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일본적인 소재의 로 일본 아카데미 휩쓴 이상일 감독…재일 한국인으로서의 고민에 함몰되지 않은 3세대 감독들의 다양한 시선
▣ 김봉석 영화평론가
올해 일본 아카데미에서는 이상일 감독의 가 작품상, 감독상 등을 비롯해 11개 부문을 수상했다. 1960년대 폐업을 앞둔 탄광촌에서, 온천물을 이용한 위락시설 ‘하와이언 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주민 간의 갈등을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린 는 일본 관객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6개월째 상영되고 있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본적인 정서를 잘 살리고 있는 대중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의 제작자가 재일동포 2세인 시네콰논 이봉우 대표이고, 감독은 3세대인 이상일이라는 점이다. 재일동포 2, 3세대가 모여 일본인의 심금을 울리는, 일본적인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는 3월1일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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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두 개의 ‘우리나라’
한국과 일본의 정서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는 재일동포가 우리 민족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하지만 일본에서 살고 있는, 특히 3세대는 한국계 일본인이라는 의식이 더 강하다. 3세대인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가 소설
반면 한국에서, 한국 영화 를 만든 최양일 감독은 이미 일본에서 30년 넘게 활동해온 재일동포 2세대다. 1983년 로 데뷔한 최양일 감독은 오시마 나기사의 의 조감독을 맡을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하드보일드 영화로 데뷔한 최양일 감독이지만 80년대 일본 영화계를 선도한 가도가와 영화사의 제안으로 와 같은 상업적인 아이돌 영화에서도 매끈한 연출력을 과시했다. 그럼에도 역시 최양일의 장기는 등의 하드보일드 영화다. 최양일은 이 비정한 세계를, 살을 에는 듯한 냉담한 터치로, 가혹하게 그려낸다.
1993년 를 만들기 전까지, 최양일은 자신의 영화에서 크게 민족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역시 2세대인 김수길 감독이 에서 재일동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정체성’을 이야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영화들은, 영화사의 제안으로 연출하게 된 작품이었다. 최양일은 를 찍은 직후의 인터뷰에서, 재일동포 작가 양석일의 소설 을 만들고 싶다고 공언했다. 감독이 자신이 진정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긴 연륜과 분명한 성과가 필요하다. 최양일은 오랜 조감독 생활과 기획영화 연출로 영화사의 인정을 받았고, 마침내 를 통해 ‘작가’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후 재일동포의 이야기나 다국적 사회가 되어가는 일본 사회를 그린 등을 보면 최양일의 ‘정체성’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전후 50년, 피부가 된 ‘민족’이란 갑옷
재일동포가 쓴 소설에서도, 세대에 따라 작품 세계에 차이가 있다. 김수길을 비롯해 김석범, 양석일, 이회성 등은 민족 정체성에 대한 고뇌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식민지성에서의 자유와 해방’이라는 주제가 핵심이다. 이후 작가인 이양지, 유미리 등은 민족성보다는 분열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모호한 지대에서, 자신의 내면에 대해 파고들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끊임없이, 어디에서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해. 반면 가네시로 가즈키는 과감하게 선언한다. 나는 코리안 재패니스라고. 일본의 르포라이터 노무라 스스무는 이란 논픽션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일본인에 대해서는 ‘민족’이라는 갑옷을, 대치하는 정치 집단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라는 갑옷을 걸치고 마주 본 채로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전후 5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이미 자연스럽게 피부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은 이 갑옷을, 아라이 에이이치라는 한 사람의 블루스 싱어가 단호하게 벗어던져 보였던 것이다.” 재일동포의 새로운 세대는, 민족과 이데올로기라는 갑옷을 과감하게, 절실하게 내던져버렸다.
최양일은 대체로 양석일의 세계관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서 최양일은 정글 그 자체인 전후의 일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짐승이 된 남자 김준평의 일생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민족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로지 돈을 벌고, 모든 생물의 욕망처럼 자신의 피를 남기는 것뿐이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잔인하고 비정해야만 한다. 하드보일드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삶의 태도인 것이다. 그것은 양석일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남자의 세계다. 한국에서는 양석일의 작품을 주로 민족적 색채가 강한 소설로만 보지만, 일본에서는 하드보일드 장르소설가로 더욱 평가를 받고 있다.
