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인디신 대표주자들이 털어놓는 ‘내 맘대로 음악하기’ 10년
주류에서 잃어버린 풍경과 시간을 찾아 ‘인디’의 자전거를 타고 5집으로
▣ 하정민 인턴기자/ 한겨레 온라인 뉴스부 foolosophy@naver.com
서울 홍익대 앞에서 인디밴드들이 ‘땅속 헤엄치기’로 모습을 드러낸 지 10년이 지났다. 이들에 대해 어떤 이는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뮤지션’이라고 보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실력도 상업성도 모자라는 음악광’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내린다. 이런 혼란 속에서 모던록 밴드 ‘언니네 이발관’을 찾으러 홍대 앞으로 향했다. 그런데 우연히 길거리에서 ‘그럴듯한’ 정의를 들을 수 있었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악기를 둘러메고 지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쟤네들이 인디밴드 하는 애들인가봐. 근데 인디가 뭐냐?”라고 묻자 그 친구인 듯한 이가 ‘인디’에 대해 “거대 제작사를 떠나 작게, 자기 맘대로 해보겠다는 것 아냐”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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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디밴드는 ‘자기 맘대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언니네 이발관에게 나름의 답변을 들어보기로 했다. 일단 인디밴드의 살아 있는 역사인 언니네 이발관의 오늘이 궁금했다. “비주류도 언더도 아닌, 인디밴드라는 모호한 정체성에 갇혀 답답할 때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달려와 보니 결국엔 인디라는 정체성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며 팀의 리더인 이석원씨는 자신들의 ‘인디성’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인디신’이 내놓은 중요한 성과를 일일이 꼽기도 했다. “카피 잘하는 밴드가 인정받던 분위기에서 자작곡으로 승부하는 풍토가 생겼고, 셀프 레코딩 기술도 발전했다. 몇몇 밴드를 중심으로 인디 시장도 어느 정도 확보됐고 ‘문라이즈’ 같은 색깔 있는 레이블도 나왔다.”
“자작곡 풍토로 바뀌고 레이블도 생겼죠”
지금은 델리스파이스와 함께 홍대 앞 인디신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언니네 이발관. 이들의 시작은 이석원씨의 ‘거짓말’에서부터다. 그 뒤로는 ‘그런데’의 연속이었다. 1993년 PC통신 모던록 소모임 ‘모소모’를 운영하던 이석원씨는 자신을 늘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로 소개했다. 당시 언니네 이발관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니 ‘생구라’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팀은 밴드에 호기심을 가진 멤버들이 모여들면서 급기야 멀쩡한 밴드가 됐다. ‘그런데’ 이씨는 기타를 잡아본 적도 없었고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멤버가 거의 없었다. 이들의 목표는 “라이브나 한번 해보고 찢어지자”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그런데’, 1995년 7월 이들의 데뷔 공연은 홍대 앞 클럽 드럭 역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다. 1996년에 발매된 이들의 데뷔 음반 <비둘기는 하늘의 쥐>는 여전히 잘 팔린다.
이렇게 출발한 언니네 이발관은 인디밴드의 작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0여년 동안 활동하면서 모두 네장의 음반을 냈다. 주류에 대한 독립성과 자존심을 갖기 어려운 ‘한국적 인디 토양’에서 드문 일이다. 언니네 이발관의 활동 역시 주류에 대한 동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인디성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이씨는 말한다. “언니네 이발관은 늘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솔직한 심경이기도 했지만 ‘인디 애티튜드’에 어긋난다며 상업적인 노선을 터부시하는 관습적인 잣대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는 1집 때부터 메이저 음반사와의 계약은 거부했고, 예쁜 여자 보컬을 넣으면 뜰 거란 제안도 거부했다. 이런 게 인디라서 가질 수 있는 순수성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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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자기 맘대로’라는 정의는 절반만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상업적 성공에 대한 욕망은 밴드의 생계 대책을 세워야 했던 리더로선 생존의 기회를 모색하기 위한 고육지책은 아니었을까. 다른 멤버들의 인디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팀에서 기타를 맡고 있는 이능룡씨는 1990년대 등장한 ‘인디밴드’라는 개념이 당시 만연해 있던 음악 풍토에 대한 반발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당시 헤비메탈을 하는 친구들은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서 음악을 한다기보다 ‘궁극의 헤비메탈’이라는 목표치를 정해놓고 훈련하는 식이었다. 인디 음악은 장르나 음악적 가치를 우선시하지 않는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내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언니네 이발관은 ‘유복한 인디밴드’로 여겨진다. 적어도 음악적 지향을 포기하면서 음반을 제작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이들의 행로가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멤버도 계속 바뀌어왔고, 한때 완전히 활동을 접은 적도 있다. 결정적인 계기는 2집 음반이었다. 애써 음악적 완성도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팬과 비평가들은 등을 돌렸다. 1집 때처럼 풋풋한 아마추어리즘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음반 판매량도 기대에 못 미치면서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결국 이석원씨는 일반 기업체에 취직했고, 다른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다 4년 뒤, 기르던 강아지 수술비가 필요해서 음악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이씨가 오디션을 통해 언니네 이발관의 멤버를 다시 모았다.
