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그래, 너희들이 이런 짓을 했어

등록 2006-11-30 00:00 수정 2020-05-03 04:24

청소년 동성애 차별을 그린 김곡·김선 감독의 <bombombomb>…급우들이 가둬놓은 동물원, 환상적인 록선율을 타고 탈주하다</bombombomb>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세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다. 인권위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차별 문제를 다룬 인권영화를 만들어왔다. 인권영화의 첫 번째 시선인 , 두 번째인 에는 하나의 시선이 빠져 있었다. 바로 성소수자 문제였다. 인권위는 유예됐던 과제를 에서 비로소 응시했다. 에 담긴 김곡, 김선 감독의 퀴어영화 <bombombomb>(밤밤밤)이 그것이다. 사실 혐오자와 당사자, 두 개의 시선을 동시에 의식해야 하는 성소수자 문제를 인권위가 다루기에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굳이 커밍아웃시키자면 김곡, 김선은 애인이 아니라 78년생 일란성 쌍둥이 형제다. 그들은 자주 하나의 의견을 나누어, 때때로 각자의 생각을, 드물게 상반된 의견을 말했다. 이렇게 ‘곡선’ 형제는 곡선을 그리듯 엇갈리며 곡사포 같은 말을 쏟아냈다.
여섯 편의 옴니버스 영화로 구성된 에는 <bombombomb> 외에도 으로 유명한 정윤철 감독의 , 을 만든 노동석 감독의 , 의 홍기선 감독이 연출한 가 담겨 있다. 이미연 감독도 전업주부의 항변을 담은 , 김현필 감독은 소녀가장의 사춘기를 아프게 그려낸 로 힘을 보탰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을 침묵의 언어로 보여주는 , 뿌리 깊은 ‘우리 안의 인종주의’를 아이들을 통해 폭로하는 , 용역직 도씨를 통해 정공법으로 비정규 노동자 문제를 제기하는 등 수작들이 담긴 은 11월23일 개봉했다.

“감독 자신도 놀랄 대중적인 작품”

김곡, 김선의 <bombombomb>은 마선이의 황무지 같은 마음에서 시작해 마선이와 마택이의 혁명적인 록으로 끝난다. 고교생 마선이는 “호모 새끼”라는 놀림을 당하는 왕따다. 마선이는 현대의 ‘불가촉 천민’이어서 누구라도 마선이와 가까이 지내면 ‘호모 새끼’라는 불명예를 안는다. 하지만 지옥 같은 학교에도 구원의 시선은 존재한다. 같은 반, 마택이는 유일하게 마선이에게 신경을 쓰는 아이다. 모두가 마선이의 등에 “저년”이라는 욕설을 꽂지만, 마택이만은 마선의 어깨에 안쓰러운 시선을 보낸다. 결국 <bombombomb>은 마‘선’, 마‘택’의 ‘선택’에 대한 영화다.

여러 개의 시나리오가 었었다고 들었다.
김선(선) (동성애를 둘러싼) 제도도 문제고, 상황도 살벌하다. 첫 번째 단추를 끼는 셈이니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다. (웃음)
김곡(곡) 별별 이야기가 다 있었다. 게이(남성동성애자) 커플의 영웅담, 위장결혼, 커밍아웃 등. 살벌한 현실인데, 우리의 선택은 고작 ‘고딩’ 얘기였으니 당황스러웠을 거다.
인권위 쪽에서는 보편적 얘기보다는 폐부를 찌르는 이야기를 원했다. 그런데 성장영화인지, 학교물인지를 선택했으니.
우리는 특수에서 보편을 끌어내기를 바랐다. 보편에서 특수를 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사실 조심스러워서 보편적인 문제로 가기도 했다.
비겁한 안전빵. (웃음)

인권위의 불안은 시사회 이후에 미소로 바뀌었다. <bombombomb>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인권위 쪽에서도 “감독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실험적인 영화를 해온 감독들이 이야기의 흐름이 또렷한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곡, 김선 감독은 2002년 으로 시작해서 2004년 , 2005년 , 2006년 까지 형식 파괴, 내러티브 해체의 실험영화를 만들어왔다.


