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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미술관 전시회, 이게 뭡니까?

등록 2007-07-06 00:00 수정 2020-05-03 04:25

전시개념도 없이 그나마 기획한 것도 뒷감당 못하는 공공 미술관의 현실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미술품 시장은 돈바람에 기세등등한데, 버팀목 격인 국공립 미술관 전시들은 거꾸로 입 도마에 올랐다. 한결같이 전시의 질과 격이 떨어지고 미술판에 대한 영향력도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삼성미술관 리움, 대림 등의 사립미술관들은 팝아트 작가 워홀, 국내 유망작가, 전위 컬렉터 전시로 유행을 이끌지만, 국공립 미술관은 테마보다 작가 솎아내기, 관장 취향주의 굴레에 갇혀 있다. ‘경로당 전시’ ‘대관 블록버스터 천국’이란 오명도 여전하다.

천박한 시장논리를 견제하고, 미술사 담론과 트렌드를 생산하고, 될성부른 작가들을 띄워야 할 국공립 미술관들은 권력을 시장에 넘겨준 지 오래다.

외면받기로 작정하고 내놓는 기획인가

기획전시 입장객이 평일 50명선, 주말은 200명 미만. 화랑 미술품 판매 전람회(아트페어)나 블록버스터 기획전 장소로 더 알려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현실은 참담하다. 미술관 이름을 달았지만, 대부분 대관해주고 간간이 내놓는 기획 전시는 외면받기로 작정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텅텅 빈다.

5~6월 열렸던 ‘1970년대 한국미술-국전과 민전’전. 70년대 한국 미술의 주축을 형성했던 정부 주도의 국가전람회(국전)와 신문사들이 경쟁적으로 주최했던 민간전람회(민전)의 출품작들을 통해 과거 우리 미술의 단면을 살펴보자는 것이었지만, 미술인들도 대부분 외면했다. 전시 내용은 대개 경직된 구도인 70년대 국전·민전의 구상 추상 입상작들과 각 행사 성격에 대한 교과서적 설명과 입상작 배열, 국전·민전을 소개한 대한뉴스, 전문가 회고 등의 영상물이 전부다. 자료, 작가론의 발굴과 해석, 재구성이라는 전시 큐레이팅의 기본도 찾기 어렵다. 게다가 1층 전시장 위의 3층은 밀레의 등 명작이 나오는 오르세 미술관 전시장. 오르세 전 티켓 소지자에게 1층 전시 관람료를 1천원 할인해주었으나, 아래층으로 오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결산 결과 두 달간 총 관람객 수는 5천 명. 전시 비용 5천만원. 소장품 없이 대관 전시 위주로 굴러가는 미술관 성격상 어쩔 수 없다고 전당 쪽은 변명한다. 많은 미술인들은 “존립 의미가 없다. 기획전 기능을 없애고 아예 아트페어 전용관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맞다”고 지적하고 있다.

‘부실 전시’ ‘끼리끼리 전시’ 비아냥도

공립 중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다음간다는 서울시립미술관은 ‘대관 전시의 전당’ ‘블록버스터에 저당 잡힌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전임 하종현 관장의 노골적인 블록버스터 유치로 대관 화랑과 구별이 잘 안 갔던 이 미술관은 올해도 한 언론사가 주최한 인상파 화가 모네 전(9월26일까지)을 유치했다. 모네 전 때문에 원래 6~7월 예정했던 ‘한국화 1953~2007’전까지 4~5월로 당겨 치렀다고 한다. 작고 원로부터 신세대 한국 화가까지 망라한 이 전시는 기획 과정에서부터 숱한 뒷말을 뿌렸다. 추상 등 서구 사조와의 융합, 전통 산수 재인식 같은 모더니즘의 잣대로 현대 한국화의 고난 어린 창작 과정을 담아보려던 원래 취지는 자문위원으로 평론가 오광수, 원로작가 송영방(작품도 출품)씨 등의 화단 중진들이 참여하면서 출품 작가 안배의 문제가 우선 과제로 돌변했다. 자문위원들이 주도한 주요 출품 작가 목록에는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운보 김기창 등 거장들이 통째로 빠졌다. ‘부실 전시’ ‘끼리끼리 전시’란 비아냥이 잇따랐다. 미술관 쪽에는 왜 작품 크기를 다른 작가보다 작게 했느냐는 등의 항의 민원이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기획자 박파랑 학예사는 “기획 취지를 뒷감당할 역량이 모자랐다”며 “김기창의 경우 소장처에서 작품을 못 구해 전시는 못하고 도판만 도록에 실었다”고 말했다.

