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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골 조각을 사수하라

등록 2008-01-18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C12D84"> [푸르름]</font> <font color="darkblue"> 친환경 비료로 꾸민 ‘아파트 숲’ 아닌 ‘아파트 속에 숲’ 광주 첨단대우아파트</font>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더 이상 우려낼 것 없는 사골은 쓸모없다. 그러나 광주시 월계동 첨단대우아파트 주민들은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마지막 사골 조각까지 소중히 여긴다. 친환경 비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은 쓰레기를 버릴 때 사골을 따로 모아둔다. 관리소 직원들은 주민들이 모은 사골을 깨끗이 씻어 말린 뒤 잘게 부순다. 이를 흙과 함께 섞어 퇴비로 사용한다. “사골 비료에는 인 성분이 많아 나무의 성장에 도움이 돼요. 주민 사이에 책임감과 신뢰감도 키워주니, 여러모로 쓸모 많은 영양제인 것 같아요.” 이혜숙(42) 관리소장의 말이다.

숯과 꽁초는 농약 대신

첨단대우아파트는 푸른색을 자랑한다. 숲 속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여러 나무들이 많다. ‘환경아파트 공모전’의 심사위원들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아파트 숲’이 아니라 진정 ‘아파트 속에 숲’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숲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1997년 12월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 단지는 3년이 지나면서 말라 죽는 나무들이 자꾸 생겼다. 습지와 논으로 사용되던 곳에 아파트가 세워진 터라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배수공사를 시작해 물빠짐을 원활히 하고 일조량을 고려해 나무를 잘 자랄 수 있게 재배치했다. 음지에서 자라던 소나무와 자작나무는 양지로, 양지에 있던 잣나무 등은 음지로 옮겨심었다. 가지가 웃자라 낮은 층 주민들의 일조권과 조망권을 가로막는 나무는 외곽으로 옮겼다. 나무를 옮겨 심으면서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아파트 들머리의 큰 나무를 옮기려고 하자 “입구에는 뭔가 웅장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파트 정문에서 아이들이 큰 나무에 가려 오가는 차에 치일 뻔한 일이 자주 일어나자 반대하는 사람들도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딧물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서였다. 사골을 모으던 주민들은 이번에는 숯과 담배꽁초를 모았다. 나무 주변에 숯을 갈아 뿌리고 담뱃재를 우려낸 물을 부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은 것은 흙을 만지고 노는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됐다.

이 아파트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화분이다. 아파트 곳곳을 수놓고 있는 각종 화분은 주민들이 폐타이어와 폐깡통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보행자 도로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아 위험한 곳에는 화분을 둬 경계로 삼았다. 주민들은 나무를 가꾸고 화분을 만들면서 친분을 쌓아갔다. 2003년에는 처음으로 부녀회에서 ‘대우아파트 노래자랑’도 열었다. 출연자들은 대부분 온 가족이 함께 출연했다. 주부 김미옥(45)씨도 가족과 함께 출연해 노래 솜씨를 뽐냈다. 당시 고1이던 김씨의 아들 공성수군은 다른 동네 친구들까지 불러모아 힙합댄스를 선보였는데, 이제는 인기그룹 동방신기의 리더가 된 유노윤호씨도 그때 함께 이 부녀회 노래자랑 무대에 섰던 친구 중 하나다. 주민들은 노래자랑에 이어 해마다 어린이 미술대회, 작은 음악회 등을 열고 있다.

유노윤호도 친구들과 무대에

주민들은 단지 내 이웃들뿐만 아니라 단지 밖 이웃들과도 정을 나눈다. 해마다 가지치기 작업을 한 뒤 나뭇가지와 낙엽을 모아 전남 장성군과 담양군을 찾는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며 생활하는 독거 노인들에게 겨울을 날 수 있는 땔감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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