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허구성 무너뜨리는 재미난 패러디동화… 씩씩한 여성주의 · 섬뜩한 성인용 등 각양각색 인기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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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의 열기가 ‘겁나게’ 뜨겁다. 2004년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미대륙을 달궜던 는 우리나라에서도 6월18일 개봉 이후 250만여명을 끌어모으고 있다. 2001년 에 250만명 관객이 들기까지 한달이 걸렸던 것과 비교해본다면 는 두배가량 빠른 속도로 관객을 흡입하고 있는 셈이다.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쪽은 “, 등 경쟁작이 잇따라 개봉하면 뒷심은 약해지겠지만 초등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는 7월 말까지는 안정권에 들 것”이라며 400만명 정도를 내다봤다.
슈렉의 인기비결은 입냄새?
본래 원작 동화 (윌리엄 스타이그 지음, 비룡소 펴냄)은 혐오스러운 외모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인생을 즐기는 괴물의 이야기다. 방귀, 똥, 오줌 등을 지저분한 것으로 학습받기 이전, 이런 배설물들에 묘하게 열광하는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슈렉은 역겨운 입냄새를 풍기며 괴물처럼 생긴 공주와 사랑을 나눈다. 애니메이션으로 태어난 은 이 자신감 넘치는 괴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선남선녀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전래동화의 공식 문법을 철저히 배반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1편에서 이미 확보된 ‘대안적 스토리’의 공간에서 훨씬 여유로운 자세로 능청을 떨며 자본주의를 풍자한다. 피오나 공주의 친정인 ‘겁나먼 왕국’의 번화가 이름은 LA로데오 거리를 빗댄 ‘로메오 거리’. 이곳엔 ‘아베크롬비&위치’(본래는 아베크롬비&피치), ‘베르사체리‘(베르사체), ‘배스킨 로빈후드’(배스킨 라빈스), ‘타워 오브 런던 레코드’(타워 레코드), ‘파벅스’(스타벅스), ‘버거 프린스’(버거킹) 등 짝퉁 브랜드가 가득하다. 다른 동화에서라면 재투성이 아가씨 같은 꼬질꼬질한 처녀도 단박에 귀족 처녀처럼 꾸며 무도회에 보내주던 요정 대모가 이 영화에선 명품 드레스와 구두, 화장품으로 자신을 확 바꾸라고 꼬드기는 소비주의의 화신으로 바뀌었다.
어릴 적부터 익숙한 이야기를 뒤집고 그 허구성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묘한 쾌감을 준다. 가 ‘디즈니 명작선’에 실려 수십년 동안 줄기차게 팔리는 것과 다른 맥락에서, 백설공주의 기존 이미지를 부수고 흩어놓으려는 시도 또한 계속됐다. 서구에선 68혁명을 거치면서 민권·여성운동의 성장과 함께 차별과 편견에 가득 찬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바꾸자는 흐름이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사랑이 전부인 나는 여자이니까…’와 같은 수동적 여성의 이미지를 모험심이 강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바꾸었고, 잔인한 계모와 흉악한 마녀를 현명한 여성으로 탈바꿈했으며 유색인종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디즈니조차도 이런 흐름에서 영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마다 인류학자·여성학자를 고용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줄거리와 표현들은 바로잡도록 하고 있다.
