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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 행패의 자유?

등록 2000-11-09 00:00 수정 2020-05-02 04:21

김대중 정부의 언론정책은 ‘무대책’…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도 방관만

“지금의 언론자유는 언론 ‘행패’의 자유로 변질되고 있다. 현 정부의 언론 자율정책은 편파적이고 독점화된 언론현실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성균관대 신문방송학 방정배 교수)

김대중 정부의 언론정책은 ‘무대책’이란 말로 집약된다. 특히 지난 4월7일 신문의 날 김 대통령이 “언론개혁은 언론 스스로가 할 일이지 정부가 나서서 간섭하면 안 된다”고 밝힌 뒤부터 정부 안에서의 언론개혁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거의 사라졌다.

언론 무정책은 ‘또다른 유착’

자율, 더 정확하게는 ‘무정책’의 배경에는 남북관계 등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가질 경우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정부의 언론 무정책은 페어플레이라고는 없는 무법천지의 신문시장 현실을 외면만 할 뿐만 아니라 산적한 언론개혁 과제를 내팽개친 꼴이 됐다.

그래서인지 언론 무정책은 오히려 정치권력과 언론의 ‘또다른 유착’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는 최근 국세청에 보낸 질의서에서 “언론사에 대해 세무조사 면제라는 특혜를 베풀고 있는 것은 이를 대가로 언론으로부터 호의적인 대접을 받으려는 이른반 ‘신권언유착’을 꾀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림대 정연구 교수도 “재력이 뒷받침되는 몇개 신문사가 여론을 독점화하고 있는 현실은 정치권력의 언론탄압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낳고 있다”며 “신문자본의 무한팽창이 여론의 다양성을 저해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공정 시장행위는 족벌신문이 주도하고 있는 만큼 무정책은 그 자체가 거대 재벌언론 ‘봐주기’ 내지 ‘눈치보기’라는 것이다.

허약하기만 한 자율논리 속에서 언론개혁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는 칼집에 손조차 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10월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언론사 세무조사 면제에 대해 낸 공개질의서에 대해 국세청은 “언론은 공익성을 갖는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얼버무렸다. 공정위 또한 신문업을 공정거래법 규정에 끌어들여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자율이 우선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ABC(신문·잡지 발행부수공사기구)도 제대로 안 되는데 우리가 나서 봤자 제대로 되겠느냐”며 “신문업의 공정거래행위를 강제하는 특수법률을 제정하기에 앞서 신문협회의 자율규약이 먼저 지켜져야 한다”고 혼탁한 신문시장의 책임을 협회에 떠넘겼다. 게다가 현 정부는 그나마 있던, 신문판매의 과열·과당경쟁을 막기 위한 신문고시까지 규제완화 명분으로 폐지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난 89년 창립된 한국ABC협회가 11년이 지나도록 표류만 거듭하고 있는 등 자율에 맡겨진 언론개혁은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모든 중앙일간지가 이 협회에 가입은 하고 있지만 부수를 신고하고 있는 신문사는 한두개에 불과하다. 신문협회 역시 공정경쟁규약을 시행하고 있지만 어기고 위약금만 물면 그만이다. 지난 2월에는 오히려 수도권에 신문판촉 경품제공을 풀어줘 신문시장을 더욱 흐려놓기도 했다.

신문 공판제, 몇년째 제자리걸음

거대자본을 동원한 메이저 신문사들의 여론 독과점체제가 강화되고 있어도 정부의 팔장은 풀릴 줄 모르고 있다. 언개련 등의 요구에 떠밀려 국회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는 언론발전위원회(언발위) 구성도 앞날이 비관적이기만 하다. 언발위가 구성되면 △신문사의 경영상태 공개 △ABC제도의 즉각 시행 △편집권 독립 △신문공동판매제 시행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그러나 남경필 의원(한나라당)쪽은 “언발위를 족벌신문들이 달가워하지 않고 있는데다 신문사주들의 눈치를 봐서인지 여야 지도부나 국회 문광위원장도 꺼리고 있어 구성이 회의적”이라고 털어놓았다.

거대 신문의 자본공세를 앞세운 여론 독과점을 막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문공동판매제도 역시 시장 석권을 놓고 추악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메이저 신문사들의 거부로 몇년째 제자리걸음만 되풀이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림대 정연구 교수는 “프랑스의 공공배급제처럼 정부가 공익자금을 이용해 법적·제도적으로 신문공동판매회사를 설립해야 한다”며 “타율의 바탕이 없는 상황에서 자율의 이상적인 실현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게 지금의 신문시장이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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