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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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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보수의 변명

등록 2005-04-07 00:00 수정 2020-05-03 04:24

보수주의자 논객들의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는 <한국의 보수…>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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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위기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적대세력’의 음해가 아니라 보수 진영 내부로부터 퍼져나오고 있는 구호다. 그런데 사실, ‘보수의 위기’는 엄살이다. 두번의 대선과 한번의 총선 패배가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굳어져온 권력 구조를 뒤엎을 리는 만무하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은 아직도 그들이 주창한 이념을 기반으로 ‘잘’ 굴러가고 있다. 어쨌든, 위기의 담론으로 보수가 (지난 총선의 광고처럼)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며 혁신을 촉구하고 있다는 것은 꽤 근사해 보인다. ‘보수주의자의 보수 비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한국의 보수를 論한다>(바오 펴냄)는 복거일, 원희룡, 이한우, 함재봉 등에게 “보수의 철저한 자기 반성과 성찰”을 주문하는, 일견 야심 찬 기획이다.

머리말은 시원시원하다. 그동안 한국 보수 진영에 쏟아졌던 외부의 비판을 가감 없이 껴안고 있다. 이 글은 한국의 보수세력이 과거의 냉전적 사고와 분열주의적 편견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로 거듭나야 하며, 극우세력이 더 이상 보수의 대변자인 양 보수를 참칭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일갈한다. 또 박정희 개발독재의 잔영을 걷어내라고 촉구하기도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본문에 실린 보수 논객들의 글은 비판이라기보다는 ‘변명’에 가깝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는 ‘새로운 비전’은 솔직하고 단호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총론 격인 박효종 교수의 다소 산만한 글은 ‘거꾸로 읽기’가 유행하는 시대에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죄, 과거의 추억과 향수를 살리지 못한 죄,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한 죄, 특권 오·남용의 죄 등 보수주의자들의 칠거지악을 지적하고 있다. 날카로운 부분도 있지만 보수의 실패를 개인 윤리적 차원으로 환원하고 만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정치적 보수주의자의 실패는 ‘감동의 이벤트’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은 좀 ‘놀랍다’. 따라서 보수의 비전도 보수주의자들의 ‘자기 초월’이라는 막연한 대안에 그치고 만다. 복거일씨는 보수가 부진한 첫 번째 이유로 현존하는 체제를 지지하고 변호하는 일은 어느 사회에서나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다분히 ‘철학적인’ 논거를 든다. 원희룡 의원은 진보 진영의 역사 인식을 비판한 뒤, 한나라당의 전술적인 변화에 글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의 글은 시장경제에 대한 원칙적인 옹호가 지금 보수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는 시장경제라는 ‘절대선’을 키워드로 진보가 퇴보임을 입증하기 위해 애를 쓰고, 개방과 경쟁의 원리에 맞지 않는 보수를 비판한다. ‘젊은 보수’ 정성환씨의 글만이 매우 예리하고 신랄하게 보수의 문제를 파헤치고 있지만, 그가 보수 진영 내에서 담론을 생산하고 있는 ‘진짜’ 보수주의자인지가 의아하다.

책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논자들마다 민족주의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진보뿐 아니라 보수 진영에서도 민족주의는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보수 내부의 보수에 대한 통렬한 비판보다는 보수의 다양한 관점을 일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보수는 왜 위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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