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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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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영화들, 진보를 껴안다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도 맛깔난 정찬을 베풀어준 제7회 전주영화제…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적인 영화들은 ‘인권패키지’같은 느낌을 준다네

▣ 전주=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전주 막걸릿집은 막걸리만 시키면 주인이 알아서 척척 안주를 내다준다. 조개에 생더덕으로 시작한 안주는 막걸리 두 주전자를 시킬 즈음엔 홍어무침까지 나온다. 식당도 정식이면 된다. 아줌마는 살갑지 않으나 4천원 정식에 뚝배기 된장, 미역국, 조기구이, 나물을 일고여덟 가지씩 늘어주니 나갈 때는 절로 큰 소리로 인사 건네게 된다. 때는 전주천에 수양버들이 늘어지고 덕진공원 벤치에 붙박이로 앉았던 할아버지들이 나들이 인파에 바둑도 장기도 파하는 춘사월이다. 춘사월 전주영화제는 전주풍으로 척척이다. 그냥 정식 시키듯 영화를 보는, 준비 없는 관객에게도 영화제는 정다웠다. 그러다 보면 하루 세 끼인 게 아쉽듯 세 시간 간격으로 짜인 시간표는 억울해진다.

1700석 전북대 문화관을 꽉 채운 불면의 밤

5월5일 폐막작 김영남 감독의 <내 청춘에게 고함>을 마지막로 영화제 꽃놀이도 끝났다. 필름롤을 담았던 통은 모두 개봉했고 테이프는 끝까지 돌았다. 지난해보다 10% 많은 예매율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 영화제는 5월3일 밤 12시 현재 77%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했고 89회의 영화티켓이 매진됐다. 유료 관객은 지난해보다 1만 명이 더 늘어난 6만2천 명이 예상된다. 4월29일 열린 두 번째 ‘불면의 밤’에는 1700석의 전북대 문화관이 꽉 찼다.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낯선 영화’에서 재미를 발견한 듯하다. 지난해 ‘영화보다 낯선’ 섹션 피터 쿠벨카 특별전에 관객들은 열렬하게 반응했는데 올해도 그 열기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피터 체르카스키 특별전과 존 조스트, 제임스 베닝의 신작 단편이 선보였는데, 이 섹션에서 장편 두 편을 빼놓고는 모두 매진을 기록했다. 디지털 스펙트럼에 대한 관객의 호응도도 높아졌다.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지난해 예상을 깨고 ‘영화보다 낯선’ 영화에 보인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올해도 실험영화 감독을 모시고 섹션을 구성했는데 고무적이었다.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 신문에서는 “스타들이 없다”고 불평을 했지만 어느 때보다 많은 스타가 개막식에 도착했다. 영화 외의 기발한 볼거리들도 영화제의 순항에 힘을 보탰다. 영화제의 거리에 가면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더라는 기분을 안겨주는 이벤트들이 전주 시민들을 손짓했다. ‘소풍’이라고 이름 붙인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야외 상영 전에 열렸다. 가장 ‘친절하지’ 않은 영화들이 모인 것 같았던 전주영화제는 이제 지역 주민들의 호응에도 발맞춰가고 있는 것이다. 이만석씨는 “2회가 1회보다 낫고, 3회는 2회보다 낫다. 점점 더 발전해가고 있다”며 지역 영화제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날씨도 좋았다. 그간 낮 동안 비를 뿌리지 않은 때는 올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노동절이 겹친 황금 휴가에 사람들의 마음은 영화로 달렸다.

어느 영화보다 선동적인 ‘디지털’

전주영화제가 첫 회부터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는 프로젝트인 ‘디지털 삼인삼색’의 주제는 올해 처음으로 이름을 갖게 됐는데 ‘여인들’이었다. 디지털은 시대는 변해도 감정은 유고하다는 생각을 전하거나(<어바웃 러브>), 일상적인 경험에 밀착하거나(<12시간20분>), 다큐멘터리 형식에 적합(<휴일 없는 삶>)하다. 카자흐스탄의 다레잔 오미르바예프 감독은 <어바웃 러브>로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을 체호프 스토리에 기대 이야기했고,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은 <12시간20분>에서 비행기의 긴 시간 동행이 가져오는 내밀한 감정을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담았다.