3·4집 흥행 뒤 얻은 ‘자전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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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4년여의 공백을 딛고 발표한 세 번째에 이어 네 번째 음반까지 ‘대박’의 반열에 든 것이다. 이런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언니네 이발관은 ‘앞으로 음반 10장은 더 낼 만큼의 기회’를 얻었다. 멤버들을 ‘이발사’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팬층도 두터워졌으며 ‘때깔 고운’ 뮤직비디오가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언니네 이발관이 갑자기 딴소리를 시작한다. 유복함을 맛보자 오히려 진짜 인디 애티튜드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것이다. “주류에 가서 홍보도 해봤고, 큰 극장에서 단독 공연도 해봤지만 결국 우리 정체성은 더 작게, 조금 질이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만드는 가치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또 다른 미래를 꿈꾸는 언니네 이발관의 희망사항에 대해 이능룡씨는 ‘자전거론’을 설파한다. “4년 정도 차를 몰고 다녔는데 가끔 자전거를 타면 그동안 운전하느라 빼앗긴 시간이나 풍경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거대한 시스템이나 새로운 기술들은 그런 걸 얻을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다.” 이발사들은 ‘인디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5집 음반과 활동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굶주림을 해결한 상태에서 이뤄질 풍요로운 실험을 기대해볼 만하다. 홍대 앞 인디신을 거쳐 10년의 굴곡을 겪어온 ‘늙은 인디’를 주목하면 ‘늙지 않는 인디의 노래’가 들려오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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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큐베이터의 자부심을 헤치는가 |
여름 내내 홍대 앞은 시끄러웠다. 지난 7월30일 문화방송 <음악캠프>에서 벌어진 ‘알몸 노출’ 사고로 갑자기 홍대 앞 클럽이 ‘부비부비’ 문화 등 퇴폐의 온상으로 낙인찍혔다. 이는 ‘인디밴드’와 홍대 앞 ‘댄스 클럽’과의 모호한 연결고리 때문이었다. 가장 발끈한 것은 오랜 시간 인디밴드를 키워온 라이브 클럽들. 10년 전 ‘인디신’의 중심 배경으로, 이후로도 꾸준히 인디밴드의 ‘인큐베이터’ 구실을 한 라이브 클럽들의 자부심은 높다.
홍대 앞 라이브 클럽 ‘빵’을 운영하는 김영등씨는 “제발 라이브 클럽과 댄스 클럽을 구분해서 생각해달라”고 말한다. 젊은 문화인들이 자유롭게 창작·소통하는 문화적 전통을 뜻하는 홍대 앞의 ‘인디 정신’을 이어온 라이브 클럽은 2002년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상업적인 댄스 클럽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설명이다. 인디밴드 ‘미선이’ ‘루시드 폴’ 등에서 활동한 조윤석씨는 홍대 앞 클럽이 자연스러운 문화의 흐름 속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항 정신이나 문화적 대안이라고 거창하게 볼 것도 없다. 홍대 앞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분출하는 공간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원하는 사람은 가서 즐기고 연주할 수 있게 그냥 그대로 놔두면 된다.”
앞으로 홍대 앞 라이브 클럽과 인디밴드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 알몸 파문으로 몰매를 맞은 뒤 인디밴드에 대한 각계의 관심이 증폭되는 분위기다. 지난 9월2일 문화관광부 청사에서 ‘인디음악 진흥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빵’ 대표 김영등, 웹진 <가슴> 편집장 박준흠 등 8명의 인디음악 전문가가 참석한 자리에서 핫뮤직 이영복 대표는 큰 규모의 지원금 조성, 인디음악이 대중을 만날 수 있는 채널 확보, 평론 기능 강화 등 세 부문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인디음악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인디밴드 ‘오! 부라더스’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이성문씨는 정부의 관심이 자칫 간섭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요즘 사람들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인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국내 인디음악보다 외국 인디음악 소비량이 많다는 게 불만이라면 불만이지,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미 인디음악은 자생력을 지녀 잘 크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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