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목할 만한 케이블 드라마의 전진에서 돋보이는 OCN …생략과 세밀함으로 생활을 꼼꼼히 수놓은 살아 있는 캐릭터들의 승리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올해 TV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케이블TV 드라마의 전진이다. 그동안은 공중파에서 방송되던 프로그램을 다시 방송하거나, 공중파에서는 웬일인지 인기가 없는 외국 드라마를 방송하는 것이 케이블 드라마의 사실상 전부였다. 변화는 올여름 본격화됐다. 충무로 인력이 만든 공포물 시리즈가 방송되고, 가 시리즈로 만들어져 만화 그대로의 ‘하이퍼 리얼리티’를 선보이더니 tvN은 개국과 함께 라는 ‘남성판 ’를 방송하고 있다. 어쨌든 장르물이거나 공중파보다 한 수 위의 표현이 ‘셀링 포인트’인 드라마였다.
그리고 올겨울 (OCN, 금요일 11시 2부 연속 방영)가 나타났다. 이로써 케이블TV는 공중파가 섭렵하지 못하는 ‘블루오션’에 몸을 던지지 않고 ‘진검승부’ 도전장을 내밀었다.
는 “공중파에 방영해도 무난한 드라마”라지만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다. 12월 초에 제작이 완료되긴 하지만 는 공중파에서는 보기 드문 ‘사전 제작’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펴가며 연장하는 것은 아주 소수의 ‘대박 상품’에 한정됨에도 외주 제작, 자체 제작에 상관없이 대본에 쫓기고 촬영에 쫓겨 아슬아슬하게 방송하는 습관이 공중파 드라마에선 고질적이다. 는 50분짜리 드라마다. 상대 드라마가 늘리니, 방송 시간을 앞당기니 우리도, 하며 판문점 게양대 높이듯이 늘리고 앞당기다 보니 공중파 미니시리즈는 이제 한 회 80분짜리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맛본 50분짜리 드라마, 얼마나 산뜻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는 공중파의 관행을 가격하고 있고, 이쯤 되면 ‘케이블이라도 괜찮아’가 아니라 ‘케이블이라서 다행이야’ 정도가 된다.
공중파에도 무난하다? 왠지 섭섭한데…
는 물론 케이블용으로 제작되지는 않았다. 공중파로 가지 못한 것은 공중파 미니시리즈의 몇 가지 공식을 벗어났기 때문이리라. 이 벗어난 공식에서 는 빛난다. 는 재촉하지 않는다. 1부 설정 신들이 정신없이 펼쳐진 뒤 갑자기 한적하고 고즈넉해진다. 이 진행을 밀고 가는 힘은 ‘생략’과 ‘세밀함’이다. 다시 말하면 세련된 호흡이다. 슬럼프에 빠진 야마구치 하나(배두나)에게 외할머니는 “단 거 먹어. 아무 생각 말고 10개만 먹어. 행복해진대”라는 말을 하며 사탕을 건네준다. 잠 못 드는 하나는 새벽 옆집 할아버지 영길의 길 쓰는 소리를 신호 삼아 전등을 끄고 잠이 든다. 언제 하나가 주인공들과 만나나 목 빠지게 기다리는 시청자는 상관 않고, 그들은 하나가 한국에 오는 3회에서나 만나게 된다(그 이전에 몇 번의 우연적 부딪힘이 있긴 하다).
는 트렌드 드라마의, 남녀가 만나고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영원히 지켜내는 ‘일반적인 전제’를 일부러 비튼다. 이를 위해 등장인물은 사랑에 대한 태도가 독특한 이들로 설정됐다. 야마구치 하나는 ‘사랑이란 미친 호르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누가 좋아한다고 말하면 뚱그렇게 쳐다보며 “왜”라고 묻는 ‘돌아이’(석녀)이자 다른 사람은 당연한 것을 이상스럽게 여기는 ‘똘아이’다. 고진표(김민준)는 놀 거 다 놀고도 성적이 나오고 취미로 하는 놀이에서도 남에게 져본 적은 없으며 실버타운 원장인 것으로 보아 재력 또한 넘쳐나는 ‘완벽남’인데 ‘사랑’에 관한 한 하나와 비슷하다. 주위에 여성들이 들끓지만 220에서 자신의 나이를 빼면 나온다는 최대 심박수를 느껴본 적이 없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이사인 정혜영(오윤아)은 사랑에 매달리지 않는다. 그녀는 고진표를 좋아하지만 고진표가 관심이 없는 데 애달파하지 않는다. 고진표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까. 임석만(이진욱)은 사랑을 최고라 말하지만 이것이 발휘되는 것은 ‘스토리 제작자’로서일 뿐 실제 사랑을 만들어가는 데서는 적극적이지 못하다. 영원한 사랑은 나이든 이들의 몫이다. 야마구치 하나의 한국행의 동력인 두 개의 사랑(버리고 떠난 어머니의 사랑, 옆집 영길 할아버지와 구미코 할머니의 사랑)과 사랑에 눈이 멀어 실버타운에 ‘위장’ 입주한 애니메이션 회사 사장(신구)의 사랑이다.
끝까지 ‘쿨함’이 무너지지 않는 스토리를
섬세함을 추구하는 방식은 그들에게 생활과 취미의 아우라를 주는 것이다. 하나의 동네에 사는 재일 한국인 언니와, 석만 주변의 찜질방 친구와 사채 똘마니들, 혜영을 믿고 따르는 직원들은 그들에게 생활감을 불어넣는다. ‘완벽한 실장님’ 캐릭터인 의사 고진표에게 만화광이라는 성격을 부여하면서 그가 단순한 노블레스는 아님을 설득한다. 이 가미된 취미는 좀 과하기도 하다. 조금의 ‘된장’ 성격이 섞였다. 400만원 넘는 백을 물에다 담그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에 만족하는 것은 “그게 얼마짜린데”라며 옆에서 호들갑을 떨어주니 넘어갔는데, 돔 페리뇽(말로만 듣던 그 고급 샴페인)을 세 병씩 시켜서는 취할 때까지 마시고, 대화 속에서 취향을 치켜주는 건 좀 못 봐줄 정도다.
는 여전히 기다려지지만 중반을 지난 이 드라마의 숙명이 ‘쿨함’ 속에서 조금씩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는 결국 야마구치 하나가 미친 호르몬의 작용에 몸을 맡기게 되는 과정이다. 잡지 편집장이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가 신선해 보였는데, 계속되니 아니라서” 하나에게 스토리 수정을 요구했듯이 이런 방식으로 끝까지 신선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삼각, 사각 관계, 출생의 비밀 같은 이야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혜영이 석만의 ‘한국 머슴과 일본 지주 딸의 이야기’라는 진부함에 필이 꽂히는 것처럼 ‘신선하고 신선한’ 이야기를 찾다가 결국 다다른 곳에 ‘진부한 영원한 사랑’이 있다는 식은 아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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