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적인 구도로 세상 들여다보는 중견 사진가 이갑철의 근작전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봄꽃 핀 나무가 춤춘다. 미친 여자처럼 가지를 풀어헤쳤다. 연꽃에는 불꽃이 올라붙었다. 곱게 위로 훨훨 타오른다.
중견 사진가 이갑철씨(49)의 흑백사진 틀에는 카메라와 함께하는 몸부림이 느낌으로 남는다. 정밀 광학기계인 카메라가 난장판 사물놀이의 꽹과리처럼, 굿판 벌이는 방울처럼 신명의 소품이 된다. 퐁퐁 튀어오른 개울 물방울, 빗살처럼 이지러진 일본 교토 절집 부처님, 찰나 지나가버리는 중국 윈난성 물소떼의 등에 렌즈가 춤을 추며 달라붙었다. 카메라 앵글은 주인이 ‘마음 잡혔다’는 느낌이 올 때 속사포처럼 잽싸게 미친 듯이 약동한다. 신명과 광기의 스냅일까. 작가는 그 작업이 거의 의식 없이 직감으로 이뤄진다고 털어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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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3일까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씨의 근작 사진전(02-418-1315) 또한 침묵 속에서 사진으로 뿜어낸 인간과 세상, 자연의 기운을 보여주려는 뜻을 담았다. 2002년 금호미술관에서 ‘충돌과 반동’전으로 한국적인 집단 신명과 무의식을 끄집어내며 사진동네에 충격을 안긴 지 6년 만이다. 2002년 전시에서 광기의 굿판 한가운데에 들어간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꼈던 관객이라면, 지금 이 전시가 어떤 울림을 전할지 상상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남한 땅 곳곳은 물론, 중국 윈난성과 일본 교토 등지를 전전하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하늘, 땅 자연의 모습을 찍은 출품작들은 여전히 흔들린 화면에, 생명의 약동을 거칠게 드러내고 있다. 전북 임실의 눈 덮인 설산이 아래 언덕에 피어오르는 망자의 장례식 연기에 다소곳이 앉아주는 풍경은 생물체처럼 교감하는 산기운을 초현실적 구도로 드러낸다. 경남 합천의 소나무숲에 날리는 폭설은 광기를 머금었으나, 사천의 숲에 내리는 함박눈은 살뜰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지난 5년 동안 작가는 불경 에 나오는‘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의 세계를 꾸준히 생각해왔고, 그런 사색의 흔적을 사진 곳곳에 혼곤히 심으려 애썼다고 한다. 어느 곳에나 다 있는 하늘·땅·물·개울이지만, 특정한 장소에 따라 다른 결로 빚어지는 기운을 담아내겠다는 시도. 보이지 않지만 침묵 속에서 사진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실체가 없는 기운이 인연으로 모여 형체를 만들고 다른 형체로 옮겨가는 것들…. 형체이자 기운이기도 한 빛의 파장과 불꽃 따위를 사진의 소재로 집어넣은 시도는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반면 대구 팔공산 동화사 길을 올라가는 불자들과 스님들의 상체 뒷모습을 찍은 작업은 마치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명의 영기싹 같기도 하고, 스님의 뒷머리를 턱하니 찍은 사진은 불교의 우주적 진리를 그림으로 풀이한 만다라도 같기도 한 착시를 안겨준다. 거칠게 화면을 툭 자르거나, 사선으로 구도를 잡는 기법은 여전하지만, 광각렌즈로 사물에 밀착해 흔들리는 이미지를 추상화처럼 변모시키는 작업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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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부터 특정한 제목을 달지 않고, 찍은 장소와 시점만 사진 제목으로 달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게 더욱 미묘하게 다가옵니다. 어디서든 보는 자연이고 사람인데, 특정 지역에서는 마치 거기에 걸맞은 기운이 도드라지게 사는 것 같아요. 의도하지 않은 사진들이고, 내 몸속에서 직감이 꿈틀거려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방랑하다 직감으로 찍는 것이 생활
미리 생각하고 구상하는 다른 사진가들의 작업에서는 그만의 찍기 버릇은 거의 나오기 어렵다. 줄곧 언제 어디서든 헤매면서 직감의 내용물을 시선과 의식에 채우는 것이 생활로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잡지 등에서 풍경 사진 등을 찍으면서 10년여 이땅의 굿판, 망자와 산자가 어우러지는 상가, 수려한 산골, 바다, 들판을 돌았다. 신명, 정한의 기운 넘치는 곳에 카메라를 포개고 삶을 포갰더니, 이제는 찍는 과정이 정말 삶처럼 즐기게 되어버렸노라고 이씨는 말한다.
진주 출신인 이 작가가 까탈스런 평단의 호평을 받은 것은 육명심 작가의 말대로 ‘사진을 통한 뚜렷한 자기 발견’으로 작업의 지평을 넓혀왔기 때문이다. 80년대부터 ‘거리의 양키들’ ‘도시의 이미지’전들을 통해 공간과 시간, 작가의 존재를 일치시키는 스냅 촬영의 테크닉을 발견했고, 88년 ‘타인의 땅’전에서 사물의 기운을 흔들리고 풀린 앵글로 포착하는 소신을 확고히 챙겼다. 뒤이은 ‘충돌과 반동’전에서 이땅 곳곳의 전통 정한의 세계, 원초적 샤머니즘의 혼돈을 ‘본능적 생명충동’(사진가 강운구의 평)으로 포착해 작업의 화두까지 틀어쥐었다.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브레송, 대도시 뉴욕의 암울한 서정을 거친 스냅 사진으로 찍은 클라인의 성취까지 그 과정에서 자기 것으로 녹여냈다. 그런 면에서 이 전시는 그 뒤 좀더 산만해진 자기 모색의 혼돈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선문답 같은 세계 속으로 좀더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주는 풍경이 있고, 이전과 같은 한국적 정서가 넘실거리는 사람들 초상도 있으며, 전위적으로 형상을 흔들어 해체하는 정물 작업도 있다. 저녁 하동 들녘에서 미친 듯 타오르는 장작 불꽃과 문경 고찰의 새벽녘 치미에 앉은 까마귀의 모습 등에서 무엇을 생각했던 것일까. “눈앞이 캄캄한 게 좋다”는 작가는 말한다. “렌즈 앞의 정물에 더 밀착한다는 것 외엔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찍으려고 해요. 타히티 대자연 속에서 고뇌했던 화가 폴 고갱 생각이 요새 부쩍 납니다. 나도 그렇게 묻힐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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