디지털이라는 진보적인 매체는 사상도 진보를 담는 것일까. 외국인 여성 노동자의 삶을 초기 유성영화식으로 보여주는 <휴일 없는 삶>은 어느 영화보다 ‘선동적’이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의 가난한 농촌마을 시티의 집에 브로커가 찾아온다. 싱가포르로 가서 식모로 일하면 집도 사고, 저축도 할 수 있고, 아이도 교육할 수 있다고 브로커는 말한다. 시티가 메이드 양성학교에 입학하면서 전원적인 풍경을 넓게 잡던 자연스러운 카메라는 탈색된 기계적 화면으로 돌아선다. 이제부터 모든 장면에서 그녀는 2~3m 앞의 전신샷이나 버스트샷으로 중심에 놓인다. 그녀는 계단과 유리창을 닦고 음식을 준비한다. 주위의 소리는 외국 영화의 더빙 대사처럼, 화장실의 노래처럼 웅웅거린다. 이 식모의 단순한 삶을 닮은 단순한 카메라는 위력적으로 감정을 쌓아간다. 핸드프린팅과 함께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감독은 “싱가포르 가정부들의 문제가 세계 영화제 상영을 통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디지털 삼인삼색’은 8월 캐나다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는 1회부터 6회까지 ‘디지털 삼인삼색’도 상영될 계획이다. 지난해처럼 더 많은 관객을 만나는 극장 개봉도 추진되고 있다.

그 외에도 여성 문제를 다룬 영화는 더 있다. 한국 영화의 흐름 부문의 <쇼킹 패밀리>는 빨간눈사람의 이경순 감독이 “가족이 대체 뭐관대”라며 강한 훅을 뻗치는 영화다. 감독과 여자로만 구성된 스태프들은 개인의 가족사라는 에피소드를 풀어놓는데, 이것은 점점 가족이라는 정체 모를 목표를 가격할 눈덩이로 커져간다. 한국 단편의 선택: 비평가 주간 ‘여성/되기’ 섹션의 <이슬 후>(엄상미 감독)는 중절 수술을 받은 고등학생의 오후를 담담하게 쫓아간다. 혼자 밥을 하고 미역국을 끓인다. 잠이 든 사이에 단수 소식을 경비가 전한다. 밥을 먹고 화장실로 가서 아래를 막았던 것을 꺼내서 버렸는데 물은 나오지 않는다. 빨래를 걷고 텔레비전을 보고 아래로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입속의 얼음을 뱉으며 아이 같은 놀이도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는다. 여성의 섬세함이 여성적 소재와 맞물려 이루어내는 성장기가 애잔하다.

우리가 포착하지 못한 그들의 특별함

전주영화제의 많은 영화는 묶어서 ‘인권 패키지’ 같은 느낌이 든다. 이란 이민 2세대 라민 바흐러니가 만든 미국 영화 <카트 끄는 남자>는 카트에서 베이글과 차를 파는 파키스탄 출신의 이민자 아흐마드가 주인공이다. 그는 매일 새벽 3시 물품을 떼고 카트도 보관하는 창고에서 카트를 끌고 나온다. 감독은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 사이로 온 힘을 다해 카트를 옮기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 장면에는 개인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무명의 도시, 인간을 무력화하는 나날의 생계, 하루라도 거르면 깔려 뭉개버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도시의 속도가 담겨 있다. 그는 “미국에서 하지 말라는 것은 뭐든 할 거야”라며 잠깐 분노를 폭발하지만 그가 하는 반항이란 죽은 고양이를 땅에 파묻는 것을 금지하는 뉴욕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아흐마드를 연기한 아흐마드 라즈비는 카페에서 일하다 이 영화에 캐스팅됐는데, 이를 계기로 할리우드로 진출하기도 했다. 촬영에 스케줄 때문에 빠듯하게 전주를 찾은 그는 영화제를 방문한 유일한 외국 영화배우. 관객들의 배우 대접이 열렬했다는 후문이다.

진짜 ‘인권 패키지’도 있다. 세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도 첫 번째, 두 번째처럼 전주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홍기선 감독(<선택>)의 <나 어떡해>를 비롯해 이미연 감독(<버스, 정류장>)의 <당신과 나 사이에>, 정윤철 감독(<말아톤>)의 <잠수왕 무하마드> 등 기성 감독의 작품에 촉망받는 영화감독들인 김현필(<소녀가 사라졌다>), 노동석(<험난한 인생>), 김곡·김선()이 참여했다. 정윤철 감독의 <잠수왕 무하마드>는 유독가스가 나오는 한국 공장에서 일하는 타이 바닷가 출신의 무하마드가 주인공. 벽에는 ‘마스크 항시 착용’이 붙어 있지만 그는 가끔 마스크 착용을 잊는다. 그의 고향을 배경으로 한 TV 프로그램 화면으로 그의 과거가 보여진다. 옛 고향사람은 말한다. “아침에 물에 들어갔다가 안 나오기에 죽었나 했는데 저녁 때 나왔다. 뭐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랬다나.”
이 영화가 그들의 ‘우리가 포착하지 못한 특별함’을 강조했다면 ‘한국 단편의 선택: 비평가 주간-불안의 원리’ 섹션의 <우연한 열정으로 노래 부르다 보면>은 ‘공통점’을 강조했다. 이 영화에서 베트남 노동자는 자연스럽게 한국 사람과 섞여든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는 상황만이 만남을 어색하게 하는 요소다. 권지영 감독은 인도네시아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느꼈던 문제를 이번 영화를 통해 풀고 싶었다고 한다. 연기를 할 수 있는 외국인을 구하다가 어렵게 연극원에서 유학 중인 스를 만났고 그의 활달한 성격에 맞춰 시나리오는 대폭 수정됐다.



