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지인들이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냉장고 속 남은 식재료는 고스란히 우리 집 냉장고로 이사를 왔다. 나의 슬픔과 외로움을 달래줄 몇 병의 와인도 함께 왔다. 한 달은 마트를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냉장고와 부엌 저장고가 꽉 찼다. 먹고살 걱정이 없어졌으니 이제 우리 가족은 ‘슬기로운 감금생활’만 하면 된다.
길면 한 달 이상 될 수도 있는 장기간의 ‘감금생활’을 대비해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아이들은 빨래, 남편은 요리, 나는 설거지와 청소를 하기로. 17년 전인 2003년에도 나는 베이징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비슷한 전염병인 사스를 경험했다. 그때는 혼자였고 지금은 가족이 생겼다. 혼자일 때는 몰랐는데, 가족이 생기니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아졌다. 사스 당시, 아이들과 가족을 데리고 황급히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인들을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그깟 전염병쯤’ 뭐가 무섭다고 그리들 호들갑을 떠나 했는데, 나에게도 아이들이 생기니 생각이 180도 변했다. 사람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는 게 ‘맞는 말’인 듯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랩과 휴지가 있는 엘리베이터</font></font>매일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물어봐주는 주민위원회와 질병관리위원회 사람들과도 그새 정이 들었다. 전화가 걸려올 시각에 잠잠하면 내심 그들의 안위가 걱정된다. 어떤 날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보이는 ‘인조인간’의 목소리가 우리를 ‘취조’할 때도 있다. 사람 목소리에는 감정이 있고 생략된 마음의 느낌표와 고유한 말투가 있지만, 인공지능 목소리에는 그런 모든 감정이 삭제돼 있다. “후베이에는 왜 갔나요? 교통편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체온은 몇 도인가요? 외출은 삼가고 있죠?”
우리 가족은 매일 하루 세 번 체온을 잰다. 체온 담당은 딸이다. 우리 중에 체온이 가장 ‘차가운’ 사람은 엄마인 나고, 가장 ‘따뜻한’ 사람은 딸이다. 모두의 체온을 재고 그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딸아이가 하는 말. “체온계도 사람을 알아보네. 엄마가 가장 차가운 사람이고 내가 가장 따뜻한 사람이야. 엄마는 와인을 마실 때만 조금 따뜻해지는 특징이 있지. 마음의 온도가 체온으로도 나타난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가뜩이나 우울감 쩌는 날들인데, 딸아이의 이 말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절로 웃음이 난다. 유머야말로 ‘전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생활의 최고 ‘면역력’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속해 있는 웨이신 단톡방이 매일 ‘불이 난다’. 평소에는 관리사무소의 업무 태만과 관리 부실을 욕하거나 ‘왜 주변 아파트가 우리 아파트보다 집값이 더 비싼가’라는 화제가 주를 이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벌어진 후에는 모든 대화 내용이 ‘위생 점검과 외부인 색출’에 집중됐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대화가 단톡방에 올라온다. 모두 ‘병균’을 피해 집에만 있다보니, 각종 SNS와 대화방에 집결하는 것 같다.
단톡방에서는 아파트 내 감염 차단을 위한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엘리베이터 내부가 가장 위험한 공간이라는 지적에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좋은 소독제를 쓰고 층 버튼 누르는 곳에 랩을 씌우는가 하면, 그것도 안심이 안 돼서 버튼 누를 때마다 사용할 휴지를 부착해놓았다. 인근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는 어떤 사람이 감염 위험 때문에 손으로 버튼 누르는 것도 무서워서 발로 누르는 모습이 감시카메라에 포착됐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바이러스들이 무서워서 어찌 숨은 쉬고 사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가장 큰 주민들의 걱정거리는 ‘외지인’과 ‘외부인’의 침투다.
1월30일을 기점으로, 베이징 내 거의 모든 아파트는 ‘봉쇄식’ 관리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각종 배달원이 무시로 드나들었고 외부인들도 자유롭게 출입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아파트로 통하는 출입구는 한 개만 남겨두고 모두 ‘봉쇄’했다. 유일한 출입구 앞에서는 중무장한 보안요원들이 체온계를 들고서 모든 출입자의 체온을 재고, 외부인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아파트에 합법적으로 세들어 사는 외지인과 외부인도 예외는 아니다.