보편적인 주제를 선택했다고 하지만, 사실 동성애 중에서 청소년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동성애 문제에 청소년 문제를 덧붙였다기보다는, 동성애 문제가 청소년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이미 성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밖에서 안으로 들어갔다기보다는 안으로 더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뿐 아니라 이성애자들도 그런 (성장의, 선택의) 시절을 겪기 때문에 공감대가 넓다. 왕따당한 애들은 누구나 봤을 테니까. 정말 우리가 (그들에게) 한 짓은 무엇인가, 이런 걸 건드리고 싶었다.

고민의 또 다른 축이었다. 비관과 낙관의 천장과 바닥을 정해놓고, 어디를 찍어야 하나. <bombombomb>은 바닥과 천장의 중간쯤을 자른 것이다. 사실 동성애자의 현실은 암흑 속으로 떨어지는 캄캄함이 있다. 이런 어둠이 현실에는 존재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최소화됐으면 했다.

“마선과 마택, 우정이다”

<bombombomb>은 잔인하다. 아이들은 마선에게 “호모새끼”라고 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몇몇은 마선의 바지를 벗기고 ‘신체검사’를 강요한다. 팬티를 드러낸 채 두 손을 제압당한 마선이는 “애인이 누구냐”는 추궁을 당한다. 사실 사춘기 아이들만큼 잔인한 집단도 없지만, 이토록 적나라하게 그들의 차별심리를 드러낸 영화도 많지 않았다.

마선에 대한 학대가 너무 잔인하게 묘사됐다고 느낄 수 있겠다.
사실 애들일수록 잔인하다. 카메라는 마선과 마선의 눈이다. 그들의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찍는 핸드헬드(hand held) 기법을 썼다.
일부러 페이크 다큐(Fake Documentary)처럼 찍었다. 카메라 앞에 대상을 놓지 않고, 대상이 있으면 거기에 카메라를 놓는 방식으로. 학대 장면도 그렇다. 얼굴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릴 때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저격수가 총을 쏘듯이, 목소리들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지만 하나로 조준될 때 무섭다. 그래서 학대하는 애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학교에서 놀이는 때때로 학대의 다른 이름이다. <bombombomb>에는 잔인한 놀이가 등장한다. ‘동물원 놀이’는 한 아이를 교실에 가두고 그 밖의 아이들 모두가 교실 밖으로 나가 창문을 두드리면서 욕설을 퍼붓는 학대다. 사람을 동물로 가두고, 동물원처럼 구경하는 원초적 학대. 마침내 마선이가 동물원 놀이를 당한다. 너무나 가혹해서, 정말로 저런 놀이가 있을까, 궁금해진다.</bombombomb>

우리 학교에 있었다.
수업시간에 몇몇 아이들 사이에 동물원을 한다는 쪽지가 돌기 시작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싫어도 나가야 한다. 안 나가는 놈은.
마택이 되는 거지. 사회의 동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놀이다. 사실은 갇힌 사람이 아니라 밖에 있는 애들이 동물이다. 원초적이니까.
마선에 대한 마택의 감정은 사랑인가, 우정인가. 감독들이 생각하는 인물의 감정선이 궁금하다.
어른의 애정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사춘기에 누굴 처음 봤을 때 쟤랑 말 좀 해보고 싶다, 뭐 그런 감정.
하나를 선택하라면 우정이다. 거꾸로 더 나간 얘긴데, 사랑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랑도 우정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마선이는 처연하다. 왕따에 지쳐서 어깨는 처졌고, 얼굴에는 여드름이 가득하다. 하지만 마선이는 스틱만 잡으면 드럼의 신으로 변한다. 마택은 성격도 무난하고, 베이스 연주도 탁월하다. 서로에게 신경을 쓰면서도 주변의 시선 때문에 가까워지지 못했던 그들은 밴드부에 들어가면서 드럼과 베이스 연주로 공명한다. 실제로 마선과 마택을 연기한 배우들은 밴드를 하는 비전문 배우들이다.

