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중국에는 예술하는 공장이 있다?

등록 2007-11-23 00:00 수정 2020-05-03 04:25

상하이 공장 한가운데 창고 개조해 화랑 만든 컬렉터 겸 기획자 김채미정씨

▣ 상하이=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중국 최대 도시 상하이의 공장 한가운데에 40대 ‘동포 주부’가 미술품 화랑을 차렸다.

11년 전 남편을 따라 상하이에 정착한 컬렉터 겸 기획자 김채미정(42)씨. 그는 10월 중순 시내 동북쪽 변두리인 양수푸루 2361호 공장 창고를 화랑으로 만들었다. 철공소, 염색공장, 소화기 공장과 이웃한 이 화랑의 이름은 ‘갤러리 차우’(www.galleryzhau.com).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군 무기창고였던 이곳에 “한국과 중국, 유럽의 소장 미술작가들과 타 장르 예술인들이 교류하는 ‘허브 공간’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공단 안에 화랑과 작가 스튜디오가 결합된 새 예술촌을 조성하려는 첫발이다. 100여 평의 전시 공간은 천장까지의 높이만 4m가 넘는다. 바깥벽엔 ‘화기엄금’이란 한자도 쓰여 있다. 그는 올 초 공장 내부를 임대한 뒤 내부 개조와 개관 전시기획 등을 도맡았다.

각색한 퍼포먼스로 개막 축하

지난 11월12일 밤 갤러리 차우가 입주한 9호 창고 앞에서는 청중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셰익스피어의 비극 을 각색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이날 개막한 젊은 여성작가 안국주씨의 전시를 기념하는 이벤트다. 거친 창고 벽에 원판들이 도는 컴퓨터 동영상이 나타나고 중절모를 쓴 드레스 차림의 배우가 건물 벽 뒤에서 나타나 괴성을 지르고 뒹굴었다. 국내 연극판의 중견 연출가 김아람이 배우 이유정과 같이 만든 1인극 의 한 장면이다. 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 1인극은 뒤늦게 모여든 공장 노동자들과 청중의 갈채 속에 끝났다. 김채미정씨는 “현지인들이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전위적 공연을 진지하게 지켜봐 안도했다”고 말했다.

요즘 세계 미술시장의 가장 주목받는 투자 지역이 된 상하이에는 모간산루 등의 유명 예술촌 외에 변두리 집단 창작촌들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양수푸루는 유력한 대안예술촌 가운데 하나다. 지난 8월부터 중국 화랑 이안을 비롯한 화랑 세 곳과 소장 작가 5명의 작업 스튜디오가 속속 들어오는 중이다. 갤러리 차우는 가장 큰 규모다.

“과거 전쟁을 상징했던 이곳에서 자유와 평화를 부르짖는 대안 문화 마당이 펼쳐지는 거죠. 바로 옆에 공장이 있고, 생생한 삶이 펼쳐지는 서민시장도 있습니다. 공간에 문화적 온기를 불어넣고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실천에 보람을 느낍니다.”

“국내 실력파 작가 소개하고 싶어”

불문학을 전공한 김씨는 졸업 뒤 프랑스에서 1년여 연수를 하면서 미술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96년 남편의 사업 때문에 상하이에 정착한 뒤부터 화랑 운영과 전시 기획을 준비해왔다. 현재 그는 유럽과 중국에 네트워크 인맥을 갖춘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10월24~11월7일 한국 작가 4인과 중국 작가 4인이 참여한 개관전 ‘랑차오-푸른 물결’을 열었고, 상하이 주치잔미술관에서도 11월29일까지 한국의 임종진, 한희원씨 등과 중국, 유럽의 소장 작가들을 선보이는 기획전 ‘있음’(Being)을 마련해 눈길을 모았다. 그는 “국제 무대에 나갈 통로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국내 실력파 작가들을 세계에 소개하는 다리 구실을 하고 싶다”며 “회화, 조각뿐 아니라 설치, 영상, 디자인 공예 등 다양한 장르에 문호를 열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달리 상하이의 집들은 문턱이 없습니다. 저 또한 한국과 중국 사이에 문턱 없는 교류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