최양일이 하드보일드 영화에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주는 것은, 그를 비롯한 상당수의 재일동포가 선택해야만 했던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역도산은 심지어 자식들에게도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가장 터프하게, 모든 것을 적으로 돌리고도 살아남는 법만을 택했던 역도산과 김준평은 동일한 길을 걸어갔다. 마찬가지로 연예계, 체육계 그리고 폭력조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조선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강인해져야만 했다. 자신을 숨기고,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본 사회에서 거칠고 야비해져야만 했다. 소설과 현실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최양일도 그렇게 살아남았고, 지금은 일본영화감독협회 회장까지 오른 ‘보스’가 되었다.
‘재일동포’ 이전에 ‘나’를 본 3세대
그러나 3세대는 다르다. 이상일 감독은 일본 영화학교 졸업작품 으로 피아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으며 데뷔했다. 다음 작품 까지는 아웃사이더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인디펜던트 영화였다. 세 번째는 바로 메이저 작품에 뛰어든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를, 지금 일본의 젊은 세대가 열광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작가 구도 간쿠로의 각본으로, 인기 절정인 쓰마부키 사토시와 안도 마사노부를 출연시켜 영화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이 다. 이상일은 재일동포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도 그렇다. 자전적인 소설
광고(CF) 감독 출신 구수연 감독의 데뷔작 (2003)은 학교에서 이지메당하고, 부모는 이혼하고, 누나는 자살하는 상황에 처한 소년의 로드무비다. 그는 정말 우연히도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겹쳐서, 그는 최악이다. 구수연은 별다른 답을 말하지 않는다. 소년이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모두 아웃사이더다. 그들은 소년이 재일이고 아니고는 상관없다. 그저 최악의 소년을 만나고, 함께 여행하고, 떠나가는 것뿐이다. 구수연 감독은 최근 톱스타인 마쓰다 류헤이, 아라타 등이 출연한 란 영화를 만들었다. 불고기 식당이라는 한국적인 소재는 존재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이상일이나 구수연이나,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고뇌와 슬픔을 말한다. 홍보를 위해 한국에 온 이상일 감독은 “재일 한국인으로서 제도적이나 법률적인 차별은 없다. 물론 사람들의 마음속에 차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내 영화에 담고 싶지는 않다. …만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재일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나를 싫어하는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영화는 오히려 일본 감독이 만든 영화였다. 오시마 나기사의 이나 이즈쓰 가즈유키의 과 같은 영화들. 일본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파고드는 감독들에게는 당연히 재일동포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 시대에 끌려와서, 귀화하지 않은 채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일동포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극단적인 치부이다. 하지만 오시마 나기사의 방식과 이즈쓰 가즈유키의 방식은 또 다르다. 는 60년대의 시대정신에 동조하면서도, ‘박치기’라는 상징을 통해 강렬하면서도 은유적으로 뛰어넘는다. 단지 국가나 민족 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놓인 강을 뛰어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거나, 치고받고 싸우거나에 굳이 민족이 개입할 여지도 없다. 민족이나 이데올로기는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 뿐, 모든 사람이 따라갈 필요는 없다. 이상일의 도 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모든 혁명이 부패하는 것을 본 세대에게, 68세대는 이상일 뿐이다. 68의 시대정신에서 배울 것은 정치적 엄정성이 아니라 치열한 유희정신인 것이다.
‘민족’을 다루는 건 선택의 문제
물론 여전히 국가와 민족을 절대시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실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민족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은 더욱 다양해졌다. 직접 몸으로 느끼는 재일동포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상일과 구수연의 방식이 있는가 하면, 최양일도 여전하고, 북송 가족의 생활을 그린 다큐멘터리 을 만든 양영희 감독의 시선도 있다. 개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듯, 재일동포들의 선택도 더욱 다양하고 즐거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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