착한 계모, 성전환 알라딘… 정치적 올바름
우리나라에선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동화 다시보기 붐이 불었다. 1996년 제임스 핀 가너의 책을 번역한 (실천문학사 펴냄) 연작은 패러디 동화의 첫 삽은 떴되, “너무 앞지른 기획력 탓인지” 절판되고 말았다. 반면 뒤이어 나온 (바바라 G. 워커 지음, 박혜란 옮김, 뜨인돌 펴냄)은 1998년 출간 당시 한동안 ‘외국어 소설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누렸다. 이 책은 지금까지 8만여권이 팔렸다. 14명의 동화 주인공을 새롭게 각색한 이 책에선 요술램프를 발견한 알라딘을 여자로 성전환한 ‘트랜스’로 설정하는가 하면, 백설공주를 미워하는 계모 왕비를 딸의 목숨을 구해주는 따뜻하고 이성적인 여성으로 그렸다. 가만히 누워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라는 설정을 비꼰 (로버트 문치 지음, 김태희 옮김, 비룡소 펴냄)에선 용의 습격으로 성이 불타고 왕자도 납치되고 입을 옷도 없자, 공주가 종이봉지를 맨몸에 걸치고 용을 잡으러 나선다. 하지만 기껏 목숨을 구해준 왕자가 고마워하기는커녕 공주의 초라한 모습을 비난하자, 공주는 ‘네깟 놈 필요 없어’라고 말하며 미련 없이 훌훌 떠난다. (이프 펴냄)를 쓴 동화연구가 심혜련씨는 “아이들 입에서 ‘결혼하면 여자는 집에 있어야죠’ 따위의 구태의연한 말이 튀어나올 때마다 성역할을 편견에 찬 방식으로 고정하는 동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왔다”며 “아무런 생각 없이 책 읽히는 것에 급급해하기보다는 아이들의 관점 형성에 도움이 되는 책을 선별해주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서양 동화에선 이혼, 인종 문제는 물론 동성애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아이들은 제 나름의 능력대로 복잡한 문제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답게 포장된 가벼운 이야기만 읽히지 말라”고 충고한다.
여성주의 동화와 또 다른 흐름으로, ‘어른들을 위한’ 성인용 동화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동화들은 근대 동화로 매끄럽게 다듬어지기 이전 원작에 남아 있던 인간들의 탐욕과 잔인함, 시대의 비참함의 흔적을 찾아보자는 취지를 지닌다. 1999년 번역돼 30만여권이 팔린 (키류 미사오 지음, 이정환 옮김, 서울문화사)는 아예 빨간딱지(19세 미만 구독불가)가 붙어 있다. 이 책에선 백설공주-왕비의 갈등을 근친상간에서 비롯된 질투로 풀이한다. 또한 독사과를 먹고 주검처럼 누워 있는 백설공주에게 반한 이웃나라 왕자를 아예 ‘시체 애호가’로 묘사한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방 안에 관을 들여놓고 사냥을 갈 때도 짊어지고 가게 하는 왕자의 강박증에는 분명 기묘한 섬뜩함이 있다. 그림형제가 초판에서 친어머니로 설정된 백설공주의 엄마가 딸의 선홍색 장기를 씹어먹는 것으로 묘사했던 장면도 무시무시하다. 신데렐라에서 구두가 맞지 않는다고 딸의 발가락과 뒤꿈치를 베어내고 억지로 구두를 신기는 모습 또한 ‘어린이’와는 거리가 멀다.
한편으론 동화의 가벼운 줄거리를 살려 대인관계, 심리학, 경영학을 풀어내는 시도도 있다. (웬디 패리스 지음, 변용란 옮김, 명진출판),
‘반전’을 녹인 그림형제 이야기는 어떨까
최근 출판된 패러디 동화 중엔 독일 작가 야노쉬의 그림동화 다시 읽기 (이레)가 돋보인다. 그림형제의 동화를 21세기적 맥락에서 각색한 이 책에는 이주노동자, 반전 등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예를 들어 ‘브레멘의 음악대’에선 인간에게 괄시받는 동물들을 외국인 노동자로 그려놓았다. 본래 나폴리가 고향인 당나귀가 고용허가증이 없다는 이유로 직장을 찾지 못해 홈리스로 굶어죽을 뻔하다가 비슷한 처지의 동물들과 모여 음반을 내고 빅히트를 치게 된다는 스토리다. 그런가 하면 ‘장화 신은 고양이’는 주인공에게 부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대신, 세상의 부와 행복이 얼마나 헛된가를 깨우쳐준다. 한꺼번에 파리 7마리를 잡은 소심한 재봉사가 결국엔 공주와 나라를 얻게 된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는 재봉사가 점점 더 강한 무기를 원하다가 결국엔 전쟁광이 된다는 씁쓸한 이야기로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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