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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화내는 일본 여자를 만나다

등록 2007-04-06 00:00 수정 2020-05-03 04:24

한국 방문한 134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이토야마 아키코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마케이누’(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성을 일컫는 말로 ‘싸워서 진 개’란 뜻)일까. 36살의 노처녀 교코는 실업급여가 두 달 남은 백수지만 취직은 가망 없는 상태다. 그녀는 ‘생명의 은인’에게 맞선을 주선받는다. 때는 노동감사절, 맞선 자리에는 “찐빵 한가운데를 주먹으로 냅다 치고 팥이 몰려 부풀어오른 부분에 눈과 입술이 붙어서 축 처진” 노베야마씨가 나왔다. 남자의 목소리는 아름답지만 만나자마자 신체 사이즈를 묻고 시종일관 기업 찬미가를 부르니 사양하고 싶다. ‘마케이누’ 이야기까지 나오자 참을 수 없어진다. 그녀는 회사에서 “이런 시시한 회의를 더는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뛰쳐나온 때처럼 맞선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플래시백으로 알 수 있는 그녀의 실직 사유는 상사에 대한 ‘맞테러’. 아버지 장례식에 문상 온 직장 상사가 어머니를 희롱하자 맥주병으로 머리를 쳐버린 뒤 회사의 그녀 컴퓨터는 치워졌더랬다. 그녀는 노동감사절에 졌지만 지금도 싸운다. ‘마케이누’는 싸우는 개다.

섹스는 있지만 ‘뽀사시한’ 사랑은 없이

단편 ‘노동감사절’( 수록작)은 세다. 일본 여성 소설가의 소설 중 이만큼 센 게 있었나. 아니 반만이라도 센 게 있었나. 일본에서 제일 센 여자 1, 2, 3등을 만들어내는 이토야마 아키코를 일본문화교류기금 사무실에서 만났다. 점심 때 한국에 도착한 그를 오후에 만난 한국 언론 최초의 인터뷰였다! 발간된 책에 실린 여윈 사진보다 훨씬 ‘후토(太)짱’이 된 그는 머뭇거리는 질문에 “혼자 살면서 요리한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며 ‘선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주인공처럼 2001년까지 주택설비기기 회사에 근무했다. 우울증으로 쉬는 중에 미술이나 음악처럼 취미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소설을 쓴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도 없다.” 2002년 데뷔한 뒤로 한 해 2~3권의 책을 써냈고 일본 유수의 소설상을 휩쓸었다. 2003년 로 제96회 문학계 신인상, 2004년 로 제30회 가와바타야스나리상, 2005년 같은 작품으로 일본 서점 대상, 으로 제55회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 신인상, 그리고 2003년부터 3회 연속 후보에 올랐던 아쿠타가와상을 지난해 로 받았다.

센 여자들이 등장하는 그의 소설에서 사랑은 남다르다. 제대로 ‘뽀사시한’ 연애 이야기가 없다. 에는 누구와도 자버리는 ‘위험한’ 여자가 등장한다. 섹스는 넘치지만 변변한 사랑은 없는 이 이야기에서 그녀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치한’이라 불리는 변태다. 빗대놓고 사랑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쑥스러운 것일까. 가장 본격적인 사랑 이야기는 일 텐데, ‘본격적’이랄 수 있는 것은 딱 한 문장(“내가 약속 시간에 맞춰가는 것은 오타니를 만날 때뿐”)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에 대해 “사랑이 완전하지 않을 때 문학이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 예를 들어 이상적인 사랑, 사이가 좋은 부부가 될 수도 있지만 문학적으로 다룰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사랑이 물러서면서 떠오르는 것은 ‘우정’이다. 는 ‘남녀 간의 우정이란 존재하지 않아’ 하는 멜로 드라마를 한 방 먹이는, 죽음 이후에도 지켜주는 ‘남녀 간의 우정’ 이야기다. 에서 인상적인 것은 순조롭게 풀리는 ‘운명의 여성’ 카린과의 사랑보다 오랜 짝사랑으로 맺어진 카타기리와의 관계다. 주인공의 큰 비밀도 카린은 모른 채 죽는다. 그 비밀을 카타기리와는 공유한다. “사랑은 변한다. 강하면서도 불안정하다. 우정은 믿을 수 있고 길게 갈 수 있다.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친구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40살이 넘고 보니 중요한 것이 사랑보다는 우정이더라.”

이토야마의 머리에는 ‘사투리와 그에 따른 성향- 부록 자료: 음식’ 지도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에서 ‘나고얀’은 나고야 출신이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숨기는데, ‘나’와의 아슬아슬하던 우정이 편하게 자리잡는 것은 ‘나고얀’이 잠꼬대로 하는 사투리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도쿄 출신이다. “23살 (발령지) 후쿠오카에 가기 전까지 사투리를 전혀 몰랐다. ‘꽃이 떨어진다’ 같은 말도 사투리로 더 뛰어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투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도쿄 풍경도 도쿄 사람도 싫은 그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군마현이다.

파이팅! 싸우는 개는 이긴다

‘노동감사절’에서 시시한 회의라고 뛰쳐나온 것은 교코뿐이 아니다. 이토야마도 그랬다. “단기간에 회사 방침을 180도 바꿔서 화가” 나서다. “소설을 쓰면 실제 성격이 아무래도 많이 드러난다.” ‘2+1’(NEET> 수록작)의 소설가는 편집자에게 심하게 화를 낸다. “입금일이 20일이나 지났는데 연락도 없으니 어떻게 된 건가요?” 글쓰기 자체를 걸고 이런 말을 하기까지 한다. “노동은 국민의 의무 같은 말들을 하지만, 어째서 당신이 일을 해야만 하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 역시 일로 하고 있으니까 일인 것이고, 어느 날 갑자기 ‘소설 쓰는 것은 취미라서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생활 수단이 아니다. 노동이란 대체 뭔가.”(‘2+1’)

화내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이 화낼 만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 말은 ‘이겨라’는 말을 이렇게 한다. 파이팅! 이토야마 파이팅! 싸우는 개는 언젠가는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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