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봄의 언어로 돌아온 루시드 폴 2집 <오! 사랑>… 개인주의자의 감수성을 확인하다</font>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조윤석(31)의 원맨 가요 밴드 루시드 폴(Lucid fall)의 1집(2001)이 단순한 포크였다면 그토록 자주 찾지 않았을 것이다. 강변 야유회의 통기타처럼 모닥불 정서를 피우고 말거나, 수북한 낙엽더미처럼 쓸쓸함을 단순하게 드러낼 뿐이었다면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font color="6633cc"> 긴긴 밤 몰아세우며 달려가는 기차의 검은 빛,
창밖으로 흔적뿐인 바람 부네, 가난한 고향 하늘
너를 처음 본 그곳에선 하늘도 여름 바다도 나를
반기지 않네.(<풍경은 언제나> 중) </font>
위로의 정서, 80년대 ‘어떤 날’과 닿아
일주일간 누적된 노동의 피로와 사교 생활의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일요일 오전. 반평의 차가운 이불 안에서 체온에 의지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이 시간에 손이 더듬더듬 찾게 되는 음반, 그것이 루시드 폴 1집이다.
이 위로는 조동익·이병우가 함께했던 ‘어떤 날’의 1, 2집이 주던 것과 비슷한 종류다. 80년대에 남겨진 명반엔 모던한 포크가 담겨 있었고, 적극적이고 자극적이진 않지만 바보가 아닌 이 음악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으며, 이런 면에서 루시드 폴은 ‘어떤 날’에 닿아 있다.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에 놓고 전자음으로, 다른 악기로 세계를 확장한 루시드 폴의 실험은 보편적이되 진부하지 않은 감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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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6633cc"> 오후만 있던 일요일, 눈을 뜨고 하늘 보니 작은
회색 구름이 나를 부르고 있네, 생각 없이 걷던 길
옆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하얀
강아지, 이유 없이 달아났네.
(<어떤 날> 1집 수록 <오후만 있던 일요일> 중) </font>
그 뒤 루시드 폴은 영화 <버스, 정류장>의 음악감독이 되어 O.S.T(2002)를 내놓는다. 1집이 한 사람의 혼잣말이었다면, 여기엔 두 사람의 혼잣말이 담겨 있다. 자폐적인 서른두살의 학원강사 재섭과 원조교제, 임신의 상처를 안고 사는 여고생 소희의 사랑을 놓고 관계를 묵상하는 이 음반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지만 관계의 진전을 위해 무언가를 특별히 할 수 없는 두 남녀의 연약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font color="6633cc"> 언제부턴가 다르게 들려, 언제부턴가 다르게만 보여,
혼자 끓인 라면처럼, 혼자 마시던 쓴 소주처럼,
이젠 내 입가에 머무네.(<머물다>(재섭 테마) 중) </font>
그리고 3년이 지났고, 그동안 조윤석은 꽤 먼 곳으로 떠나 있었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스웨덴을 거쳐 스위스에 머물며 생명공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틈틈이 쓴 곡을 들고 한국으로 와 녹음을 하고는 3월 말 2집을 어렵게 내놨고, 그의 이름만 보고도 음반을 선뜻 구매할 팬들이 많았던지 온라인 CD몰 등을 통해 지금도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다.
유학 생활이 외로웠던 걸까. 2집엔 외로움을 표현하는 부드러운 단어들이 항그시 고여 있다. 사랑, 꽃, 꿈, 물. 조용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어떤 팬은 “가사가 1+1=2라는 사실만을 말하고 말았다”고 아쉬워하고, 어떤 팬은 “포크라도 재즈 코드를 쓴 것처럼 멜로디 라인이 독특하게 살아 있었는데 약해진 거 같다”고 섭섭해한다.
<font color="6633cc"> 귀를 찌르는 공장의 소리, 덜컹이는 지게차 소리,
변한 게 없는 빈한함 속에 주문을 외우듯 난 너를
부르네, 나의 꽃이여(<꽃>중) </font>
하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한 조윤석의 음악작업에 대한 애정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1998년 그는 밴드 ‘미선이’의 이름으로 최고의 인디음반 중 하나인 <drifting>을 내놓았다. 여기서 그는 개인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토로하는 방식이 다르게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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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타이머>가 보여준 사회적 감수성
1990년대에 들어 비행기보다 빠르게 변하기 시작하던 세상, 하지만 4월과 5월이 되면 여전히 마르지 못한 피의 기억은 재생됐고, 대중문화와 인디문화, 민중문화 등으로 균열된 문화 지형은 서로 혼란스러워하면서 멀어져갔다. 그렇게 허둥거릴 때 미선이의 <진달래 타이머>는 민중문화의 집단성과 구별되는 개인주의자의 사회적 감수성을 말하고 있었다.