상업적 냄새만 풍긴 바젤리츠 전

국내 최대 최고 권위를 자부하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들은 담론 차원이 아닌, 전시 기본 얼개에 대한 혹평에 부딪혔다. 미술관 쪽은 5월 중순부터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바젤리츠의 근작전(7월15일까지, 02-2188-6302)과 프랑스 개념조각가 브네의 회고전(7월22일까지, 02-2188-6303) 등을 김윤수 관장의 ‘적극적이고 강력한 추천’에 따라 잇따라 차렸다. 뒤이어 ‘뜬금없는 전시’ ‘전시 맥락이 혼란스럽다’는 비판 또한 잇따랐다.

바젤리츠 전은 전후 추상주의 모더니즘에 반기를 들고 강렬한 선과 색 덩어리로 거꾸로 된 구상 그림을 그렸던 독일 현대미술 거장을 재조명한다는 취지다. 일반 관객에게는 생소한 거장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당연히 회고전 얼개의 규모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정작 전시장에 나온 것은 그가 90년대 중반 이후 러시아에 얽힌 기억을 사진 미술품을 원본 삼아 수채화풍으로 그린 점묘적 드로잉 작업들이 많다. 전후 분단 독일의 미술 조류 속에서 성장한 바젤리츠의 초·중기 작품들을 잘 모르는 관객에게는 다분히 상업적 냄새를 풍기는 후기 작업들이 작가의 주된 면모인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바젤리츠가 소속된 프랑스 상업화랑이 제공한 근작 작품 목록에 한정해 출품작을 간추렸다는 점, 지난해 말 입사한 신참 학예사에게 비중 있는 해외 거장전 전시 기획을 맡긴 점도 전시의 격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을 법하다.

역시 김 관장의 추천과 그와 친분 있는 재불 한국 화랑주의 중개로 준비된 프랑스 철조각가 베르나르 브네의 개념미술 회고전도 요즘 미술 흐름과 동떨어졌다는 평 속에 거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전시를 총괄한 김지영 학예사는 “사실 처음 전시가 논의된 과정은 잘 몰라 관장님께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30대 작가 정연두씨의 구작과 근작들을 담은 ‘올해의 작가’전(7월29일까지, 2188-6059)은 젊은 작가의 첫 선정 사실이 화제를 뿌렸다. 픽션과 현실을 넘나드는 재기 어린 아날로그 사진 작업, 영화 미장센 같은 무대 설치 작업을 국립미술관에 내놓았다는 파격은 신선했다. 하지만 40·50대 기성작가들을 뽑다가 평단에서 기본 분석과 검증이 끝나지 않은 작가를 파격 선정한 것은 선정 기준의 일관성과 권위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단골 후보인 김수자, 이불씨 같은 국제 작가들이 일정 때문에 전시를 고사하는 상황에서 대체 전시처럼 비치는 측면들, 출품 작가가 특정 상업화랑의 집중적인 마케팅 대상 작가라는 점도 개운치 않다. 비교적 호평을 받아온 덕수궁미술관의 경우 회심의 블록버스터인 빈 미술사 박물관전(9월30일까지, 02-2022-0613)을 시작했지만, 전시 예산 20억원의 대부분을 후원 방송사가 부담하고, 자체 예산은 8천만원에 불과하다는 점 등이 구설에 올랐다.

공공 미술관 전시 개혁은 언제쯤

지난해 책임운영기관으로 바뀐 국립현대미술관, 찾아가는 미술관을 표방한 서울시립미술관 등은 양질의 전시와 관객 중심주의를 표방했다. 그러나 올봄과 초여름 이들 기관의 기획전은 관장과 관료, 외부의 입김에 여전히 휘둘린다는 인상만 남겼다. 공공 미술관 전시 개혁은 대선 전후 본격화할 문화 정치의 절실한 현안임이 분명하다. 국공립 미술관은 언제쯤 천덕꾸러기를 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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