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풍경이 되어 세상을 찬찬히 관찰하는 배우, 오다기리 조… 과장된 ‘연기파’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강하고 섬세한 표현력
▣ 남다은 영화평론가
단 한 문장으로 배우를 설명하는 사전이 있다면, ‘오다기리 조’는 이렇게 정의될 것이다. ‘오다기리 조: 스크린의 좌우가 아닌 상하를 채우는 배우.’ 화면 안의 수직선. 그래서인지 그가 등장하면 화면은 텅 빈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화면을 자신의 존재로 꽉 채우는 배우를 훌륭한 연기자로 치켜세우는 풍토에서 그는 참 이상한 존재다. 그는 자신의 존재로 화면을 비운다.
날씬하고 길게, 마치 하늘까지 뻗을 것 같은 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늘 자신의 양옆에 여백을 달고 나타난다. 어느 포털 사이트에 따르면, 그의 키는 176cm라고 하는데, 정말 믿을 수 없다. 그처럼 평균적인 키에서 어떻게 그런 수직의 아우라가 발생한단 말인가!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직선이다.
옷을 벗지 않는다, 여자를 보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렇게 연상해볼 수도 있다. 짧고 두꺼운 마초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온몸에 기름칠을 할 때, 그는 천천히 걸으며 시를 읊는다. 그는 기타를 튕겨도 시를 읊는 것처럼 보인다. 마초들이 근육질 몸을 과시하기 위해 자꾸만 옷을 벗을 때, 그는 패션은 거의 유일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며 옷을 껴입는다. 아무리 치렁치렁하게 입어도 거추장스럽지 않고 순백의 셔츠를 바지 속에 넣어 입어도 민망하지 않다. 마초들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상대 여배우를 쳐다볼 때, 그는 눈앞에 아름다운 여자를 두고도 허공을 쳐다본다. 겉멋에 겨워 마음으로는 여자를 보면서 하늘을 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하늘만 본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는 단 한 번도 같아 보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섬세한 연기력을 칭찬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주목할 것은 그는 언제나 풍경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에게서는 늘 내면에 잠재된 히피적인 피가 느껴지지만, 그것이 전형성을 벗어나는 까닭도 여기 있다. 자유로운 영혼, 우수 어린 눈빛,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의 이미지는 사실, 얼마나 낡고 진부한가. 자칫하면 유치해진다. 그러나 오다기리 조는 자신이 영화의 풍경 자체가 됨으로써, 무언가를 억지로 압도하거나 튀지도 않음으로써, 이미 클리셰가 된 히피의 모티브를 지겹게 반복하고 소비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에서 모뉴먼트 밸리를 걷는 텟페이(오다기리 조)가 그 엄청난 스펙터클에 짓눌리지 않는 것은 그의 영혼이 대단히 자유로워서가 아니라, 그가 한 그루 나무처럼 밸리의 일부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는 극장 안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홀로 유학을 떠났고, 지금도 사람들과 만나는 것보다는 홀로 놀기를 즐긴다. 그는 태생적으로 고독하다. 영화 속에서도 그는 무리에 섞이지 못한다.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무리 안에 있어도 그는 늘 혼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는 시끄러운 정글 속의 조용한 기린 같다. 의 늙은 게이들 틈에서 그가 눈에 띄었던 것은 그의 빛나는 젊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쾌활한 노인들 틈에서 유독 고요했기 때문이다. 의 그는 피터지게 싸우는 청춘들 틈에서 유일하게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에서도 그는 불안한 친구들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오다기리 조는 무리가 가는 길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길을 묵묵하게 걷는 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와 같은 영화에서는 그도 분노하고 감정을 폭발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에서 그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을 관찰하는 자에 가깝다. 그것은 세상을 제3자의 입장에서 관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이해하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마치 의 히피 청년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영화 속 오다기리 조의 우수 어린 눈빛은 허무의 시선이 아니라 공부하는 시선이다. 이 공부하는 눈빛이 그를 그저 꿈만 꾸는, 현실을 등진 이상주의자의 나른함으로부터 구해낸다. 그는 온갖 비현실적인 이미지 혹은 조건의 집합체이면서도 나약한 비현실주의자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사회 혹은 제도와 격렬하게 싸우지는 않지만, 그것과 자연스럽게 타협하는 방식에 길들여지지도 않는다.
담배 피우는 모습이 섹시한 남자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관점에 따르면) 그가 가장 멋있게 느껴질 때는 약간의 까칠한 수염을 기르고 닭 벼슬 머리를 한 채, 혼자 담배를 피울 때이다. 고백하자면, 그런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섹시하다. 이상하게도 그가 여자 배우와 함께 있을 때, 심지어 침대 장면에서조차도 아무런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는 옷을 좀 걸치고 여자와 함께 있지 않을 때,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그건 오다기리 조가 남자와 여자의 경계에 선, 어찌 보면 무성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미소년과 마초 사이의 경계에 서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그에게는 ‘연기파’ 배우들이 흔히 몰두하는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 없이도, 동시대 남자 배우들은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강하지만 섬세한 표현력이 있다.
오다기리 조는 이제 서른 문턱에 접어들었다. 그는 분명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멋있어지고 더 괜찮아질 것이다. 그런 확신을 주는 배우는 흔하지 않다. 아사노 다다노부와의 첫 연기 경험이 꿈만 같았다고 고백하던 의 해파리 소년은 이제 그 자신이 누군가의 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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