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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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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비빔밥, 아시아는 닮았네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민족음악공연 <아시아, 우리들의 향기> … 베트남·몽골·말레이시아·필리핀·버마 등 5개국 전통악기 만나

▣ 사진·글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마치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 차림의 여성이 가야금을 타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5월10~11일 이틀 동안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아시아, 우리들의 향기>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을 하는 베트남의 단쳉 연주자 부티 비엣 홍(하노이 국제음악학교 강사). 그는 연습 내내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36현 악기 단타블로를 연주했다. 전공은 가야금을 닮은 단쳉인데 이날은 합주에서 연주할 단타블로 현을 두드렸다. 이 악기는 몽골의 여칭을 쏙 빼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여칭이 강한 소리를 내는 데 견줘 단타블로는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는 것뿐이다.

몽골 ‘마두금’ 선율에 필리핀 ‘반두리아’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악기들을 여기에서 만난 아시아 각국 연주자들을 통해 보았어요. 가야금은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 연주자 공연에서 봤는데 직접 배워보니 단쳉하고 비슷해요. 오른손 주법이 다른데도 멜로디가 느리고 슬픈 것은 차이가 없어요.” 비엣 홍은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서울에서 지냈다. 문화관광부가 추진하는 문화동반자 사업의 하나인 ‘국립극장 아시아 민족음악인 초청연수’에 참가한 때문이다. 거의 6개월에 걸쳐 매일 오전에 한글도 배워 가벼운 인사말 정도는 건넬 수 있다.

물론 한글을 배우는 것보다 한국의 전통 음악과 문화를 체험한다는 게 뜻깊은 일이다.

이미 국립극장에 울려퍼질 아시아의 소리는 하나가 되어 있었다. 베트남을 비롯한 몽골, 말레이시아, 필리핀, 버마 등 5개국 10명의 참가자는 각국의 전통악기로 아시아의 화음을 엮어낸다. 퍼포먼스가 포함된 리허설에서 ‘안녕하세요’를 뜻하는 민그라바(버마), 사인바이노(몽골), 신짜오(베트남) 등의 인사말을 건네고 자리에 앉은 연주자들은 우리 동요 <고향의 봄>과 필리핀·베트남 민요를 저마다의 전통악기로 음역이 흐트러짐 없이 채워나갔다. 굳이 친선과 연대라는 말을 꺼낼 필요가 없었다. 몽골 초원의 첼로 마두금과 필리핀의 격정적인 반두리아, 베트남의 신비로운 현 단보 등은 서로를 위해 준비됐던 악기로 다가온다.

이번에 문화동반자로 만난 이들은 자국에서 내로라하는 전통악기 연주자들이다. 말레이시아의 세루나이(태평소와 비슷한 악기) 연주자 로슬란 빈 하룬은 국립극장인 ‘이스타나 부다야’ 전속 연주자로 아시아와 유럽의 해외 축제에 단골로 참여하고 있으며 버마의 사운(16현 하프) 연주자 라잉 윈 멍은 양곤국립대학 예술학부 교수로 3년 전 전주세계소리축제에도 초청돼 공연했다. 달포가량의 연습 기간에 다른 민족의 악기를 섭렵한 윈 멍은 벌써부터 대학에서 배움을 전하고 싶어했다. “아시아의 소리가 이렇게 닮은 줄 몰랐어요. 무엇보다 여러 민족의 문화를 통해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관심 밖에 있던 아시아의 소리가 저마다의 향기를 내뿜으며 ‘안녕, 친구!’가 되어 만난다. 무대에서 연주자의 자리만 지키던 전문가들이 ‘초보 연기자’가 되어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최성신씨는 “잘 짜맞춰 연기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게 즐기면서 공연을 하자”고 거듭해서 말하지만, 공연 참가자들은 한국 관객을 만날 기대감 때문인지 발걸음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이번 공연에서 아시아의 전통악기 연주자들은 세계가 주목하는 해금 연주자 강은일, 시 같은 음악을 선보이는 퓨전 국악그룹 ‘The林’(그림) 등과 협연도 할 예정이다. 지금 아시아의 소리가 남산 자락에서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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