 것은 “하늘의 도만 따질 뿐 사회 진화에 대한 관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유생들이 떠받드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천하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황제의 큰아들이 이런 사실을 말하지만, 황제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무례하다는 것. 결국 황제는 세상의 목소리를 전하는 큰아들 부소를 북쪽 끄트머리, 몽염 장군이 있는 변방으로 내쫓아버리고 만다. 황제 곁에는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환관 조고와 같은 이들만 남게 되고, 그렇지 않은 인물들은 제거된다. 그렇게 권력자는 중앙집권의 든든한 반석을 마련해나간다. 은 바로 이렇게 시작된다.
권력의 거세는 남성성의 거세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몽염 장군 역시 황제의 아들 부소와 마찬가지로 중앙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다. 그는 이름난 장수였지만 백성의 안정을 구하는 것보다는 시황에게 충성하려는 일념으로 백성을 혹사시키는 인물이다. 그에게 이러한 과오를 말하는 이는 흰옷을 입고 산발한, 억울해서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여성(귀녀, 마녀)이다. 이 부분은 셰익스피어의 과 에 나오는 마녀를 연상시킨다. 부소는 몽염 장군 곁에 있으면서 지독한 속병과 성병으로 점차 남성성을 잃어간다. 작가 장정일은 부소의 이름에 괄호를 치고 ‘(여)’라고 쓰고 있다. 남성인 부소는 영생 불사약을 만들고, 이를 먹어 젖가슴이 부풀고 목소리도 가늘고 높아지면서 점차 여성화되는 인물로 변모한다. 나라(극중에서는 진국)의 최고 명장인 몽염과 현명한 큰아들 부소는 이렇게 중앙권력에서 거세돼 북쪽 변방에 같이 있다.
이제 극중 사건은 황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복잡해진다. 누가 왕이 될 것인가? 황제가 죽기 전에 만든, 큰아들에게 남긴 옥새가 찍힌 유고에는 “군대는 몽염에게 맡기고 함양에 와서 나의 영구를 맞아 장사를 지내라”고만 쓰여 있을 뿐이었다. 황제 곁에 있던 다른 이들이 큰아들 부소에게 내린 편지를 고쳐 쓴다. 그 안에는 “부소는 아들 된 도리로 효성스럽지 못하므로, 칼을 내리니 자결하라. 장군 몽염은 신하된 자로서 충성스럽지 못하였으므로 죽음을 내린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부소는 자결하고 몽염은 양주의 옥에 갇히고 다른 아들이 왕좌에 오른다. 그리고 극의 끝에 이르러 몽염도 자결하고 만다. 몽염은 죽기 전, 부소의 주검 앞에 꿇어앉아 이렇게 읊는다. “아름다운 젊은이여, 어진 공자여, 나는 그대가 사랑한 남편, 그대가 사랑한 오빠. 아름다운 아들이여, 아름다운 형제여, 내게 돌아오시오, 다시 돌아오시오. 해를 돌리는 신이시여, 달을 돌리는 신이시여. 나의 누이, 나의 아내를 돌려주소서.”
이 작품은 권력을 말하되, 거칠지 않다. 권력에서의 거세가 곧 남성성의 거세로 옮겨오는 셈인데, 부소는 남성이었지만 스스로 여성으로 전환되는 약을 발견하게 되어 여성으로 변신한다. 이것 역시 권력에 대한 저항일 터이다. 작가는 부소가 “자신이 새로 선택한 아버지이자 남편인 몽염과 애정을 나누는 것으로 제국, 권력, 아버지로부터 도망하는 것과 더불어 자기 부정과 변신을 완성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여 부소는 몽염에게 누이이며 아내가 된 셈이다. 이 부분이 이 작품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이며, 공연의 핵심이기도 하다. 권력싸움이 곧 단순한 왕위 찬탈이 아니라 인간 욕망의 본질적 문제임을 말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아, 저 일월처럼
그러나 이 부분은 희곡과 공연에서 충분히 언급되거나 표현돼 있지 않다. 그래서 관객이나 독자는 몽염이 죽기 전에 외치는 다소 갑작스러운 대사에 당혹스러움이나 섬뜩함을 느낄 수도 있다. 연출가는 여자 배우에게 부소 역을 맡게 했는데, 이 부분이 복잡했다. 공연은 끝 부분인 제5장(자객의 장)에 이르러 4장에서 이미 자결한 것으로 그려졌던 부소가 수은과 비소 중독으로 죽었거나 자객에 의해 살해당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사족처럼 보인다. 을 보면 세상은 한 치도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해와 달이 우리 머리 위에 늘 그대로 뜨고 기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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