[인터뷰]“신기하게 바라보는 건 최악이다”

<사이에서>의 감독 이창재 인터뷰

한국 영화의 흐름 섹션에 상영된 <사이에서>는 보는 사람을 강렬하게 흔드는 영화다. 영화는 보통 사람의 손과 다른 손을 가진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들의 손에는 신이 그려준 ‘신의 지문’이 있다. 영화는 무당 이해경이 황인희와 김동빈, 손명희에게 내림굿을 해주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해경은 과연 내림굿을 해야 하는지를 두고 끊임없이 의심한다. 고민 끝에 결단한 내림굿을 할 때, 그의 목소리는 눈물에 푹 잠겨 있다. 이해경 역시 무당이 되지 않으려 도망 다녔고, 아들이 죽고 나서야 그 길로 들어섰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습격을 받아들이고도 끊임없이 회의하기에 이 영화는 무속인을 다뤘으면서도 아주 지적인 영화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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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전주영화제 상영에 이르게 된 것은 극적이다. 이창재 감독이 영화를 완성한 것은 지난해 8월. 원래 해외 배급이 목적이었는데 제작사가 힘들어지면서 그쪽으로 일이 진전되지 않았다. 전주영화제의 마감도 끝난 3월 어느 날 동료에게 보여줬는데 상영작으로 확정됐다는 통고가 왔다. 10여년 전 이창재 감독은 Q채널에서 <아시아 리포트> 등을 만든 비디오저널리스트(VJ) 영토의 개척자였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뒤 지금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예술학과의 교수로 있다.

무당 이해경은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다. 그는 내림굿을 하면서 내내 운다. 그게 관객의 감정이입을 끌어내는 것 같다. 그를 어떻게 담게 되었나.
=맨 처음에 생각한 것은 몽골리언 샤먼이었기에 여러 종교학자를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연구를 하다 보니 한국의 무당에만 원형이 남아 있더라. 그래서 돌 필요 없이 한국의 샤머니즘을 다루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황해도굿은 징, 꽹과리, 장고로 세게 몰아쳐서는 접신을 빨리 시킨다. 무당으로서는 지치지만 보기에는 아주 화려하다. 이해경은 그의 자서전을 먼저 읽고 만났다. 글을 워낙 잘 써서 처음에 “이거 정말 당신이 썼냐”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했다. 실지로 그는 아주 이지적인 인물이었다. 동시에 어느 누구보다도 무당 입문이 극적이었고, 무당에 대해 긍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몇 번 만나서 이야기한 지 얼마 뒤 내림굿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점을 고심했는가.
=오리엔탈리즘을 배제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것은 곧 실증적인 것을 배제하자고 것이었다. 작두 위를 걷는데 그게 얼마나 위험하고, 칼을 물었는데 그게 얼마나 날카롭고 이런 걸 보여주지 않고자 했다. 과학적 이용은 오리엔탈리즘을 강조하는 양날의 칼이다. 증명되면 믿고, 증명되지 않으면 믿지 말라고 해야 하는 건가. 종교의 세계에 그런 잣대를 갖다대지는 않는다. 종교적·철학적 관점에서 무속도 평등하게 대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처음엔 우왕좌왕했다. 작가인 한윤희씨가 “보여주자” 하면 “안 된다”고 했다가 다시 “너무 재미없다. 보여주자” 쪽으로 가기도 했다. (나는 보는 걸 기피한) 무당을 다룬 <영매>라는 다큐멘터리도 있었기에, 같은 소재에 더 센 거로 가야 하지 않느냐는 말도 있었다. 실지로 서울대병원 심장과의 인터뷰를 받아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며칠 내로 죽을 것이라고 진단을 받은 사람의 심장에 이해경이 닭을 올려놓았더니 닭은 죽고 그 사람은 살아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부의 오리엔탈리즘이 더 경계해야 할 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 바라본다’는 느낌은 최악이다.
다큐멘터리인데도 이야기가 드라마틱하다.
=‘Between’이란 인간과 신의 사이라는 뜻이 있고 그 사이를 소통하는 자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도 있다. (오른손을 펼쳐서 새끼손가락과 엄지를 가리키며)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하나의 굿으로 구성했다. 접신되는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맞이굿 장면을 맨 처음에 넣고 맞이굿을 한 인희의 내림굿을 맨 끝에 배치하는 식이다. (왼손을 펼쳐 보이며) 한쪽은 드라마 구조다. 그 내에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손을 깍지 끼며) 이 사이의 틈을 메우는 것이 ‘사이에서’의 의미다.
다음 작품도 다큐멘터리인가.
=얼마 전에 만난 <밀크 우먼>의 오카타 감독이 10년 넘게 다큐멘터리를 하다가 극영화로 전환했다고 하더라. 여자들이 이름도 모르고 팬레터도 안 보낸다는 것이다. 제작비를 구하기도 힘들고, 1년에 다큐멘터리 한 편이 개봉될까 말까 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 다큐멘터리도 픽션이라고 생각한다. 진실 추구라는 목적이 있지만 개인의 진실은 자신도 모른다. 사람들은 픽션의 옷을 입고 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하루키는 현실이라는 울퉁불퉁한 도로에 픽션은 완충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자기가 겪어온 과정이 자료가 되는 건 아니지만 창조해낸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다. 지금 ‘모방’에 관한 극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인터뷰]“그 길을 가고 싶어하면 좋겠다”

