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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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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이름으로 갈등할지어다

등록 2007-02-16 00:00 수정 2020-05-03 04:24

무슬림의 테러와 히스패닉의 증가를 축으로 한 비극을 다룬 영화 …모로코·미국·맥시코·일본에 연결된 사건들은 국가 앞에 무력한 개인 비춰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태초에 균열이 있었다. 아랍의 형제 가운데, 미국인 부부 사이에, 일본인 부녀지간에, 균열이 있었다. 형제는 경쟁했고, 부부는 갈등했고, 부녀는 소원했다. 인간사 어디나 있을 법한 갈등은 우연한 사고로 연결되면서 인류의 비극으로 증폭된다. 중언하면, 개인의 균열은 필연적 우연을 거치며 국가의 갈등으로 증폭된다.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는 미국은 갈등의 중심에도 놓인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세계의 비극은 그렇게 탄생했다. 은 그것을 영화로 압축했다.

은 포스트 9·11 영화다.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두 개의 공포, 무슬림의 테러와 히스패닉의 증가가 의 배경이다. 은 모로코의 사막에서 시작된다. 양치기로 생계를 꾸려가는 압둘라는 양들을 지키기 위해서 총을 산다. 비극은 그렇게 생계의 필요에서 시작된다. 압둘라의 아들 아흐메드와 유세프는 총을 쏘아 버스를 맞히는 내기를 한다. 형 보다 뛰어난 동생의 사격 솜씨가 경쟁심의 근원이다. 총알은 하필이면 미국인 관광객 버스에 명중하고, 수잔(케이트 블란쳇)의 어깨를 관통한다. 수잔의 옆에는 남편 리처드(브래드 피트)가 있다. 부부는 막내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갈등을 겪었다. 화해를 위한 여행에서 부부는 그렇게 불행의 사슬에 얽힌다. 그리하여 미국인이 저격당한 사건은 공포의 공식에 따라서 테러범의 소행으로 오인된다. 이것이 모로코에서 벌어지는 첫 번째 이야기다.

미국 아이들과 멕시코로 향한 보모

모로코의 사건은 멕시코의 불행, 일본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모로코의 사건은 리처드 부부의 아이를 돌보는 아멜리아(아드리아나 바라사)의 발목을 잡는다. 아멜리아의 아들 결혼식 날에도 수잔 부부는 돌아오지 못하고, 아멜리아는 어쩔 수 없이 수잔의 아이들을 데리고 멕시코로 떠난다. 하지만 그는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다. 한편 영화에서 수잔의 비명은 일본의 정적으로 전환된다. 도쿄의 청각장애 여고생 치에코(기쿠치 린코)가 경험하는 정적이다. 치에코는 어머니가 자살한 이후에 아버지(야쿠쇼 고지)와도 갈등을 겪는다. 치에코의 상처는 세상의 남자들이 청각장애를 이유로 자신을 외면할 때마다 덧난다. 도쿄의 상처도 모로코의 사건과 연결된다. 유세프가 버스를 쏘았던 총은 치에코의 아버지가 유세프의 이웃에게 선물한 총이었다. 이렇게 모로코, 멕시코(와 미국), 일본에서 벌어지는 세 개 혹은 네 개의 이야기는 이라는 하나의 영화로 이어진다.

태초에 인간의 언어는 하나였다. 창세기에 적힌 구절이다. 인간이 하늘에 도전해 탑을 쌓자, 신은 인간의 언어를 갈라놓았다고 역시 성경은 말한다. 이렇게 언어의 장벽에서 생긴 혼돈과 단절의 세계가 ‘바벨’이다. 에는 제목처럼 6개의 언어가 나오고, 언어만큼 불가해한 갈등이 존재한다. 신이 언어의 장벽을 만들었다면, 인간은 국적의 장벽을 쌓았다. 의 인물들은 미국을 미워하지 않지만, 의 관객은 미국이 미움받는 이유를 본다. 무고하게 쓰러지는 아랍 소년을, 억울하게 추방당하는 히스패닉 보모를 통해서 관객들은 미국이 쌓아올린 바벨탑을 본다. 순박한 모로코의 촌사람들에게서 곧바로 ‘아랍 테러리스트’의 망령을 떠올리는 미국인 관광객을 통해서, 바벨탑에 갇힌 미국인도 응시한다. 의 카메라는 허상인 장벽 앞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과민반응을 보이는지, 국가는 어떻게 편견을 강화하는지, 말하지 않고도 말한다. 은 언어의 장벽은 다른 언어 사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도쿄의 치에코와 아버지를 통해서 말한다. 도쿄 이야기는 미국과 아랍, 미국과 남미, 그 바깥에도 존재하는 ‘바벨’을 보여준다.

인간적인 것과 국가적인 것의 차이

개인의 선의가 국가의 위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은 예민하게 포착한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사막을 헤매다 구사일생으로 경찰을 만난 아멜리아는 “아이들이 사막에서 죽어간다”고 절규하지만, 미국 경찰은 “밀입국자냐”고 먼저 묻는다. 국가 권력을 위탁받은 경찰에게 아멜리아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보모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단지 그는 범법자로 간주될 뿐이다.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지만 국가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는 익숙한 표현이 얼마나 잔인한 현실이 되는지, 아멜리아를 통해서 증언한다. 한편으로 수잔의 총상을 테러범의 소행으로 몰아가던 미국은 생사가 위급한 수잔을 위한 구급차를 제때에 보내지 않는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명목으로 철의 장벽을 쌓고, 개인은 장벽 앞에서 과민반응을 보이며 차이를 차별로 만든다.

그럼에도 은 딱딱한 영화가 아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갈 만큼 영화는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으로 2006 아카데미 작곡상을 받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는 음악과 정적의 조화로 슬픔의 완곡을 조절한다. 데뷔작 로 칸영화제 본선에 오르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로 2006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은 2007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가 끝나도 귓가에 한마디가 남는다. “아메리칸”. ‘바벨’의 세계에서 노아의 방주에 올라타는 구원의 단어다. 그리고 떠오른 뻔한 아이러니, 이렇게 미국을 비판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도 미국만이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미국의 스타 브래드 피트,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케이트 블란쳇, 중남미의 신성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로 유명한 일본의 야쿠쇼 고지, 멕시코의 명배우 아드리아나 바라사, 게다가 모로코의 지역 주민까지 가히 전 지구적인 캐스팅이다. 2월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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