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영화] 배트맨, 햄릿 행세하네

등록 2005-07-07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박쥐옷을 입은 미치광이의 탄생을 사실주의로 위장한 <배트맨 비긴즈>
감독·각본가·배우 모두 시치미 떼고 심각해지니 ‘농담 없는 농담’이 아닌가
</font>

▣ 듀나 djuna01@empal.com

크리스토퍼 놀런의 <배트맨 비긴즈>에서 주인공 브루스 웨인(배트맨)을 연기한 크리스천 베일은 몇년 전 <유틀란트의 왕자>라는 영화의 주연을 맡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햄릿>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는 것이다. <유틀란트의 왕자>의 주인공 암렛은 셰익스피어 연구가들이 ‘원형 햄릿’이라고 부르는 인물이다. 덜 우유부단하고 더 실속 있는 복수자 왕자. 주저하다가 일을 망친 햄릿과는 달리 암렛은 결국 복수에 성공한다.

박쥐의 트라우마, 정확한 심리묘사

영화를 보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이 베일에게 <배트맨 비긴즈>의 브루스 웨인을 연기할 때 초기 모델이 되었다고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배트맨 비긴즈>는 일종의 <배트맨> 버전 햄릿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배트맨의 탄생을 다룬 이 영화에서 주인공 브루스 웨인이 상대하는 대상은 조커나 리들러 같은 미치광이 악당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물론 장래의 허수아비인 크레인 박사나 마피아인 카르미네 팔코네와 같은 악당들이 나와 배트맨과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진짜 드라마는 브루스 웨인의 머릿속에서 벌어진다. 부모를 잃은 철없는 소년이 엄청난 고뇌와 육체적 고통을 거치면서 서서히 자신과 세상을 통제하는 복수자 겸 수호자로 변해가는 것이다. 브루스 웨인이 햄릿보다 고생을 덜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햄릿보다는 운이 좋다. 자기가 직접 한 건 아니지만 부모에 대한 복수는 마무리됐고, 그 자신도 앞으로 자신에게 투자할 사명을 찾았으니.

그런데 웬 햄릿? <배트맨> 시리즈가 슈퍼맨과는 달리 컴컴한 구석도 있고 성인 분위기를 풍기는 구석도 있지만 햄릿은 좀 심하지 않은가? 결국 아무리 진지하게 생각해봐도, 이 이야기는 온갖 장난감들로 무장한 채 도시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박쥐 옷을 입은 미치광이에 대한 것이다. 결코 진지하게 다룰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IMAGE1%%]

하지만 감독 겸 공동 각본가인 놀런과 각본가 고여는 그 사실을 무시한다. 그들 역시 이 이야기가 진지한 사실주의 소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미치광이 박쥐 인간이 하늘을 누비는 동안 밑에서는 고대 밀교의 숭배자들이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진지해지는 쪽을 택한다. <배트맨 비긴즈>는 사실주의를 위장한 배트맨 영화이다. 그들은 ‘첫 편’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최대한의 사실주의로 배트맨의 탄생을 묘사한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은 상당히 정확한 심리묘사를 따른다. 배트맨의 무기인 배트모빌이나 아지트인 배트 케이브에 대해서도 완벽한 설명을 하고 있다. 영화에 따르면 배트모빌은 웨인 기업의 좌천된 천재 엔지니어 루시어스 폭스가 군용 프로토 타입으로 발명한 것이고, 배트 케이브는 저택 밑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기로 결정한 것도 이유가 있다. 박쥐와 관련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그 공포를 악당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나. 아마 후반부에 벌어지는 독가스 소동은 앞으로 나올 미치광이 악당들을 설명하기 위한 준비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런 핑계들이 다 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브루스 웨인은 그러는 동안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인물로 재탄생한다. 관객들은 영화 내내 그를 엄청나게 큰 고통을 받는 평범한 남자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영화는 브루스 웨인이 박쥐 인간이 되지 않아도 재미있다. 아니, 한술 더 떠서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이 되었을 때보다 자기 자신으로 행세할 때 더 재미가 있다. 배트맨으로 분장한 크리스천 베일은 인상적이긴 하지만 베일 특유의 원래 개성을 조금 잃는다. 날카로운 광대뼈의 선이 가면 때문에 사라져버리기 때문일까?

닌자의 기술 있어도 두드려맞고…

영화는 그러는 동안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기도 한다. 팀 버튼이나 조엘 슈마허의 영화 속에서 배트맨은 실제 세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무대 세트와도 같은 도시에서 현실성 없는 악당들과 추상적인 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은 스파이더맨처럼 현실 세계로 내려왔다. 그는 실제로 존재할 법한 현대 도시에서 보통 인간처럼 악당들과 싸운다. 물론 히말라야의 닌자들에게서 전수받은 기법들이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제한은 여전히 남는다. 그 때문에 그는 종종 이전의 선배들은 겪지 않았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들과 마주친다. 그는 악당들에게 얻어맞고 미친 군중 속에서 길을 잃고 사고로 불에 탈 뻔하기까지 한다.

질문은 남는다. 이 ‘사실성’은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과연 놀런과 고여는 배트맨이라는 설정을 진지하게 다루긴 하고 있는 걸까? 보고 있으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이 영화에 의도한 농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는가? 브루스 웨인이 바람둥이로 위장하기 위해 어설프게 농담들을 던지긴 하지만 그게 거의 전부다. 웨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배트맨에 대해 굉장히 심각하다. 웃기는 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농담처럼 보인다는 것이지만. 절대로 웃지 않는 코미디언처럼 말이다.

정답은 이 영화가 일종의 반전도형이라는 것이다. 진지하고 심각한 복수극과 포스트모던한 장르 농담들은 <배트맨 비긴즈>라는 영화에 모두 딱 들어맞는다. 이 두 가지 성격은 서로와 모순되면서도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기 때문에 <배트맨 비긴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중적 의미를 띠게 된다. 생각해보니 배트맨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에서 이런 이중성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가면 쓴 미치광이를 다룬 드라마라면 당연히 이 정도의 이중성은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