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류작들의 유혈경쟁들이 판치는 문화시장의 ‘레드오션’을 떠나
콘텐츠라는 ‘도구’에 집착하기보단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뿌리를 캐야
▣ 김우정/ 문화마케팅 프로덕션 풍류일가 대표 ceo@lutain.com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그러나 실상 문화라는 개념은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도대체 문화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문화의 세기는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대한민국 문화정책의 기준이 되는 참여정부의 문화비전은 영혼이 없는 발전에서 그 해답을 모색한다. 참여정부의 문화비전에는 ‘그동안 우리는 문화를 문화예술, 문화유산, 문화산업 등 특수한 영역으로 이해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협의의 개념하에서 문화는 전문가에게는 중요할지 몰라도 일반인의 삶과는 무관하거나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문화가 가지고 있는 광의의 개념이 중요해진다’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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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아웃' 문화 판 스타벅스
그렇다면 우리의 문화는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 것일까. ‘문화는 원초(原初)부터 유희되는 것이며, 유희 그 자체가 문화를 이루고 즐거움과 직접 참여라는 우리의 행동 양식을 결정한다’는 호이징가의 주장과 지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기 당시 ‘한국이 겪는 위기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내세울 만한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 상품이 없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기 소르망의 지적에서 언급되는 광의의 문화개념에 주목해야 한다. 참여정부에서 제시하는 광의의 문화는 삶의 양식으로 문화를 보는 관점으로 사실상 삶의 모든 측면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몇개의 특수한 영역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즉, 광의의 문화란 문화예술·문화유산, 문화산업·관광·체육·청소년·교육뿐만 아니라 보건복지·건설교통·환경·외교·경제 등의 문화적 측면을 포괄한다.
이런 광의의 문화개념은 경제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1987년 시애틀에서 6개의 매장으로 시작해서 현재 전세계 6천여개의 체인점을 보유한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는 문화를 파는 기업’이라고 정의한다. 스타벅스의 성공 열쇠는 바로 커피를 파는 기업을 넘어 ‘한잔의 이미지’와 ‘테이크 아웃(Take-Out) 문화’를 판다는 코드의 전환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껏 국내에서 주목한 문화시장은 콘텐츠가 지배했다. 어제의 한국 문화시장은 영화 한편의 성공을 자동차의 수출과 비교했고, 스타의 수출을 문화의 수출과 혼동했으며, 코드가 아닌 유행을 선점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문화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아직도 콘텐츠라는 ‘레드오션’(red ocean)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잔혹한 경쟁의 유혈바다’가 펼쳐지고 있다. 무엇이든 한번 뜨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아류작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1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이후 대작 뮤지컬 수입에 열을 올리고 ‘가족’을 내세운 영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개봉하는 것은 단적인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레드오션의 오래된 전략일 뿐이다. 문화시장의 블루오션은 문화코드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문화코드는 개인·기업·지역·국가의 경쟁력 원천이 물질·기술적 힘에서 점차 감성·문화적 힘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문화 콘텐츠가 감성을 표현하는 도구라면, 문화코드는 우리가 감성에 치우치는 현상 자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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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문화시장의 감성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코드를 이해하는 전략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코드라는 뿌리보다 콘텐츠라는 열매에 집착한 게 사실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익숙한 문화 마케팅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그동안 문화 마케팅은 문화 콘텐츠의 마케팅 활동과 기업경영의 문화예술 활용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단편적이었다. 붉은 악마가 보여준 ‘다이내믹’(Dynamic)이라는 문화코드와 한류열풍이 증명한 ‘열정과 예(禮)’라는 문화코드를 읽어내야 한다. 뮤지컬의 ‘Fun’과 사물놀이의 ‘Fun’의 차이를 알아야 하고, 연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변화와 혁신’이라는 문화코드를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문화코드를 활용한 마케팅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문화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미장센 영화제’같은 ‘컬덕트’ 필요
우리는 문화예술을 보고, 읽고, 즐기면서 감동이라는 코드를 경험한다. 콘텐츠는 코드가 집약된 결정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제는 콘텐츠에서 코드를 풀어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코드의 문화 마케팅이야말로 콘텐츠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며,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블루오션’(blue ocene)을 개척하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새로운 영역을 창출해 익숙한 전근대적 ‘성공도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영화제작자들이 스타들의 권력화 현상을 비판하면서 ‘표준제작규약’ 제정을 발표한 것도 영화계 ‘내분’이라기보다는 ‘관행의 타파’에 무게를 두고 싶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체화된 상품, ‘컬덕트’(Culduct: Culture + Product)를 내놓게 되길 기대한다.
아무리 거대 기업이라 해도 기술력과 정보력, 가격 등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기 힘든 시대다. 여기에선 기업들이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팔아야 한다. 당연히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 문화코드를 심는 문화융합 상품 컬덕트로 전환해야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상품에는 문화가 체화되기 마련이며, 모든 상품은 곧 문화체화 상품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관점으로 상품 개발의 문화체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실용성과 일본의 기능성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이념에서 서비스와 봉사라는 상품개발 요소를 찾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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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는 예술이고 예술은 비즈니스라는 앤디 워홀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는 오늘은 문화와 경제의 장벽이 사라지는 해체의 시대, 문화와 경제가 하나 되는 융합의 시대다. 우리는 문화기업이 되기 위해 문화상을 제정하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수집가들을 위해 ‘스페셜 에디션’(Special Edition)을 만든 몽블랑의 기업문화와 대한민국 단편영화제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태평양의 ‘미장센 영화제’를 기억하는 게 좋겠다. 미장센 영화제는 태평양의 토털 헤어 패션 브랜드 ‘미쟝센’이 후원하는 단편영화제로, 지난 6월29일까지 열린 올해 4회 대회는 ‘장르의 상상력’전을 주제로 60초의 창조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기업과 문화가 공생하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감성코드로 ‘상품=작품=명품’ 만든다
문화는 창의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는 다양해야 한다. 창의적인 콘텐츠에 보편성이라는 코드를 입히는 것이 컬덕트 개발의 핵심이다. 그렇게 개발된 상품은 관점의 스펙트럼에 따라 상품이라 부를 수도 있고 작품이라 부를 수도 있으며 명품이라는 브랜드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컬덕트란 기술과 품질보다 감성과 코드가 중요한 시대에 탄생하는 모든 상품인 동시에 문화의 감성코드가 더욱 중요한 의미로 기억되는 상품이라 정의 내릴 수 있다. 모두가 블루오션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개척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지키는 것이다. 최근 한 경제보고서에 제시된 ‘기술과 디자인은 모방 가능하지만 콘셉트와 아이디어는 모방 가능하지 않으며, 그 부분에서의 차별화가 진정한 차별화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야말로 문화시장의 블루오션을 찾기 위한 해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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