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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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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대북 긴급 식량지원’이다

등록 2008-06-27 00:00 수정 2020-05-03 04:25

다큐라고 떼쓰고 싶은 , 정토회 긴급구호단장 오태양이 영화를 잉태한 현실에 대해 몇 마디 거드는 말

▣ 오태양 정토회 청년직능국 사무국장·긴급구호단장

그대로였다. 영화 속 꽃제비 준이(김영수의 아들)는, 내가 1999년 겨울 중국 옌볜에서 만났던 꽃제비 소년들의 허기진 삶을 고스란히 재생하고 있었다. 그 거리의 꽃제비들도 식량난으로 부모·형제 다 잃고 그저 먹기 위해, 살기 위해 이역 땅을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허구적인지…

그대로였다. 영화 속 탈북자 김영수(차인표)는, 10여 년 전 목숨을 걸고 두만강과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 1세대 김홍일(가명)씨의 파란만장한 사연을 빼닮았다. 나는 대북지원 비정부기구(NGO)에서 수년간을 그분과 함께 일했는데, 명절 때면 으레 북녘에 남겨둔 아내와 자식 생각에 타버린 가슴살을 독한 술로 씻어내곤 했다.

그대로였다. 영화 속 식량을 찾아 국경을 넘은 조선의 아낙네들은 내가 알고 지냈던 한 동갑내기 새터민 여성의 가슴 아픈 사연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고난의 행군 시절 식량을 구하려고 겨울 기차에 몸을 실었다가 그만 혹독한 동상에 걸려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기구한 사연마저도 웃으며 말하던 여장부였다. 그 또한 식량난으로 가족을 잃었다고 했다.

그대로였다. 브로커의 안내로 몽골 국경을 넘으려 했던 그 조선 여인들과 아버지를 찾아나선 준이의 역정은, 나에겐 아우뻘 되었던 탈북청년 최정진(가명)의 몽골 생존기와 진배없었다. 공안을 피해 중국 오지를 떠돌던 정진이는 한국행을 결심하고 한겨울 오직 별빛만을 의지한 채 먹을 것도 없이 사막을 헤매다가 몽골 군인에게 발각되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골 사막에 쓰러진 준이의 어깨너머로 보였던 사막의 찬란한 밤하늘을 보며 녀석 생각이 났었는데, 얼마 전 다시 만나 수년 만의 회포를 풀 수 있었다.

이렇게 영화 을 보며 동포들에게서 귀동냥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은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다”라고 떼쓰고 싶다. 어쩌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래서 영화가 진실을 기만하는 것인지, 현실이 영화보다 더 허구적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살아 있는 리얼리티’를 품고 있는 수작임이 틀림없다.

사실 나는 ‘영화 ’을 평하는 데는 워낙 소질이 없어 기권을 하고 싶다. 그러나 ‘에 비친 현실’ ‘을 잉태한 진실’에 대해서는 이 지면을 빌려 몇 마디 거들고 싶다. 크로싱(엇갈림)의 시작은 ‘먹을 것’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김영수는 폐결핵으로 고통받는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려 하지만, 옥수수 나락이 전부인 빈 독을 안고 고민하다가 결국 아들 준이가 제 몸처럼 돌보는 백구를 잡아먹는다. 준이는 토악질을 하며 울며 뛰쳐나가지만 결국 아버지와 화해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시 떠나야만 한다. 병든 아내, 어린 아들, 아내 뱃속의 둘째아이를 뒤로한 채. 이유는 ‘식량과 약’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엇갈림, 이별, 비극의 시작이자 전부가 된다.

