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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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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려의 괴로움을 봐야 하는가

등록 2007-07-12 00:00 수정 2020-05-03 04:25

m.net , 문화방송 등 연예인 사생활에 매달린 쇼들

▣ 강명석 기획위원

김미려가 비욘세의 노래 〈Listen〉을 부른다. 이젠 꿈을 이룰 때가 됐다며 노래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당분간 김미려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 대신 김미려가 뼈를 (얼굴뼈를) 깎고, 살을 (지방을) 태우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m.net 는 가수 데뷔를 꿈꾸는 김미려에게 얼굴 성형과 체중 감량을 시켜준다. 연예인이 리얼리티 쇼의 제작사에게 사생활을 관리받고, 쇼의 결과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 연예인이 쇼를 만드는 게 아니라 쇼가 연예인의 인생을 지배한다. 이는 연예인의 사생활이 하나의 ‘자본’이 됐음을 뜻한다. 최근 연예인에게 사생활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이 아니다.

MC 인맥으로 게스트 섭외하는 시대

연예인에게 사생활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익이 되거나 손해가 될 수 있는 자본이다. 토크쇼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적절히 털어놓는 스타는 순식간에 주목을 받고, 반대로 미니홈피 같은 곳에서 말실수를 한 사람들은 순식간에 ‘비호감’이 되기도 한다. 이미 문화방송 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거짓말로 공개함으로써 물의를 빚은 이영자가 진행하는 문화방송 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는 진행을 맡은 이영자와 박수홍이 직접 섭외를 담당하는 것이 콘셉트다. 사회자가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을 섭외하다 보니 토크의 내용은 자연스레 그들이 알고 있는 사생활 이야기로 넘어가고, 사회자는 게스트와의 ‘전초전’을 최대한 줄이고 곧바로 서로의 사생활을 주고받으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가 한때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이른 시간에 자리잡은 것은 연예인의 사적인 인맥을 실제 제작에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보여준 콘셉트의 덕이 크다.

문화방송 의 ‘무릎 팍 도사’가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한 고백이 경우에 따라 ‘호감’이라는 이익과 ‘비호감’이라는 손해를 볼 수 있는 투자 자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 는 그것이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할 수 있을 정도의 대자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는 연예인이 변신을 위해서 어떠한 모험을 감수하는지를 보여준다. 김미려는 가수를 무척 하고 싶어했으며, m.net 에서 팬들의 반응에 충격을 받고 무대에서 뛰쳐나왔다. 사건이 를 만들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는 근본적으로 김미려가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의지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때때로 외모 때문에 겪는 개그우먼의 스트레스, 그리고 가수로서 성공을 위해 성형수술에 도전하는 김미려의 사생활을 파고든다. 성공하면 김미려는 에서 보여준 대로 “‘사모님’이 끝나고 반응이 신통찮은” 개그우먼에서 예쁜 외모와 좋은 가창력을 가진 여가수로 ‘상승’할 수 있다. 의 등장은 사생활이 연예인의 부를 증식하는 것을 넘어 사생활 자체가 연예인의 인생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기 시작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늘 ‘터뜨려야’ 사는 패리스 힐턴처럼?

리얼리티 쇼가 연예인의 인생에까지 관여하고, 연예인은 자신의 사생활을 담보로 연예 활동을 하면서 한국 연예계, 그리고 연예인은 전례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어떤 연예인은 연기나 노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신의 사생활을 즐기게 만드는 존재가 되고, 그것이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사생활 ‘산업’의 원조다. 패리스 힐턴은 호텔 재벌인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자신의 사생활을 자산으로 미국 최고의 이슈 메이커가 됐다. 그가 남자친구와 찍은 야한 동영상은 그를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렸고, 잊을 만하면 터지는 그의 방탕한 모습과 사치스러운 생활은 대중이 그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사생활 공개를 통해 또래의 영화배우나 가수 같은 ‘셀러브리티’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영화배우가 늘 새로운 작품으로 대중을 만나야 하듯, 패리스 힐턴은 늘 새로운 사생활로 대중에게 노출돼야 했다. 급기야 그는 음주운전으로 감옥에 수감된 다음에야 자신이 ‘연기’를 했다며 다른 인생을 살겠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스타 사생활 산업화도 빠르게 진행됐다. 에서 보듯이 방송이 이런 흐름을 주도한다. 여기에 방송에 나오면 인터넷에 ‘뜨는’ 시스템이 정착된 나라에서 사생활의 산업화는 탄력을 받는다. 이제 사생활의 산업화는 연예인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에 출연하는 김미려의 목적이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고 하니 뒤에는 그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의 노래를 더 많이 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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