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드림웍스의 , 홍콩 무술영화가 정치적 고려뿐만 아니라 상업적 선택으로도 탁월한 이유</font>
▣ 김봉석 영화평론가
라는 제목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게으르고 뚱뚱한 동물의 대명사인 팬더가 쿵푸를 한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왕자님이 아니라 녹색 괴물이 공주와 결혼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불가능은 없다’의 세계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면서, 그 안에서 기묘한 조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힘이다.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동물 중 하나인 팬더가 쿵푸의 마스터가 된다는 설정만으로도 는 충분히 흥미롭다.
세상 가장 게으른 동물이 쿵푸를 한다
대대로 이어지는 국수 가게의 외아들인 팬더 포는, 쿵푸 마스터가 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평균 수면 시간 22시간, 이동속도 시속 30cm, 몸무게 160kg의 팬더가 쿵푸 마스터가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그러나 비법이 적힌 ‘용문서’의 전수자를 찾는 대회에 구경 간 포에게 의외의 일이 벌어진다. 현인 우그웨이가 용문서의 전수자로 ‘무적의 5인방’이 아니라 포를 찍은 것이다. 시푸 사부와 5인방은 반발하지만 우그웨이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때 시푸 사부의 배은망덕한 제자이자 한때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감옥에 갇혀 있던 초절정 고수 타이렁이 탈옥해 용문서를 찾으러 온다. 과연 포는 타이렁을 이길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쿵푸를 제대로 배울 수나 있는 걸까?
드림웍스가 를 만든 것은 분명 속보이는 일이다. 외교사절로도 쓰이는 중국의 상징적인 동물 팬더가 중국 최고의 문화상품 소림사의 쿵푸를 선보이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올여름에 열리는 베이징올림픽을 염두에 둔 것이다.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쿵푸 애니메이션으로도 끌어보려는 것. 영화사가 시류에 영합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영화사와 제작자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정치적 고려가 아니라 상업적 선택이니까. 게다가 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베이징올림픽 때문만이 아니다. 베이징올림픽은 단지 기회를 제공했을 뿐,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일찌감치 조성돼 있었다.
와 근친관계인 영화는 얼마 전 국내에도 개봉된 이다. 홍콩 영화 최고의 액션 스타였던 청룽(성룡)과 리롄제(이연걸)가 처음으로 같이 연기한 은 할리우드 영화지만, 같은 중국의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무협지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판타지다. 그러나 동과 서가 하나의 영화 속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청룽과 리롄제가 아니었다. 은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이고, 청룽과 리롄제는 그를 인도해 진정한 성인, 영웅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구실을 담당한다. 즉, 백인 소년이 주인공이고, 청룽과 리롄제는 그를 돕는 조연일 뿐이다. 은 동양적인 요소로 가득하지만, 어디까지나 백인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낯선 묘기에서 익숙한 액션으로
동양적인 가족영화 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홍콩의 무술영화가 이미 할리우드의 주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1970년대 백인 소년과 청년들이 리샤오룽(이소룡)에게 잠시 열광했던 이후, 홍콩 무술영화는 조금씩 꾸준히 서구에 소개돼왔다. 그리고 의 쿠엔틴 타란티노와 의 워쇼스키 형제 같은 홍콩 액션영화 마니아들이 할리우드의 거물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향력도 커져갔다. 할리우드로 건너간 청룽은 그의 캐릭터를 활용한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홍콩 무술은 더 이상 낯선 묘기가 아니라, 익숙한 액션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의 백인 소년이 쇼브러더스의 무술영화 마니아인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의 포가 쿵푸 마스터가 되어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은 시대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드림웍스가 베이징올림픽에 맞춰 쿵푸를 하는 팬더를 주인공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는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 부모에 대한 사랑이나 자신의 약점을 이겨내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일하게 중국의 역사를 소재로 만든 과 다른 점은, 리얼리티에 구애받지 않는 지극히 장르적인 스토리라는 것이다. 은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서, 인물의 감정을 전달한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남장을 하고 적은 물론 ‘편견’과도 싸워야 하는 뮬란의 처지는 쉽게 이해가 된다. 반면 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다소 황당한 스토리 라인으로 끌어간다. 무협지적 구성 같은 홍콩 무술영화의 공식에 익숙지 않은 관객에게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에피소드와 인물들로 일관하는 것이다. 드림웍스가 를 만든 것은, 이미 무협지적인 구조가 미국 관객에게 충분히 익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는 어린이용의 단순한 애니메이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팬더가 쿵푸 마스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포가 마스터가 되는가를 보여주어야만 하지만, 는 단지 용문서의 비밀에만 집착한다. ‘비법은 없어. 너 자신을 믿는 것이 제일 중요해.’ 단지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5인방과의 갈등도, 타이렁과의 대결도 크게 설득력은 없다. 홍콩 무술영화를 더욱더 과장된 코미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으니, 어느 정도의 억지와 허술함을 눈감아줄 뿐.
취약한 동작 표현을 나름대로 극복해
를 아주 새로운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를 보고 있으면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이 점점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주류에 진입한 홍콩 무술영화의 장점을 받아들여,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구현한 발상은 주목할 만하다. 포의 목소리를 연기한 잭 블랙의 코미디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기발한 슬랩스틱 코미디가 중심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시아 출신 스토리 작가와 애니메이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만들어낸 의 ‘움직이는 그림’은 꽤 신선하다.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된 쿵푸 액션을 보는 느낌도 인상적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에는 능하지만, 격렬하고 임팩트가 강한 액션 스펙터클에 다소 취약했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약점을 나름 극복하고 있다.
과 마찬가지로 홍콩 무술영화의 할리우드 버전을, 그것도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것은 대단히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다. 여전히 할리우드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저기서 많은 것을 베끼면서도 늘 할리우드 방식으로 재구성해 새 상품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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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