<font color="6633cc"> 다시 진달래 피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을
타고, 개 같은 세상에 너무 정직하게 꽃이 피네,
꽃이 지네, 올해도. …해마다 봄이 오면 나는 꿈을
꾸네 눈물 없는 이 세상을, 하지만 언젠가 나는 노래하네
슬픔 없는 진달래 피는 봄에.(<진달래 타이머> 중) </font>
그리고, 이 감성은 꽃과 풀을 노래하는 지금의 루시드 폴에게도 여전히 기대되기에 우리는 그의 작업을 좀더 지켜보게 된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font class="f9black">
“절실한 게 달라졌을 뿐”</font>
부산 말투가 묻어 있는 청년의 말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4월 초 2집 홍보·공연 스케줄을 소화하고 스위스로 돌아갔던 조윤석씨는 4월 말 한국방송 <윤도현의 러브레터> 출연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 이 틈을 타 그를 만나봤다.
<font color="663300"> 유학생활이 힘들 텐데, 왜 굳이 지금 음반을 냈나.</font>
곡이 모였고,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혀지기도 싫고. ‘언니네 이발관’이 몇년 만에 재기해서 사랑받는 걸 보고 질투가 났다. ‘나도 기다리는 팬이 있는데, 공연하고 싶은데’라는 생각들 말이다.
<font color="663300"> 갑자기 밝아졌다, 밋밋하다는 비판이 있다.</font>
수록곡 <꽃>은 <버스, 정류장> 작업 전인 2001년에 건반악기를 처음 사고 만든 노래다. 이때가 하나의 기점이 아니었을까. 사실 1집은 몽땅 실연의 아픔 얘기다. 하지만 절실한 대상은 달라졌고, 나는 더 이상 그때의 내가 될 수 없다. 또 가사에 클리셰가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어 좀더 생각해보려 한다.
<font color="663300"> 유희열씨가 운영하는 ‘토이뮤직’으로 옮긴 영향도 있지 않을까.</font>
희열이형은 그저 데모테이프를 듣고 ‘좋다’고 말하지 직접 지시를 하지 않는다. 프로 뮤지션들은 각자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상대를 평하지 않는다. 1집 때와 시스템도 동일하고, 단지 조금 더 좋은 스튜디오와 세션을 구한 거다.
<font color="663300"> 김광민 등 일급 세션의 참여가 마이너스가 됐다는 말이 있다.</font>
김광민씨 피아노 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무조건 같이 작업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션을 안 하시는 걸 알면서도 “안 되면 내가 피아노 친다”며 소속사를 협박했다. 간신히 성사시켰고, 결과는 대만족이다. 5곡 전부 부탁하기 어려워 2곡은 희열이형 도움을 받았다. 그래도 항시 음악감독의 몫은 내게 있다.
<font color="663300"> 뜬금없는데, 당신의 키워드로 ‘개인주의자’는 어떤가.</font>
글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난 항상 혼자였다. 문제의식이 있어 고민해도 어느 커뮤니티에도 들지 못했다. 민중노래패의 강요하는 문화는 잘 안 맞았고, 홍대 붐 때도 ‘미선이’는 네트워크가 없는 별종이었다. <버스, 정류장> 작업 땐 경기도 안성의 화학공장에서 방위산업체 근무 중이었고.
<font color="663300"> 미선이 시절엔 <치질> 등에서 꽤 재미있게 사회 비판을 했다.</font>
난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다. 중학교 때도 독서실에서 총선·대선 라디오 방송을 챙겨들었다. 정치는 사람 사는 데서 많은 걸 규정한다. 예민해서 느끼지 못할 뿐. <치질> <진달래 타이머> 같은 노래가 다시 나올 수도 있다.
그는 4월26일 방송 녹화를 마치고 다음날 스위스로 출국했다. 정신이 없어 자신의 음반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했다며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하면서 녹음장비 세팅을 마친 뒤 다음 앨범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말을 남겼다.
</drif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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