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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07-04-27 00:00 수정 2020-05-03 04:24

이중섭·박수근의 진위작 공방 속에 ‘위작 가리기 전시회’ 추진하는 검찰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호황 기대감에 들뜬 올봄 미술판에 국민화가 이중섭, 박수근의 진위작 공방이 다시 화두로 떠오를 조짐이다. 2년 이상을 끌며 생채기를 남긴 이 진위작 논란을 판가름할 검찰의 수사가 막바지 고비를 넘고 있는 중이다. 우선 경매에 나오거나 지난해 이중섭 50주기 기념전에 대규모로 전시하려다 문제가 됐던 수장가 김용수(69·한국고서연구회 고문)씨의 위작 의혹 압수품에 대해 검찰이 의뢰한 전문가의 1차 감정 결과 모두 위작 소견이 나왔다. 또 검찰은 최종 진위 판정에 앞서 문제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전시하는 국내 최초의 위작 전시를 추진 중이어서 그 성과가 주목되고 있다.

압수품 2827점 모두 위작 소견

감정전문가인 최명윤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주임교수는 올 초 서울지검 의뢰를 받아 위작 의혹을 받아온 김용수씨의 압수품 2827점을 분석한 뒤, 모두 위작임이 분명하다는 1차 감정 소견서를 최근 제출했다. “미술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분석한 결과 모두 명백한 위작”이라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지난 4월20일 서울지검에서 지검 고위 간부와 담당 김용정 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브리핑을 열어 조사 내용을 공개하고, 3천여 개의 도판 파일을 포함한 관련 자료 일체를 건넸다.

분석 대상이 된 그림은 김용수씨가 지난해 이중섭 50주기 전(무산)에 출품하려고 했던 유화, 판화 등의 소장품들. 이중섭의 것으로 표기된 그림이 1067점, 박수근의 것으로 표기된 그림이 1760점 등 모두 2827점이다. 2005년 이중섭 아들 이태성씨가 소장품을 서울옥션에 내놓으면서 위작 논란이 일자 최명윤 교수를 포함한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전문가들은 김씨가 유족 이씨와 결탁해 이중섭, 박수근의 위작을 대량 유통시키려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이태성씨와 김씨가 협회 쪽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수면에 떠오른 그림들이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 그림들을 압수하고, 2005년 10월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태성씨의 경매 출품작과 김씨 소장품 가운데 일부인 두 작가 작품 58점을 표본 감정한 결과 판정 가능한 56점이 위작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지난 1월 박수근의 아들 박성남씨, 명지대 제자들과 함께 감정 분석팀을 꾸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김복영 홍익대 교수 등 전문가 10여 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의 감수를 받으며 감정 작업을 벌였다. 지난 2월부터 2개월여간 분석했으며 △서명 △도상발췌 △위조기법 △물감 △이용된 종이 △분책 △앤티크 처리기법(새것을 헌것처럼 조작하는 기법) 등의 기준에 따라 8개 묶음으로 분류한 뒤 진행해왔다.

‘펄’ 물감이 가장 명백한 증거

이들 그림을 위작으로 1차 판명한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사용한 물감을 성분 분석한 결과다. 압수된 김씨 소장 그림에는 금속성 색깔을 내는 산화티타늄 계통의 ‘펄’ 물감 안료가 상당 부분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이 안료는 작가의 사후인 1960년대 말 개발됐으며, 국내에 들어온 것은 90년대 이후여서 가장 명백한 위작 증거가 된다는 설명이다. 이중섭의 진작(진짜 작품)처럼 40~50년대 그림에 금속성 안료를 붙였다면 지금은 상당 부분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김씨 소장 그림들은 열화실험 결과 금속성 안료가 변색조차 되지 않고 온전히 붙어 있다는 것도 유력한 근거가 된다.

또 다른 근거는 서명과 도상. ‘중섭’ ‘둥섭’이 뒤섞여 날인된 이중섭 위작 서명의 경우 초정밀 촬영한 결과 글자의 뼈대를 베껴 적은 심과 그 주위에 덧칠해 가짜 서명을 만든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서명 위조의 경우 일단 진작의 서명 글씨를 먹지에 옮겨 다른 종이에 베껴 쓰거나 다시 그 위에 가필하는 수법, 철필로 다른 종이에 서명 글자를 눌러쓴 뒤 윤곽을 따라 서명을 베끼는 수법, 이들 유형을 혼합한 수법 등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도상도 72년 현대화랑이 발간한 이중섭 전시도록, 85년 동숭미술관의 미공개 작품전 도록 등에 나온 물고기, 개구리, 닭, 알몸 소년 등 이중섭의 특징적 도상들을 적절히 짜깁기하고 뒤섞는 원화 발췌 방식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이중섭이 담배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의 경우 김씨 소장 은지화들은 접힌 자국 등에서 당시 담배 은박지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며 그린 물감도 당시 물감이 아니라는 것이 성분 분석으로 입증됐다고 한다. 최 교수는 “진위작 실체를 가리는 것보다 이번 논란의 실체와 위작 유통 당사자들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며 “자문위원들의 검토회의를 거쳐 곧 장문의 감정 보고서를 발간하고, 미술사·보존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위작 세미나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불신의 늪에 빠진 감정 시스템

반면 작품들을 압수당한 김용수씨는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그는 과의 통화에서 “내 소장품에 대해 가장 먼저 가짜 의혹을 제기해 고발한 당사자에게 감정 의뢰를 한 것부터가 일방적”이라며 “이달 중에 검찰 쪽에 진품임을 주장하는 별도의 소견서를 제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화여대 화학과 안병태 교수 등 일부 이공계 연구자들과 함께 검찰로부터 최 교수가 찍은 압수품의 사진 파일을 넘겨받아 판독한 뒤 진품으로 확신하는 200여 점의 사진 파일과 설명들을 붙여 소견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지검은 최 교수의 1차 소견서 자료를 바탕으로 다른 관련 전문가와 김씨 쪽 자료들을 같이 검토한 뒤 최종 판정 내용을 결정할 방침이다. 김용정 검사는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진위 감정으로 실체를 밝힐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검찰 쪽은 지난해 압수 그림과 관련한 위조 조직, 수장가 김씨와의 연관성 등에 대해서도 내사했으나, 구체적 혐의점을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최종 판정 전에 위작 의혹을 받은 김용수씨의 압수작품들을 모두 공개해 일반인과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는 국내 초유의 위작 가리기 전시회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 눈길을 모은다. 김 검사는 “최근 국립 현대미술관을 방문해 김윤수 관장과 위작전시 문제에 대해 협의했으며 김 관장이 전시장 대여 등 적극적인 협조 의사를 내비쳤다”고 전했다. 위작 전시는 2005년 이중섭 위작 논란이 불거진 이래 최 교수를 비롯한 감정 전문가와 일부 화상들이 요구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김 검사는 “전문가와 일반인들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문제 작품을 개방하고 의견의 창구도 열어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화랑가는 검찰의 움직임을 긴장 속에 주시하고 있다. 시장의 호황세와 달리 미술품 감정 시스템은 갈수록 불신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변시지, 이만익씨 등의 작품을 베껴 그려 팔아온 위조 조직이 경찰에 적발되는가 하면, 올 초 화랑가의 통합감정기구로 출범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중견작가 변시지씨가 위작으로 지목한 을 진품 판정해 논란을 빚었다. 시중에 나도는 이중섭 그림의 절반 이상, 박수근 그림의 3분의 1 이상은 가짜라는 ‘절대 등식’이 형성된 상황이라고 화상들은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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