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역사는 전염병과 함께해왔다. 정도를 달리할 뿐 숙명처럼 속수무책이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등 바이러스는 예고 없이 도시를 파고들었다. 관건은 1918년 스페인 독감, 1957년 아시안 플루, 1968년 홍콩 플루 같은 대유행을 막는 것이다. 이 또한 별다른 방법이 없다. 손 씻기, 마스크 착용, 기침 예절 등이 핵심이다. 정부는 학교(직장) 폐쇄, 환자 격리 등을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삼는다. 100여 년 전 스페인 독감 때와 다를 것 없다.
1월29일 확진자 4명출근길, 기자가 아이를 차에 태워 유치원에 들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외부인 유치원 내 출입을 전면 통제합니다.”
못 보던 팻말이 정문에 붙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스르륵, 문이 열렸다. 무심코 한 걸음 들어서는 순간, 교사가 “아버님!” 하고 웃으며 뛰어온다. 그제야 놀란 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마스크 너머로 죄송함을 전했다. 문틈으로 보이는 아이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1월31일 11명이틀 만에 확진자가 두 배 넘게 늘어났다. 일부 확진자 개인정보가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불안은 더 커졌다.
“안녕하세요. 유치원입니다. 어제 저녁 학부모님들께 ‘학구 내 보건소에 다녀간 환자가 확진자로 확인돼 병원에 격리 조치 됐고 지인 중 목격자가 있다는 내용’을 전해듣고 휴업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학교장이 직접 보건소에 방문해 어제 발생한 확진자는 우리 학교 학구와는 떨어진 관할 거주자로 이미 자가 격리자로 판정받은 뒤 시료를 채취했고, 확진자로 병원에 격리 조치 됐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확진환자는 인근 동네 거주자도 아니고 시료 채취를 위해 인근 보건소를 다녀간 사실도 없습니다.”
지역에서 벌어진 이틀 사이의 소동을 요약한 문자를 본 아내가 기자에게 묻는다. “괜찮은 거야?”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사스나 메르스처럼 어린이 감염 위험이 낮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된다”며 출근을 서두른다. 하나 마나 한 말을 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자는 하나 더 들어와 있다. 지역 문화체육센터의 블록교실 폐쇄를 알리는 내용이다. 아이와 함께 주말에 갈 곳이 줄었다.
불안은 종종 과도한 대응을 동반한다.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이 벌서듯 혼나는 일도 있었다. 교문 앞을 지키던 학교보안관이 아이를 세워둔 채 “너 같은 애 때문에 코로나가 전염된다”는 등 폭언을 쏟아냈다. 학교에서 마스크 착용 지시가 내려지기 전이었다. “내가 쓰고 갔어야 했나봐”라며 제 탓을 하는 아이를 보며 부모는 “내가 씌워 보냈어야 했다”고 자책한다.
서울의 한 지역 어린이 수영장은 2월 수강 문의 전화를 회원들에게 돌렸다. 전에 없던 일이다. “2월 한 달간 수영장에 보내지 않는 부모가 많다”며 “수영장에서 다른 회원의 타액 등 분비물을 접촉할 수밖에 없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전문가들은 수영장에서 감염될 확률은 낮다고 전한다).
불안은 도시를 잠식해갔다. 확진자가 늘어나는 탓이다. 이날 오후 1시 서울 용산구의 한 복합상영관.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다. 관람석 170석 규모에서 관객은 둘뿐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보는 내내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400만 명을 넘어선 영화로 휴일 관람객 수치고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이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무증상 감염’을 인정했다. 중국과 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 가능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중국 후베이성을 14일 이내에 방문하거나 머무른 적 있는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중국 내 확진자가 1만5천 명에 육박했다.
2월 4일 16명이날부터 서울·경기·전북 등의 유치원과 초·중·고교 336곳이 개학을 미루거나 휴교에 들어갔다. 시민들은 실제 위험보다 더 공포를 느낀다. 이날 국무총리 주재로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대응회의를 열어 “과학적, 의학적으로 제기되는 수준을 넘어 보다 선제적이고 과감한 방역 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
“어머니, (구청에서) 휴원 권고가 왔어요. 내일부터 닷새 동안요.”
박지수(38·가명)씨는 어린이집 원장의 전화를 받고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긴급보육이 있으니 보내셔도 괜찮다”는 말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휴원한 어린이집에서 혼자 놀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니 괴로웠다. 이미 10명 중 절반도 등원하지 않는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물었다. “우리 구는 확진자도 없는데, 왜 휴원해요?”
원장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구청에선 우리 어린이집 주변에 (중국인이나 재중동포가 많이 사는) ○○동, △△동이 있어서 그런지 (사태 초기부터) 신경을 많이 쓰더라고요.”