<천상고원>의 김응수 감독 인터뷰

<천상고원>에서 K는 E의 편지를 받고 그를 찾아서 길을 떠난다. E가 전해준 단서는 “델리에서 북쪽으로 일주일을 가서 히말라야에 도착하고 거기서 한 달을 걸어서 라다크 마을에 도착했다.” 흥겨운 음악이 흐르는 마을을 지나 한참을 달리자 나무의 흔적은 끊어진다. 하늘로 오르는 듯한 길들은 가물가물 이어진다. K는 고산병에 심신이 약해지고 그와 우연히 동행하게 된 김태훈은 어딘가로 사라진다. 여행은 계속되고 이어지던 길 앞으로 갑자기 눈 앞에 푸른 하늘을 얹은 평화로운 초록의 마을 라다크가 등장한다. 그곳은 하늘과 닿은 ‘천상’ 고원이자, 천상의 풍경이 펼쳐지는 ‘천상’ 고원이다. 여러 가지 표정의 길이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 김응수 감독은 K로 직접 출연했다. 그는 열사 김세진·이재호를 그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20주기 추모식을 찍고 전주로 와 <천상고원> 상영회에 참석한 뒤 다시 촬영을 위해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왔다.

이 영화는 깔리는 대사를 제외하면 다큐멘터리다. 혹시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나중에 내레이션을 깐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원래 시나리오를 가지고 찍었다. 상영회 뒤 사람들이 좀 멍했던 것 같다. 저런 영화도 있나 하는 생각에. 보통의 관습적인 표현을 하지 않은 영화니까 신선하게 봤다는 말일 수도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실험영화는 아니다. 카메라가 많이 흔들려서 사람들이 현기증을 느낀 건 이 영화의 미덕이다.
갑자기 라다크 마을이 나타날 때는 뭔가 확 뚫리는 느낌이었다. 천상의 풍경 같은 느낌이다.
=제목이 그래서 ‘Heavenly Path’다. 관객 중에 자기도 그 여정을 가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의 매력을 주는 게 어딘가.
나중에 3년 전에 그 길을 갔다는 게 드러난다.
=3년 전에 갔을 때는 몸이 좋지 않아서 오래 머물렀다. 그때 찍은 사진을 이번에 돌려준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아주 반가워해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촬영할 때는 ‘좀 안아주지’ 하는 생각에 그들에게 기억을 상기시키려 애쓰기도 했는데, 나중에 그들을 이해하게 됐다. <오래된 미래>를 보면 이 사람들은 밖에 오래 나갔다 돌아온 사람도 어제 본 사람처럼 대한다. 형식이나 호들갑은 그들에게 없다. 있어도 없는 사람이고 없어도 있는 사람이다. 그 자연 속에서는.
점점 다큐멘터리적인 것으로 향하는 것 같다. 다음 작품인 김세진·이재호 추모 다큐멘터리에 대해 말해달라.
-의식적으로 그러려는 건 아닌데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지인들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10년 만에 하는 ‘후일담’인 셈인데(그의 데뷔작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후일담 이야기는 되지 않게 하려 한다. 옛날 생각에 안 빠지려고 한다. 냉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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