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의 법적대응에 반발하는 온라인 동영상 공유 그룹… “인터넷 환경에 맞는 유통 · 법규 필요” 주장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한류(韓流) 열풍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HOT·NRG·베이비복스·안재욱 등이 중국에 진출하기 전부터 에서 시작해 등의 드라마를 아시아권에 개인적으로 알리며 한류의 토대를 닦은 사람들이 있었다.” 최근 ‘불법 동영상’을 공유하는 네티즌에 대한 법적 대응이 잇따르는 사태를 바라보는 김아무개(39)씨의 심정은 ‘억울’하기만 하다. 그는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를 세계 각국의 ‘릴리즈그룹’(Release Group·이하 릴그룹)에 전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한류 열풍이 싹튼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범법자’일 뿐이다. 밤잠을 설쳐가며 인터넷을 통한 ‘문화 교류’에 헌신했다는 것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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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신념에 따른다면 한류 열풍은 신기술의 빛나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지구촌 어느 누구와도 네트워크를 통해 대용량의 파일을 주고받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주로 파일을 업로드 혹은 다운로드가 가능한 파일전송프로토콜(FTP) 서버를 통해 이뤄졌다. 온갖 ‘해적판’이 네트워크를 장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씨는 릴그룹 활동을 하면서 미국이나 일본, 대만 등지의 ‘동지’들을 만났다. 외국의 동지들은 국내에 개봉되지 않은 영화를 인터넷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그는 국내 드라마를 보내주면서 ‘동지애’를 쌓았다. 사실 그가 드라마 한편을 공유파일로 만드는 것은 시간싸움이었다.
“한류 열풍 토대, 우리가 닦았다”
김씨처럼 릴그룹 활동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개인들이 배포한 것보다 훨씬 품질이 좋은 파일을 만드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영화를 배포할 때는 최대한 압축하기 위해 디빅로 인코딩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만든 디빅파일은 2시간짜리 4기가 이상의 DVD를 700MB 안팎으로 줄이고 5.1채널 음향 규격에 따라 입체음향을 새길 수도 있다. 때로는 DVD가 시판되기 전에 공유파일이 나돌기도 한다. 영화 필름을 DVD로 인코딩하는 곳에서 일하는 릴그룹 멤버가 자료를 ‘빼돌려’ 삽시간에 국내외에 퍼뜨리기 때문이다. 이런 공유파일은 통상 ‘DVD-SCREENER’라 불리는데, 이로 인해 영화제작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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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인터넷은 놀라운 기술의 진보에 따라 저작권료의 ‘굴레’를 손쉽게 벗어났다. 초고속 인터넷은 그것이 문제였다. 창조적 고뇌의 대가를 사수하려는 저작권자들이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유통·교환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것을 내버려둘 리 없었다. 미국의 거대 영화제작사들은 잇따라 법정에 도움을 요청해 릴그룹을 비롯한 파일 공유 집단을 옥죄었다. 단 한개의 음악파일만 공유해도 저작권법 위반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심지어 파일 공유 시스템으로 불법적으로 다운로드 받은 사람의 컴퓨터를 인터넷을 통해 파괴하려는 기술적 대응 방안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파일 공유 관행에 철퇴를 가하려는 움직임이 강력해지자 김씨의 릴그룹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영화 공유파일 다운로드는 동호회 카페나 와레즈(Warez) 사이트, FTP를 이용한 웹하드 방식을 통해 이뤄졌다. 여기에 개인간 파일 공유(P2P·Peer to Peer)가 일반화되면서 ‘불법 영상물 유포행위’는 김씨를 비롯한 릴그룹 활동자의 범위를 뛰어넘었다. 한국영상협회(대표 박영삼)를 대신하는 법무법인 ‘동녘’의 고발에 따라 누구나 처벌받을 수 있다. 온라인 리서치업체 엠브레인이 지난 6월에 실시한 ‘P2P 서비스 이용 형태’ 조사에서 응답자의 79.5%가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P2P 이용자들이 공유하는 것은 음악파일(46%), 영화파일(28.1%), 프로그램(14.2%), 문서(8.1%) 등이었다. 저작권 위반으로 법적인 처벌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대부분 일반 P2P 이용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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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화사 피해액 2천억원 추정
인터넷 파일 공유가 영화산업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보고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영상협회가 발표한 온라인 불법 복제 단속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모두 6만5454건을 단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87%나 증가한 수치다. 이 협회는 지난해 영화파일 공유로 인한 피해액이 국내 영화사 수익의 절반을 웃도는 2천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영화제작사와 배급사의 고민이 깊어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난 6월16일 개봉한 영화 를 들여온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극장 매출액의 20~30%를 파일공유로 날릴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영화협회는 한술 더 떠 한국을 ‘해적판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한국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영화사들로선 독자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 영화사들은 영화 공유파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법적인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3월 태원엔터테인먼트 한맥영화 등 6개 영화사는 자신들의 저작물이 인터넷에 무단으로 복제 배포되는 것을 막겠다며 법무법인 동녘에 법적 대응을 맡겼다. 