춘절 기간에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외지인들은 바로 ‘자기 집으로’ 가지 못하고 외부에서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한 뒤, 병원에서 ‘이상 없다’는 건강진단서를 받아야지만 들어올 수 있다. 사스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누구의 동의도 필요 없는 ‘비상권력’이 모든 사람의 인신을 옭아맨다. 하지만 사스 때와는 달리, 스마트폰과 각종 SNS의 발달로 바로바로 각지의 소식들이 유통되다보니, 이런 ‘황당한’ 일들은 가끔 ‘성난 여론’에 항복하기도 한다. 합법적인 자기 집도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 조치는 며칠 뒤 바로 철회됐다. 후베이나 우한 지역을 제외한 지역에서 춘절을 보내고 온 외지인은 발열 증상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가서 2주 동안 자가격리만 하면 된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이나 세입자가 아닌 외지인과 외부인 그리고 배달원 등은 출입이 금지됐다.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작은 상점들도 주민들에 의해 며칠 강제 영업중단을 당했다. 주민들 단톡방에서는 종일 아파트 단지 내 상점들의 영업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채소와 과일, 부식거리를 파는 상점 주인들은 모두 외지인이다. “우리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는 모든 외지인은 어딘가에서 바이러스를 갖고 들어올 우려가 있다. 세들어 사는 외지인이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조사해서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아파트 외부에 거주하는 상점 주인들과 직원들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출입을 금하고 가게도 강제 영업중단 조처를 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우리 아파트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이처럼 거의 만장일치 분위기로 관리사무소에 ‘영업중단 조치’를 건의하기로 했다.
다음날, 우리 집 바로 밑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이 강제 영업중단을 당했다. 그와 동시에 아파트 동대표와 몇몇 주민이 가가호호 방문해 ‘호구조사’를 했다. 질문은 이랬다. ‘베이징인이냐 외지인이냐, 집주인이냐 세입자냐, 우한이나 후베이를 간 적이 있느냐.’ 매일 밤, 호구조사 결과가 주민들 단톡방에 공개됐다.
“몇 층 몇 호에는 남자만 네 명 사는데, 모두 출신 지역이 다른 외지인이다. 두 명은 춘절에 베이징에 있었으나 나머지 두 명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같이 사는 다른 남자 두 명의 성질이 보통이 아니다. ‘우리는 우한이나 후베이에 간 적도 없고 다른 동거인들도 그 지역 출신이 아니다. 제발 좀 우리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이들에게 세를 준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세입자 관리를 좀더 철저하게 하라고 해야겠다.” 우한이나 후베이에 간 전력이 있는 우리 집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전염병은 몸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과 인간성도 박멸하는 악성 바이러스다. ‘내부인’과 ‘외부인’을 구별하고 내부인이 아닌 모든 외부인을 ‘문 밖으로’ 몰아내는 보이지 않는 ‘악마’다. 시진핑 주석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악마’라고 불렀다. 그는 ‘악마를 숨어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인민들과 함께 그 악마를 몰아내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본인은 ‘악마의 소굴’인 우한에 2주가 넘은 지금까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이 베이징에 웅크리고 있으니 ‘악마들’이 더 용기를 내서 창궐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위대한 지도자’ 시 주석이 설마 ‘그깟 전염병 악마’가 무서워서 못 가는 것은 아닐 테고, 틀림없이 다른 중요한 업무들로 시간을 못 내는 것이리라.
한국으로 돌아간 베이징 지인들과 다른 교민들도 ‘외부인’ 취급을 당하는 건 마찬가지다. 어떤 교민들은 한국에서 자기들이 이렇게 ‘극혐’을 당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서운해했다. 베이징 교민들 맘카페에는 급히 한국으로 돌아간 뒤 당한 갖가지 경험담이 올라왔다. 대부분은 돌아간 뒤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급히 병원에 갈 일이 있는 교민들은 뜻밖에도 진료 거부를 당하거나 바이러스 취급을 당한다고 한다. 병원에 가서 의료보험증을 내밀면, 전산망에 출입국 기록이 뜨는데 만일 2주 내에 중국에서 왔다는 기록이 나오면 바로 병원 알림판에 빨간색 경고등이 켜진다는 것. 그러면 병원에 있던 환자들과 내원자들이 소리를 지르고 혼비백산해서 난리가 난다고 한다. 경고등이 켜지자마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와서 ‘조용히 밖으로 나가달라’고 요청하며 소문이 나면 곤란하니 다른 병원으로 가거나 2주 뒤에 다시 오라고 한다는 것.
