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수준 따라 인터넷 사용 정도 9배까지 차이… 새 사회불평등 구조 고착화 요인으로

일용노동자인 마아무개(48·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씨는 지난 겨울 폐결핵이 악화되면서 일손을 놓았다. 설상가상으로 파출부 일을 하던 부인도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일주일에 겨우 한두 차례 일하고 있을 뿐이다. 생활이 어려워 생활보호신청을 했다. 그러나 아들의 컴퓨터 때문에 생활보호 대상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동사무소에서 컴퓨터 할부금을 갚은 사실을 알고 이를 근거로 소득을 추정한 것이다. 마씨는 “중학생인 아들이 컴퓨터를 사달라고 졸라 2년 전에 할부로 샀지만 돈을 낼 수 없어 형님한테 도움을 청해 할부금을 갚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사무소쪽에서는 “컴퓨터 할부금을 갚는다면 웬만큼 사는 게 아니냐. 먹고살기 어렵다면 어떻게 컴퓨터까지 들여놓을 수 있느냐”면서 생활보호신청을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저소득층이 정보화사회에 합류해서는 안 되는가? 그러나 분명 가난이라는 걸림돌이 앞을 막고 있다.
미국 인터넷 이용률은 20배까지 차이
정보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정보에 대한 접근과 이용 등에서의 격차가 심화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정보 격차)라 불리는 정보 불평등의 문제다. 정보 격차는 미국 상무부가 지난 98년 정보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표면화됐다. 지난해 7월 미국 상무부가 펴낸 정보 격차 보고서에는 미국 저소득층의 인터넷 이용률이 고소득층의 20분의 1에 불과해 정보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해놓고 있다.
한국정보문화센터가 올해 5월에 조사해 산출한 정보 불평등 지수는 가구소득 1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과 월소득 3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교육수준에 따른 대졸 이상 학력자와 중졸 이하 학력자 사이의 격차도 심각하다(그림 참조). 물론 인터넷PC 보급과 초고속통신망의 확대로 ‘양적인 측면’에서는 격차가 줄어들고 있기는 하다. 현재 우리나라 컴퓨터 보급률은 3가구 가운데 2가구꼴. 지난해 5월과 올해 5월의 인터넷 이용률을 비교하면 월소득 1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의 인터넷 이용률이 8.3%에서 3배 가까이 늘어 24.5%에 이르렀다. 이 기간 동안 월소득 400만원 이상 고소득자의 인터넷 이용률은 34.1%에서 53.4%로 늘었다. 얼핏 보면 소득에 따른 정보 격차가 상당히 해소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컴퓨터 보유 등 양적인 측면을 뛰어넘는 질적인 측면이다. 한국전산원 조정문 박사는 “컴퓨터를 얼마나 보유하고, 간단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느냐는 정도를 기준으로 정보 격차 문제를 보는 시각이 있다”며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가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한다.
양과 질의 간극은 직장과 학교에서의 컴퓨터 이용시간에서도 잘 나타난다. 직장과 학교에서는 중졸 이하 학력자가 대졸 이상보다 컴퓨터 이용시간이 오히려 2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학력이 낮은 이들이 주로 단순업무직이나 기술직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용시간은 많지만 컴퓨터 이용능력(정보역량)이나 PC통신 및 인터넷 사용 정도(정보이용)에서는 대졸자에 비해 9배 정도나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정보 격차에서도 질적인 차이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벤처기업에서 이런 차이는 곧 소득으로 직결된다. 상품 검색과 상품 가격을 비교하는 인터넷 업체에서 일하는 천아무개(30)씨는 “주엔지니어는 연봉 3천만∼4천만원을 받지만 보조 엔지니어의 경우에는 2천만원 안팎을 받는다”며 “웹마스터도 제작과 기획이 분리되어 컴퓨터나 인터넷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기획쪽이 훨씬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데이터베이스를 어떻게 설계하는지, 어떤 시스템 운영체계가 적절한지를 훤히 꿰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도 연봉에 큰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보 역량에 따라 소득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그나마 정보화사회의 첨단을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저소득층은 정보 접근에서부터 정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경험한다.
박아무개(14·인천시 ㅊ중3)군은 지난해 말 펜티엄급으로 컴퓨터를 바꾸고 초고속통신망을 설치했다. 그는 최근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을 땄다. 박군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가산점을 받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자격증을 따거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아가며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386컴퓨터를 사용해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컴퓨터가 없는 아이들의 소외감

같은 또래인 염아무개(14·서울시 ㅅ중3)군은 사정이 다르다. 그는 얼마 전 석가모니의 생애를 조사해 오라는 도덕 과목 숙제를 친구 집에서 해야 했다. 집에 컴퓨터가 없기 때문이다. 염군은 “숙제를 프린터에서 출력해 A4용지로 내야 한다”며 “컴퓨터를 잘 사용할 줄 몰라 친구가 인터넷을 뒤져 자료 찾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다”고 말했다. 학급 전체 인원 35명 가운데 컴퓨터가 없는 사람은 5명뿐이다. 어머니한테 컴퓨터를 사달라고 졸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중에 사ㄴ줄게”라며 미루고 있다. 염군의 어머니는 보증금 300만원, 월세 30만원을 내면서 탁자가 4개 놓인 분식점을 운영해 생계를 꾸려간다. 아들의 부탁을 들어줄 만한 여력이 없는 것이다.
민주당 정보화소외계층대책 정책기획단(위원장 김효석 의원)은 지난 10월12일 ‘(가칭)정보통신복지의 실현 및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특별법’ 초안을 논의했다. 여성과 고령자, 장애인, 저소득층의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한 대책이 포함된 법안으로 민주당은 올 정기국회에 이 법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김효석 의원은 “정보 격차 문제를 해소하려면 일과성 대책이 아닌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정보 격차가 해소되지 않으면 새로운 사회불평등 구조가 고착화될 위험이 있다”고 특별법 제정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정보 격차를 낳은 원인은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역으로 정보 격차가 기존의 사회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한국정보문화센터의 ‘2000 정보생활실태 및 정보화인식 조사’에 따르면 정보화에 따라 계층 격차가 줄어들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3.1%가 긍정적으로 답했고, 40.3%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지역·계층간 불균등한 정보 보유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66.2%에 이르고 있다. 디지털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는 것이다.
한양대 윤영민 교수(정보사회학)는 “정보 격차가 소득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입증할 만한 실증적인 연구는 아직 없다”면서 “그러나 미국 등에서도 정보 격차가 소득 격차를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과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 격차가 사회적 격차로 나타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라는 설명이지만 정보 불평등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의 강화를
정부는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저소득층 학생 5만명에게 PC를 무상으로 공급하고 전국의 우체국에 인터넷 플라자를 설치하고 있다. 시·군 단위에 지역정보센터를 설치하고 올해에는 읍·면·동사무소에 60개 정도의 인터넷 이용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한국전산원 조정문 박사는 “우리 사회도 상당한 수준의 정보화 기반시설이 이미 갖춰져 있다”면서 “정보 이용이나 정보 생산의 측면에서 볼 때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의 강화가 정보 격차 해소의 중요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상철 기자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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