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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판 ‘지존무상’의 탄생

등록 2007-07-06 00:00 수정 2020-05-03 04:25

도박꾼의 비극 그린 푸시킨 원작·차이콥스키 작곡의 오페라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배우 류더화가 종횡무진하는 홍콩 영화 . 을 지은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93). 둘 사이에 걸친 인연은 무엇일까. 이 뜬금없는 물음의 답은 바로 도박. 도스토옙스키가 그랬듯 일확천금의 꿈을 좇는 욕망 놀음에 이 러시아 거장도 문외한이지 않았다.

도박에 미쳐 애인의 할머니도 죽게 해

19세기 초 대문호 푸시킨(1799~1837)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역작 오페라 은 차이콥스키판 ‘지존무상’이다.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열혈남아 헤르만이 일확천금의 꿈에 휘둘려 카드 도박의 구렁에 빠지며 몰락하는 비극을 담은 3막짜리 걸작이다. 도박 지존이 되기 위해 광분하는 헤르만은 도박꾼이었던 애인 리자의 할머니 백작 부인에게 카드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협박해 결국 그를 죽게 만들고 그의 망령에게서 비밀을 알게 된다. 리자도 팽개치고 도박장으로 떠난 그는 두 번을 내리 이겼지만, 최후의 카드놀음에서 리자의 전 약혼자 에레츠키 공에게 지고 자살한다. 헤르만이 부른 는 노래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즐기는 게임이지/ 선과 악? 꿈같은 소리!… 무엇이 진실인가? 오직 죽음뿐이지!….”

, 발레 모음곡 등으로 친숙한 차이콥스키가 오페라를 썼다는 사실은 국내에 참 낯설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푸시킨의 다른 원작으로 창작한 오페라 등을 비롯해 일그러진 인간의 욕망과 음울한 당대 사회상이 깃든 탁월한 러시아어 오페라를 10개 이상 썼다. 답답한 러시아 사회를 풍자와 비판, 광기 어린 애정으로 노래했던 푸시킨의 문학적 토양이 작곡가 특유의 애수 어린 관현악 어법과 감성 가득한 성악 선율 속에 절절히 스며들었다.

러시아 스타니슬랍스키 극장 오페라단이 국내에 보기 힘든 을 들고 찾아왔다. 7월5~7일 저녁 7시 경기도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열리는 내한 무대는 지난 6월28~30일 같은 곳에서 공연된 비제의 걸작 에 이어 사실적 구성과 연기,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음악, 발성이 조화를 이룬 러시아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91년부터 재직해온 상임예술감독이자 인민예술가인 거장 알렉산더 티텔은 앞서 공연한 에서도 미니스커트에 산발한 금발의 섹시한 카르멘 배역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후속작인 에서도 현대적 맥락에 맞춘 사실주의 무대를 준비한다고 한다.

발레단·합창단·오케스트라 한꺼번에 내한

극단 이름은 20세기 연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스타니슬랍스키(1863~1938)에게서 따왔다. 신파조의 과장된 인물 연기를 벗어나 사실주의적인 연기 연출 기법을 처음 개발했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배역을 맡을 때 자신의 직감과 상상력으로 동일화를 위한 내면 연기에 몰입해야 한다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은 20세기 이후 연기자들의 바이블이 되고 있다. 이 극단은 1941년 그와 극작가 네미로비치 단첸코가 각각 운영하던 극장들이 합병하며 세워졌다.

이번 내한에는 200명 넘는 발레단, 합창단, 오케스트라 등이 연출진, 오페라 극단과 함께 동행해 현지의 무대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낼 계획이다. 배우의 내면 연기, 실감나는 연출을 핵심으로 하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 기법이 올올이 체화한 연기자들과 러시아 동토의 묵직하고 음울한 뉘앙스를 그대로 전해줄 합창단, 전문 악단의 앙상블이 기대된다. 티텔의 총연출 아래 주역인 리자 역과 헤르만 역은 90년대 중반부터 극장의 솔로 연기자로 활약 중인 이리나 아르카디예바와 미하일 우르솝이, 음악은 30대 젊은 지휘자 펠릭스 코로봅이 맡는다. 1577-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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