한 달 이상 베이징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서 아이를 근처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했던 어떤 엄마의 푸념은 더 서글프다. 관계자가 반갑게 웃으며 맞았다가 ‘중국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자리 없다’며 나가줄 것을 요구하더니 온 어린이집 내부를 소독하더라는 것. 혹시라도 동네 엄마들에게 소문 나면 큰일 나니 절대로 우리 어린이집에 다녀간 일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말이다. 이해는 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며 ‘자국민인 우리도 이런 취급을 당하는데 중국인들은 오죽하겠냐’며 그제야 비로소 ‘외부인 또는 타자가 된다는 것’의 정치사회적인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느꼈다고 한다.
백인들의 세계는 아시아인을 ‘바이러스 덩어리’라고 차별하고 한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중국인을 ‘바이러스’ 취급 하며 인종차별을 한다. 공통점은 ‘우리만의 내부 세계’는 외부 바이러스 요인이 침투하면 안 되는 ‘무균실’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 모든 사람은 겉으로 ‘우리의 적은 바이러스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이웃과 이웃 나라 사람을 ‘적’으로 격리하기 시작했다.
잠깐 장을 보러 마트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공원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나와서 산책과 운동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쬐는 햇볕은 스펀지 케이크처럼 부드럽고 폭신하며 고급 스위스제 초콜릿처럼 달달하게 온몸으로 스며든다. 이제는 장갑과 목도리를 두르지 않아도 춥지 않다. 날이 따뜻해져서인지 매화와 목련 나무에는 벌써 꽃망울이 올라와 있다. 봄이 머지않은 것 같다.
한 가족이 손에 손을 잡고 나란히 서서 마스크를 쓴 채 사진을 찍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로 어린 손녀가 ‘해피하게’ 브이 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다가 그만 할머니가 뒤로 꽝 넘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지나가던 나도 그렇고 그 가족도 잠시 멍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일어나지를 못했고 주변에서 산책 중이던 아들이 급히 달려오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손녀는 그 옆에서 ‘할머니 죽으면 안 된다’며 훌쩍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행복하게 사진을 찍던 그 가족은 한순간에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중국 인터넷 웨이보(블로그)에도 비슷한 글이 올라왔다. 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일상이 한순간에 비극이 돼버린’ 우한에 사는 세 가족의 사연을 담고 있다. 그 글에서 잊히지 않는 한 장면. 열이 나는 아버지와 함께 우한의 한 전염병 지정 병원에 가서 검사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에 복도에 놓인 긴 의자에 한 늙은 남자가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오랫동안 기다리느라 지쳐서 잠깐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뒤 간호사가 와서 ‘여기 이렇게 누워 있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 남자를 손으로 툭툭 건드렸는데, 알고 보니 이미 사망한 지 몇 시간이 지났다는 것. 그 남자는 아직 확진자로 분류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통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이런 말을 했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라고. 하지만 그 남자는 ‘통계에도 포함되지 못한’ 죽음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감염과 죽음이 통계에 포함되거나 포함되지 못하는 것일까. 차가운 숫자로 표시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걸까. ‘오늘 전국적으로 몇 명의 확진자가 더 늘어났고 사망자는 몇 명입니다’로 시작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 한켠에 오싹한 슬픔이 밀려온다.
우한에서 혼자 가죽 공방을 운영하는 중국인 친구는 매일 자신의 SNS에 짤막한 ‘봉쇄 일상’이 담긴 심경을 올린다. 2월5일 그는 자신의 모멘트(타임라인)에 양파 한 자루와 시들어가는 대파 몇 개, 음료수 한 상자 그리고 그 옆에 꽃잎이 만개한 붉은 튤립 화분이 놓인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남겨놓은 짧은 한마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의 위험성.’ 붉게 만개한 튤립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일상도 어느 순간 ‘박살 날 수 있다’는 경고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그의 공방과 일상을 봉쇄했듯이 말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위기를 기회로 삼는 사업가들 </font></font>예정대로라면 2월3일 춘절 연휴가 끝나고 정상적인 일상이 시작돼야 했다. 하지만 베이징시뿐만 아니라 전국 대부분 주요 도시에서 연휴가 일주일 더 연장됐다. 연장된 연휴가 끝나도, ‘조건을 갖춘 회사들은 될 수 있으면 재택근무를 하라’는 권고가 내려졌다. 춘절 연휴가 끝나면 도시와 도시 간 대규모 이동으로 또 한바탕 ‘확진자 규모’가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한을 거쳐서’ 온 뒤로 잔뜩 겁을 먹은 남편도 2월 한 달 동안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한다. 더군다나 사업상 접촉하는 사람들이 고향인 후베이 지역 출신이 많다보니, 말은 안 해도 서로가 접촉을 꺼리는 눈치다. 모든 업무와 회의는 휴대폰과 영상통화로 이루어진다.
