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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한국인은 어리둥절하다

등록 2006-10-21 00:00 수정 2020-05-03 04:24

방콕과 싱가포르 뿐 아니라 캄보디아 시장통에서도 흘러나오는 가요…저절로 흘러가는 해류가 돼버린 한류, 왜 그런지는 우리만 모른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2006년 10월 한류는 여전히 뜨거웠다. 싱가포르 청년은 ‘한글’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클럽에 놀러나왔고, 타이 방콕의 거리에는 태극기가 박힌 티셔츠가 전시돼 있었다. 방콕의 옷가게에 들어서자 윗도리에 새겨진 익숙한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에게 말했다. “어? 개량한복이네?” 친구가 말했다. “야, 이거 전부 한복 콘셉트인데.” 옷가게의 이번 시즌 옷에 모두 한국의 전통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이제는 드라마와 영화, 음악, 음식을 넘어서 한류는 패션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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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우리(나와 친구)는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한글 타이포그래피 티셔츠를, 한국에서도 한물간(?) 개량한복 콘셉트를 그들이 만들고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앉아서 생각하는 한류열풍보다 밖에서 느끼는 한류열풍은 거셌다.

김삼순과 ‘레인’을 말하는 동남아인들

방콕의 호텔에 도착해 텔레비전을 켜니 타이판 연예가중계인 듯한 프로그램이 동방신기의 방콕 콘서트 소식을 ‘여전히’ 전하고 있었다(동방신기는 내가 도착하기 두 주 전에 공연을 마쳤다). 방콕 실롬 거리에 늘어선 ‘구루마’는 내게 한류열풍을 가늠하는 시험대다. 1년에 두어 번씩 방콕에 들를 때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불법 DVD와 CD를 파는 구루마를 살핀다. 서너 해 전에도 한국 영화나 드라마 DVD를 구경하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지난해부터는 아예 구루마의 한쪽 벽을 한국 영화와 드라마만으로 채우고 있는 곳들이 적지 않다. 한국의 최신 영화와 드라마들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잊혀진 최지우의 10년 전 영화나 김희선의 데뷔 시절 드라마도 이따금 눈에 띄어서 혼자서 웃음을 짓곤 한다. 드라마만은 못하지만 가요한류도 잠들지 않았다. 두어 해 전에 방콕의 구루마에는 한국산으로는 유일하게 세븐의 음반이 깔려 있었다. 지난해부터 ‘레인’(비)의 음반이 등장하더니 올해는 레인의 음반이 여러 장 깔려 있었다. 예전에는 한국 연예인 하면 원빈, 배용준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레인’을 제일 먼저 언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드라마 한류의 영향으로 가요음반도 드라마 배경음악을 모은 음반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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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싱가포르를 한류열풍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역시나 싱가포르의 한류는 빨랐다. 은 기본이고 “김삼순”을 말하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많았다. 싱가포르 중심가 오차드 로드의 대형 음반매장에는 ‘Japan·Korea’ 차트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10위 안의 음반 중에서 한국산이 예닐곱 개로 서너 개의 일본산을 앞선다. 역시나 ‘레인’의 음반이 상위권에 들었다. 은 싱가포르에서 방콕으로 이어졌다. “말아톤”이라고 말하면서 조승우를 좋아한다는 싱가포르 사람도 만난 며칠 뒤에 방콕에서 대만 청년이 또다시 “말아톤”을 말했다.조승우가 한가위에 개봉한 에 출연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은데, 영어가 짧아서 포기했다.

은 21세기 최고의 수출품

어떤 싱가포르 청년은 한국 영화를 볼 때 항상 ‘원어’로 들으면서 자막을 본다고 말했다. 심지어 앙코르와트의 배후도시인 캄보디아 시엠리아프의 시장통에서도 가요가 흘러나왔다. 한국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발라드였다. 나도 모르는 가요를 그들이 듣고 있었다. 싱가포르 같은 중화권이나 타이 같은 동남아 ‘선진국’에서라면 몰라도, 동남아의 저개발국인 캄보디아의 시골에서 듣는 가요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방콕에 사는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한류열풍으로 먹고 살잖아.” 그렇게 한류에 대한 선호는 한국인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진다. 한국에 돌아와 말했다. “21세기 최고의 수출품은 인 것 같애” “한류는 저절로 흘러가는 해류가 돼버렸어”. 갈수록 한류는 뜨겁다. 도대체 왜? 우리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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