원장이 전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구청은 이웃한 중국인들 때문에 휴원 권고를 내렸다. 재난 상황에서 타자를 향한 전형적인 혐오와 배제의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위험에 대한 공중의 오해(Misperception)가 효과적인 위험 통제를 방해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종식 선언까지 정부가 싸워나가야 할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박씨는 구청의 조치가 이해하기 힘들었음에도 정작 반대하기 어렵다. 당장 아이를 챙겨야 한다. 결국 제주도에 사는 친정어머니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첫 사흘을 그렇게 보내고 남편과 하루씩 연차를 쓸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2월 5일 19명교실 졸업식, 온라인 예배 등은 2020년의 풍경으로 기록될 듯하다. 이날 오전 서울 ㄱ여고 졸업식. 정문 앞 꽃 파는 노점상이 보이지 않는다. 학교 정문은 학생 한두 명만 드나들 수 있을 만큼 개방했다. 학부모는 들어갈 수 없었다. 이미 학교 앱을 통해 졸업식 때 학부모들의 학교 방문 자제를 안내했다. 학부모는 학교 밖에서 자녀가 졸업식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졸업식은 각자 교실에서 자리를 지킨 채 진행됐다. 일부 고3 학생은 학교 쪽에 졸업식 행사를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교육청 방침”이라는 답변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기자는 6번째 확진자가 30년 넘게 다닌 서울의 한 교회를 찾았다. 마스크 끈을 단단히 여몄다. 그는 확진 나흘 전 새벽과 오전 예배에 참석했다(이때 만난 50대 여성은 21번째 확진자가 됐다). 1월30일 확진 판명이 난 뒤 교회는 주일예배(2월2일)를 취소했다. 1953년 설립된 이래 교회가 전염병으로 주일예배를 취소한 것은 처음이다. 교회 관계자는 “예배를 취소한 게 아니라 온라인 예배로 대체한 것”이라며 “확진자가 나와서도 그렇지만 (지난 메르스 때와 비교해) 교인들의 걱정이 많아서였다”고 했다. 정문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예방 행동 수칙과 함께 ‘문닫힘’ 팻말이 걸려 있었다. 교회 관계자는 “언제쯤 교회에서 예배를 볼 수 있을지 확언하기 어렵다”고 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인근 비슷한 이름의 교회는 확진자 여부를 묻는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6번째 확진자는 교회 인근 대형병원 격리병동에 있다. 병원으로 향했다.
“자, 이마를 내미시고요. 됐습니다.”
마스크를 쓴 병원 직원이 기자의 체온을 잰 뒤 녹색 종이를 내민다. ‘출입허가증(문진)’이다. ‘37.5도 미만 출입 가능’이라고 표시돼 있다. 37.5도가 넘으면 최근 14일 이내 확진자와 접촉한 적이 있는지,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를 물은 뒤 선별진료소로 안내한다. 출입허가증은 당일만 효력이 있다. 허가증 없이는 진료받을 수 없다. 확진자 3명이 있는 격리병동이 궁금했다. 출입 허가를 받아 들어선 병원은 예상과 달리 환자와 면회객으로 넘쳐났다. 감염격리병동은 본관 3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산부인과다. 분만장, 시험관아기 시술실, 신생아실 등의 팻말이 보였다. 복도에 선 면회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다. 신생아를 기다리는 그들의 표정에는 걱정과 설렘이 섞여 있다. 긴 복도를 지나 단기응급병동에 이르니 건너편이 격리병동이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로 철저하게 통제된다. 병원 관계자는 “현재 환자들의 상태는 양호하다”고 했다. 한 병동 근무자는 인터뷰를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그들은 또 다른 낙인을 우려했다.
2월 6일 23명확진자의 직장, 확진 직전 방문한 식당 등이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이날 오후 확진자의 근무지로 알려진 GS홈쇼핑이 주말을 포함해 닷새 동안 직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여론을 의식한 결과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카페 등에선 이미 오전부터 GS홈쇼핑 인근에서 누군가가 방역복을 입고 방제 작업을 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사업장 폐쇄는 남의 일이 아니다. 서울의 한 외국계 기업은 본사에서 나오기로 한 감사팀에 출장 대신 전자우편 감사로 대체하라고 통보했다. 본사 소재지인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확진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지금보다 더 심각해지면 한국 본사 근무 인력 중 일부를 지역으로 분산 배치할 예정이다. 한 건물에서 일하다 직원 중에 확진자라도 나오면 사상 초유의 ‘업무 마비’ 사태가 초래될 것을 우려한 특단의 조처다. 최근 모든 직원에게 “사무실에서 근무시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바이러스의 공포는 점점 더 깊고 빠르게 퍼져간다. 그만큼 정부의 조치는 즉각적이고 전면적이다. 확진자뿐만 아니라 그의 접촉자가 학부모로 있는 초등학교도 휴교에 들어갈 정도다.
잘못된 정보로 공포가 확산되기도 한다. 가짜뉴스는 연이은 정부의 엄단 조치 발표에도 끊이지 않는다. 2월6일 현재까지 경찰은 가짜뉴스와 관련해 온라인상 허위 조작정보와 개인정보 유포 행위 8건을 검거하고, 20건을 수사 중이다. 한 확진자 아내는 음성 판정을 받았음에도 온라인에 그의 근무지, 공공장소에서 열린 회의 참석 등의 정보가 가공돼 유통됐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임에도 “해당 건물 방문을 자제하라”는 주의사항을 읽은 이들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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