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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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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의 경계에 과격한 똥침을!

등록 2007-05-18 00:00 수정 2020-05-03 04:24

전위 연극과 몸부림이 뒤섞인 세드라베 무용단의 충격적 무대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춤은 내켜서, 좋아서 몸을 부리며 움직이는 본능적인 표현 행위에서 비롯한다. 안무가가 정교하게 대본을 짠 무용극이건, 막춤이건 거의 다를 바 없는 전제다. 그런데 요즘 세계 춤판에서 한창 뜨고 있는 벨기에의 안무가 알랑 플라텔과 그의 분신 세드라베 무용단은 이런 전제에 똥침 같은 의문을 거푸 던진다. 예술인의 춤과 생활 속 몸짓은 어떻게 다른가. 광기 어린 정신병자의 행동과 엑스터시에 빠진 무용가의 춤은 본질적으로 같지 않은가.

편집증 혹은 발작하는 정신병자의 몸짓

전위 연극과 단말마적 몸부림이 뒤섞인 듯한 세드라베의 충격적 무대는 이런 물음을 실제로 옮겨놓는다. 춤의 경계에 대한 과격한 성찰인 만큼 정교한 안무나 우아하고 날렵한 볼거리 춤판은 없다. 무대에는 정신병자, 일반인, 아이들, 지체장애자들이 춤꾼들과 동료처럼 어울려 괴팍한 몸동작을 계속한다(안무가는 장애아 전문 치료사이기도 하다). 계속 같은 동작을 떨면서 되풀이하는 그의 춤들은 편집증 혹은 발작에 걸린 정신병자들의 몸짓과 진배없다. 정신병원에서의 임상기록, 영상 등을 토대로 영감을 받아 안무를 한다고 한다. 무속판의 구음을 하듯 괴상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거나 중얼거리거나 주문을 외는 광경이 깔린다. 일상 행위를 과장해 나오는 일그러진 움직임과 소리, 원초적인 시각적 감동. 1984년 무용단 창설 이래로 ‘누구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좌우명을 역설해온 플라텔의 안무 철학이기도 하다.

오는 5월25~27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세드라베 무용단의 두 번째 내한공연 레퍼토리는 다. 유럽에서 가장 전위적인 안무가로 꼽히는 플라텔의 자유로운 머릿속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17세기 유럽의 음악거장 몬테베르디의 종교음악 , 그리고 어느 정신과 의사가 찍은 정신병동 환자들의 움직임을 담은 영상자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몬테베르디의 음악은 그가 10대 유년기 때 벨기에 겐트의 한 교회에서 들었던 생생한 기억으로부터 재생된다. 하지만 춤판은 엄숙하거나 숭엄한 분위기는 아니다. 모든 관절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10명의 다국적 춤꾼들은 뒤틀리거나 발작적인 움직임들을 거의 불협화음에 가깝게 변주되는 몬테베르디의 음악에 맞춰 마구 풀어낸다. 상의 속에 발까지 집어넣고 꾸물거리고 중얼거리며 앉았다 일어섰다 자빠졌다를 되풀이한다. 태엽 풀린 인형처럼 몸을 마구 뒤흔들다가 굼벵이처럼 기고, 어떤 때는 마임을 하듯 손가락과 팔죽지를 폈다 조였다 한다. 발판에서 뛰어 벽에 거미처럼 달라붙는 동작도 있다. 재즈 뮤지션, 바로크 연주자, 집시음악가들이 마음껏 라이브로 변주하는 몬테베르디의 음악들은 기괴한 악흥을 낳는다. 플라텔은 숭고한 종교음악과 정신병동 환자들의 동영상이란 두 재료를 통해 “자기 통제력을 잃은 극단의 감정상태”를 끄집어내며 “나름의 가장 완벽한 신앙심을 표현”해낸다. 자기 표현을 억제당한 채 소비문화 속에 잠겨버린 현대인의 소외, 실제 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종교의 무기력함을 꼬집는 것이다.

안무한 현대춤은 따분하다?

돌아가는 세상사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춤판은 어떤 구분도 터부시하지 않는 플라텔의 원칙이다. 배우들은 전속이 아니라 작품마다 오디션을 통해 바뀐다. 이번 공연에는 유일한 한국인 춤꾼 예효승씨도 나와 특유의 마임 같은 몸짓 언어를 선보인다. 공연시간 95분. 안무한 현대춤은 따분하다는 선입관을 날려버릴 수 있는 무대다. 02-2005-0114, www.lg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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