밴드에서 드럼, 베이스는 리듬 라인이다.
드럼, 베이스의 호흡이 잘 맞아야 좋은 연주가 나온다. 그것이 밴드 사회를 지탱하는 건데, 항상 무시된다. 사람들은 기타와 보컬만 보니까.
(자화자찬) 그러고 보면 우리 참 잘 정했다. (웃음)


동물원 군중에게 한 방 먹이다

학교는 우정(혹은 애정)의 저장고라고도 불린다. 마택이의 친구는 마선이를 혐오하는 아이다. 마선에게 혐오 발언을 하고 분을 삭이기 위해 수돗물을 벌컥이는 마택이를 친구는 반갑게 안는다. 입으로는 마선이를 욕하는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하면서 행동으로는 친구의 볼을 비빌 듯 껴앉는 ‘호모 에로틱’한 행동을 한다. 이렇게 일상적인 행동도 단면을 자르면 때때로 ‘호모 에로틱’해 보인다. 감독들은 “사실 의도는 아니었다”면서도 “그렇게 읽힌다면 만족이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정말로 지독하다. 너무 우울한 것 아니냐.
영화를 끝까지 보라고 충언하고 싶다. 마선이도 (그들과)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동물원 군중에게 한 방 먹인다. 동물원의 공간을 무대의 공간으로, (공연을 통해) 혐오의 시선을 동경의 시선으로 뒤집는다. 위에서 (마선과 마택을) 아래로 내려다보던 애들이 이제는 무대 밑에서 (공연하는 그들을) 올려다보아야 한다.
플롯상으로 (마선이와 마택이가) 승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감정선을 보면 승리한 거다. 마지막 연주는 그들만의 환상으로 끝나면 안 되겠다는 의도에서 주관과 객관, 현실과 환상 사이의 느낌이 나도록 연출했다.
환상과 실재, 주관과 객관 사이에는 공명, 파동이 있다.
진동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울 속에서 인물이 흔들리는 숏을 썼다. 둘만의 진동이 현실에도 울려퍼진다는 의미로.

영화의 마지막, 침묵하던 마선이 폭탄 발언을 던지고 마선과 마택이 선율을 타고 탈주를 한다. <bombombomb>이 끝나면 관객은 한 번쯤 웃는다. 영화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크레딧 때문이다. ‘비타협적 영화집단 곡사’라는 붉은 글씨에 웃는다. 김선 감독은 웃음에 대해 “물론 감내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들은 독립영화 집단의 이름인 곡사로 영화를 만들었고, 다수의 작품이 해외 영화제에 초청됐다.

앞으로 상영 영화도 한다고 들었다.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상영 영화를 하더라도 내러티브의 부작용에 비타협하는 노력을 할 거다.
이 영화가 터닝포인트가 됐다. 내러티브의 힘을 실감했다.
작업할 때 역할 분담을 하나?
넘나든다. 한 사람이 시나리오를 쓰면, 서로 주고받는 방식으로.

<bombombomb> 찍으면서 새삼 확인한 그들의 교훈. “차별은 끈질긴 형식이다. 국가보안법은 없애면 되지만, 차별은 반성을 해도 완전히 떼어내기 힘들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하나, <bombombomb>에서 음악은 영화의 핵심을 이룬다. 음악 자체로도 훌륭해서 당연히 고전적인 록넘버라고 생각할 법하다. 하지만 청소년 배우들이 영화음악을 직접 만들고 연주했다. 그들의 음악은 ‘짱’이다.</bombombomb></bombombomb></bombombomb></bombombomb></bombombomb></bombombomb></bombombomb></bombombomb></bombombomb></bombombomb>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