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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카메라, 무슨 생각에 잠겼니

등록 2004-07-01 00:00 수정 2020-05-03 04:23

사진작가 9인의 ‘사진예술-ART in PHOTOGRAPHY’전… 단순한 사실 재현을 넘은 ‘사유’의 미학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아바타’ 연작에 몰두하고 있는 화가 홍성담씨는 지난해 11월 뉴욕 퀸스미술관에서 열린 ‘동쪽의 물결’이란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광주민중항쟁을 조망하는 판화와 회화, 설치미술 등 84점을 선보이며 미국 현대미술의 경향을 살펴보려고 미술관을 순례했다. 그런데 뉴욕에 있는 유명 미술관의 기획전에 선보인 작품은 회화나 조각 등 기존의 장르가 아니었다. 바로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가 살피려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사진이 대변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사진 찍는 것을 주류 ‘예술활동’으로 여기게 됐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총아가 되다

더 이상 사진이 미술의 변방이 아니라는 사실은 세계적인 미술제와 기획전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사진은 전체 미술 장르의 30%를 웃돌고, 거래되는 미술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야흐로 사진예술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예술가 지망생이라면 캔버스와 붓을 챙기기보다는 카메라 셔터에 익숙해지는 게 나을지 모른다. 사진은 신비로운 효과를 내는 데 유리해 현대미술의 총아로 떠오를 수 있었다. 여기엔 카메라에 ‘내장’된 장르 흡수성도 한몫했다. 기술의 복합체인 카메라가 다양한 표현을 이뤄내고 다른 예술 장르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색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누구나 인터넷에서 자신만의 사진 전시장을 마련할 수 있다. 비단 ‘싸이질’하는 네티즌이 아니라 해도 사진으로 말하려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흔하다. 그만큼 세상을 향한 카메라 렌즈가 대중화된 셈이다. 물론 도처에 깔려 있는 사진들이 미술시장에서 대접받는 것도 아니다. 사진의 매력을 예술로 승화하려는 사람들의 창조적 고뇌가 스며 있게 마련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진을 각자의 예술세계로 끌어들인 사람들이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와 가나포럼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사진예술-ART in PHOTOGRAPHY’(6월29~8월29일)는 지명도 있는 작가들의 최근작을 통해 현대 예술사진을 만끽할 만한 전시다.

지난 2001년부터 시작하여 네 번째로 열리는 이번 ‘포토페스티벌’에서는 독자적인 사진예술의 영역을 확보한 9인의 사진작가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엔 한국의 아타·정재규·고명근·이정진씨를 비롯해 베른트 & 힐라 베허·칸디다 회퍼·토마스 슈트루트(독일), 빅 뮤니츠(브라질), 히로시 수기모토(일본)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세계 미술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작가들로 꼽힌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윤옥영 큐레이터는 “사진이라는 동일한 영역 안에서 카메라를 이용하고 이미지를 생산하는 방식이 독특한 작가들이 참여했다. 사진예술의 다양한 흐름을 엿보며 사진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사진예술은 렌즈에 잡힌 찰나의 순간으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주변 상황이 완벽하게 구성되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회적 순간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위해 작가들은 내적 관찰을 통해 생성의 징후를 포착해 이를 시각화한다. 단순히 찍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려 하는 것이다. 예술로서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일상적인 대상의 외관이나 장면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거기엔 ‘느낌’이 새겨져 있다. 마치 연극이 끝난 뒤 관객의 감각 세포를 자극하는 ‘여운’처럼 무엇인가를 유발하는 ‘감각의 뇌관’이 숨어 있다.

붓질, 입체 콜라주… 사진-미술 경계 흔들

우리를 감동시키는 사진은 어떻게 탄생되는 것일까. 칸디다 회퍼의 에서 감동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의 사진은 장소의 재현, 기록에 가깝다. 그는 1970년대부터 유럽 전역의 미술관이나 도서관, 회의장, 대기실 등의 내부를 기록하고 있다. 제한적인 시야를 가진 작은 휴대용 카메라로 공간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냉정하기 그지없다. 역사적 의미를 갖는 상징적 공간을 재현한 사진은 지극히 단조롭다.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해 도그마에 빠질 수 있는 암시적 요소를 따돌린 그의 앵글은 관찰자를 숨기고 개성 없는 공간만 드러낸다. 바로 그것이 그만의 독자적 사실주의로서 우리의 심연에서 잊혀진 애수와 회한을 자극한다.

최근의 사진예술은 대상의 시각적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을 하는 정재규씨의 작품은 촬영을 위한 ‘사진적 순간’과 필묵을 위한 ‘붓질의 순간’을 교차한다. 우연히 발견한 누런 대형 포장종이를 바탕지로 선택하고 잘게 썬 사진 이미지들의 ‘올짜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올짜기는 과거의 흔적과 현재적 실물의 반복적 교차를 이뤄내며 마지막의 붓질로 완성된다. 사진적 순간에 붓질이 덧씌워지면서 일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진과 미술의 경계를 말하는 것은 어설픈 구별짓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보자. 대상을 재현하는 것만이 사진일까. 그것이 사진의 정의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사진이 이차원적이라는 오래된 상식도 무너지고 있다. 촬영과 콜라주, 입체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고명근씨의 작품은 입체적 조형물로 손색 없는 사진을 보여준다. 그 안에는 우리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오래된 건축 재료들이 아름답게 살아 숨쉬기까지 한다. 히로시 수기모토의 사진은 대상을 카메라 렌즈로 여과한 듯 하다. 그의 건축물을 찍을 때 아웃 포커스를 이용한다. 이를 통해 건축가가 건물을 올리기 전에 구상했던 다양한 형태를 재창조하면서 기억과 현실을 충돌시키는 것이다.

이제 예술로서의 사진은 프레임 너머의 세계를 응시하고 있다. 사진이 재현의 미학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유의 재현에까지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미학적 가치가 탄생한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가 보았던 사물이 사진 속에서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일단 그 신비한 사진의 재탄생을 즐겨볼 만 하다. 세계적으로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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