물론 영화파일 공유의 근원지라 할 수 있는 릴그룹을 건드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김씨처럼 최상위 릴그룹에 속한 사람이라면 같은 그룹명을 사용해도 온라인에서 닉네임을 사용해 만날 뿐이다. 파일 공유의 뿌리에 다가서지 못하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은 단순 이용자들을 토끼몰이식으로 단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영화사들은 동녘을 통해 저작권법 위반을 들어 합의금(성인 50만원, 대학생 30만원, 미성년자 10만원)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형사고발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사설 온라인 감시업체인 소프트세이브 등에 파일 공유 단속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P2P 서비스나 웹하드로 파일 공유를 시도한 사람들은 동녘에 합의금을 내거나 약식 명령 청구 통지서를 받아들고 경찰에 출두해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까지 벌금을 내고 있다. 다음카페 ‘동녘탄핵모임’ 특별회원인 송희석씨(인하대 법학부 3년)는 “P2P상에서 업로드하는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좋은 영화를 다른 사람과 더불어 보려고 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있을 수 있는 과실을 미필적 고의로 처벌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화파일 공유는 영화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것일까. 영화사들로서 손해가 눈에 보이는 게 사실이다. 영화 관객 수에서도 누수가 확실하고 DVD나 비디오테이프 판매도 줄어들 게 뻔하다. 하지만 릴그룹에서 활동하며 여러 나라 사람들과 디빅파일을 수시로 교환하는 김씨로서는 영화사들의 엄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파일 공유는 영화를 홍보하는 기능도 하는 게 사실이다. 타이 액션영화 는 지난해 봄부터 디빅파일로 인터넷에 떠돌았다. 당시부터 웬만한 사람은 봤지만 지난 5월에 개봉해 극장에서 선전했고, 최근 비디오 대여 순위에서 의 뒤를 잇고 있다. 미국에서 개봉해 흥행 여부가 판가름난 영화를 들여와 국내 시장에서 날로 먹으려는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의 ‘시간차 개봉’은 아날로그 시대의 관행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세대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시사회가 열리기도 전에 여러 버전의 디빅파일이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소통이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국내 개봉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오는 8월20일 개봉을 앞두고 있고 마이크 미뇰라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Hellboy)만 해도 그렇다. 이미 지난 4월 미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첫주에 2300만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며 박스오피스 수위에 올랐다. 그런 영화의 국내 개봉을 무려 5개월이나 기다리기는 쉽지 않다. 이 영화는 이나 등의 디빅파일명으로 P2P 서비스나 웹스토리지, 웹디스크 서비스 업체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디빅파일은 하루에도 10여편 이상씩 만들어진다. 김씨에 따르면 한번 만들어진 디빅파일이 전세계에 유포되는 것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지적재산권 공유 운동이라 여긴다면 대단한 성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유포된다면 영상산업의 자리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무리 국내 릴그룹들이 한국 영화의 디빅파일 전환을 시도하지 않더라도 한류 열풍이 몰아치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다국적 자본이 참여해 만든 영화 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개봉 즈음에 중국어 더빙 혹은 중국어 자막 버전이 널리 유포됐다. 중국의 극장에서 방송용 카메라로 영화를 송두리째 담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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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거미줄, 막을 수 없다
지금 영상업계는 파일 공유를 오프라인 법제로 막으려고 한다. 음반업계의 법정 소송보다도 절박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미 작곡되고 연주된 ‘오래된’ 음악을 보호받으려는 음반업계와 달리 영상업계는 새로운 상품의 ‘미래가치’마저 보호받을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오프라인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도리어 혼란을 부추길 뿐이라고 김씨는 지적한다.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토끼몰이식 단속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기술 발달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문화현상을 가로막아도 그 틈새는 열려 있게 마련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에 걸맞은 법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일단은 네티즌들의 저작권 보호에 대한 자발적 노력을 촉구하고 디빅파일의 공유가 이뤄질 수 있는 합법적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디지털 콘텐츠는 공짜라는 인식을 바꾸는 게 옳다. 다만, 디빅파일이 널리 유포될 수 있는 초고속 인터넷 환경에 어울리는 유통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디빅 플레이어까지 판매된다면 디빅파일에 따라붙는 ‘불법’이라는 낙인을 떼도록 해야 한다. 일단 음악파일 유료화를 선언한 벅스뮤직처럼 온라인상에서 디빅파일을 거래할 서비스 업체를 두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영화 개봉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P2P로 공유를 허용할 수도 있다.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DVD와 비디오테이프 판매 수익은 새로운 시장이 떠안으면 된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논란이 많겠지만 풀지 못할 일도 아니다. 돌아서는 김씨의 마지막 한마디. “불법 공유를 법이 아니라 핑거프린팅 같은 기술적인 방법으로 차단할 수도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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