최후의 생존… 벼뿌리 말린 죽, 소나무 껍질죽

내가 말하고 싶은 지금 북한의 ‘현실과 진실’의 키워드는 바로 ‘아사’이다. 그냥 배고픔도 아니고, 굶주림(기아)도 아니고, ‘아사’(餓死·굶어죽음)라는 말이다. 좀더 사실에 충실하자면 ‘대량 아사’가 적확하겠다. 현재 북한의 상황은 1990년대 중·후반의 식량난으로 인한 300만여 명 대량 아사 사태와 너무나도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금도 이미 주민 다수가 옥수수죽, 풀죽은 고사하고 장파열을 일으키는 ‘벼뿌리 말린 죽’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벼뿌리마저 다 캐가고 없는 빈 들판에서 이제 남은 최후의 생존 단계가 ‘소나무 껍질죽’이다. 사람이 먹을 게 없어 소나무 껍질을 벗겨 죽을 쑤어 먹는다는 것이 도대체 이 지구상에서, 21세기 최첨단의 시대에 ‘이해’되고 ‘용납’할 수 있는 일일까? 평양이나 개성을 다녀온 수많은 정부 관계자, 사회 인사들은 “북한 사정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는 아사의 출현지는 공화국의 심장이 아닌 말초신경이다. 2006~2007년 연이은 대규모 수해 피해 지역이었던 황해도와 평안남도가 현 아사 사태의 진앙지다. 이미 수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외부 지원이 없다면 6~7월에만 수십만 명이 떼죽음을 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는 흉흉한 입말이 그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다.

‘인도적 상호주의’ ‘요청하면 지원한다’ ‘퍼주기’…. 대북 식량지원에 관한 여론이 일어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얼굴 없는 댓글들이다. 대북 식량지원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조건이 붙어서는 안 된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꺼내주면 뭐 해줄래?”라고 물을 것인가? ‘인도주의’ ‘인류애’ ‘동포애’의 근본 속성이야말로 ‘퍼주기’가 아닐까? 조건 없이 퍼줄 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지원한 쌀이 군량미로 가지 않겠느냐?’라는 의구심이 든다면 한 인민군 장교 출신 동포의 체험을 새길 필요가 있겠다. “설령 군량미로 가더라도, 젊은 군인들도 먹어야 사는 것이고, 혹여 식량을 주는 사람에게 총을 겨눌 수 있겠는가?” 맞는 말이다.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고도 하지 않는가?

엇갈림을 막을 방법이 있다. 제2, 제3의 준이가 나와서는 안 된다. 김영수는 중국 공안에 쫓겨 뛰어다녀야 할 사람이 아니라 그라운드에서 축구공을 몰며 뛰어다녀야 할 사람이었다. 희생을 막는 시작은 ‘대북 긴급 식량지원’이다.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서 국경을 넘는 동포, 가족과 생이별하는 이야기들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지 않았으면 싶다. 한쪽은 안전한 먹을거리 문제로, 한쪽은 부족한 먹을거리 문제로 남북한이 공히 ‘먹는 문제’로 몸살인 이때가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남쪽에서는 육식을 줄여서 건강을 찾아가고, 남은 돈을 북한 동포를 살리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어렵지 않다. 옥수수 20kg이면 북한 동포 한 가족(4인)이 한 달을 연명할 수 있으니 1만원이면 충분하단다(문의 정토회 02-587-8995,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02-734-7070). 나는 건강을 유지하고, 타인의 생명도 살릴 수 있으니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해지는 상생의 길’이 아닐까 싶다.

생명의 촛불을 들자

오늘 글 쓰는 날까지 이레를 굶어보았다. 북한 동포의 ‘굶주리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자 함이었다. 어느 날인가 어지러움이 들어 잠시 텅 빈 방 안에 누워 있는데, 이렇게 멀뚱히 죽어갔을 동포들의 절망감이 온몸을 전율하게 했다. 마치 배고픔과 병마와 싸우다 텅 빈 방에서 홀로 죽어간 ‘준이 엄마’처럼 말이다. 굶기를 마치고 식당 아주머니가 끓여준 묽은 누룽지 한 그릇을 먹었다. 맛있었다. 굶는 동안 언젠가는 먹을 수 있다는 밑바닥 희망이 나를 지탱하게끔 했다. 그런데 어디에도 먹을 게 없어서 ‘굶어서’ 서서히 죽어간다니…. 어쩌면 북한 동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그런 ‘희망’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는 굶어 죽어가는 우리 이웃을 위해 생명의 촛불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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