베이징 교육부에서도 공식 통지문이 내려왔다. 2월17일로 예정된 공식 개학이 연기되고, 수업은 당분간 집에서 ‘인터넷 강의’로 대체한다고. 학생들의 모든 단체활동과 외부활동도 금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스 때도 했던 똑같은 말로 끝맺음을 했다. ‘수업은 중단돼도 공부는 중단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통지를 받은 아이들 얼굴에는 이미 ‘공부도 중단한다’는 회심의 미소가 어려 있다. 재난의 고통은 모든 엄마에게 ‘기쁨슬픔증’이라는 난치병까지 덤으로 얹어주는 것 같다.
사업하는 남편과 그의 파트너들은 온종일 전화와 영상통화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올해 중국 경제가 ‘죽을 쑬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지지만 발 빠른 사업가들은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며 ‘신사업 구상’에 여념이 없다. 2003년 사스 때도 중국 경제는 반짝 위기를 맞긴 했지만 ‘덕분에’ 지금의 알리바바와 징둥 같은 인터넷 물류 플랫폼 업체들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회가 됐다.
남편과 그의 사업 파트너들이 전화로 입에 침을 튀기며 하는 이야기도 바이러스를 기반 삼아 성장할 수 있는 신사업 분야다. (주워들은 얘기에 따르면) 가장 대표적인 분야로는 인공지능과 홍채 인식을 활용한 대규모 군체의 자동 열감지 장치와 중약성분 소독제 사업 및 바이러스 퇴치 관련 의약품 분야라고 한다. 베이징 지하철에 도입되기 시작한 홍채 인식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동 열감지 장치는 언제든지 지금처럼 대규모로 전염병이 확산될 위험성이 있는 환경에서는 충분히 ‘돈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전세계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 각종 공연장 등 대규모 인원이 밀집하는 곳에 그 인공지능 홍채 열감지 장치를 설치해놓으면 바이러스의 감염 루트를 추적할 수 있고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 중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투자 전문가들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여기저기 부지런히 전화를 돌린다.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죽이고 병들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업가들이 돈을 벌 기회를 잡는다는 게 어디 먼 나라 딴 세상 인류의 이야기로만 들린다. 하지만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로 판단되는 게 모든 정치가의 운명이니, 바이러스든 뭐든 어쨌든 경제는 살리고 봐야겠지.
이에 반해 여행업과 항공업, 식당 등 서비스 분야는 올 한 해 ‘암흑기’가 될 것이라는 ‘예보’가 줄을 잇는다. 평소에도 자주 가는 유명 식당 체인점 ‘시베이유?x춘’의 사장은 최근에 이런 절규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식당 영업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현재 남아 있는 현금 유동성과 은행 대출 등을 합하면 고작 석 달 치 정도의 임금밖에 지급할 수 없다.” 시베이유?x춘 같은 규모 있는 유명 식당 체인점도 이런 우는소리를 할 정도니 다른 중소 규모 식당은 어떻겠는가. 중국 정부는 이들 사업체에 몇 달 동안 임대료와 세금 감면 등을 하겠다고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에는 서비스업계의 대량 도산과 실직 사태도 ‘재앙적 수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중국 몇몇 항공업체는 이미 심각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외국인 승무원들을 일차적인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는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하이난항공에 근무하는 한 지인도 2월 한 달 동안 무급휴가를 강요받아서 ‘놀고 있는’ 상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 한 그릇의 양배춧국</font></font>“이 한 그릇의 양배춧국이 지금의 그들에겐 자유보다, 지금까지의 전 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솔제니친의 소설 를 보면, 갇혀 있는 수용소에서의 하루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한 부단한 ‘생존투쟁’의 시간이다. 한 끼의 식사는 수용소 안에서 유일한 삶의 목적이 되고 행복이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갇혀 있는’ 우리 일상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비록 ‘한 그릇의 양배춧국’에 목매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하루의 유일한 즐거움은 매끼 식사 시간뿐이다. 그 외에 달리 즐거움을 찾을 만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고민거리도 매일 자나 깨나 삼시세끼 메뉴다. ‘가택연금 2주째. 체온도 정상, 호흡도 정상, 음식도 정상, 하지만 체중은 이상이고 정신은 조금 실성한 상태.’ 바로 우리의 감금생활을 표현해주는 가장 정확한 유머다.
저녁 7시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전국에 동시 중계되는 뉴스를 시청한다. 예전에는 절대로 보지 않던 뉴스다. 아나운서는 매일 시진핑 주석이 참가한 회의에서 발표된 ‘중요 담화문’과 결정문을 10분 넘도록 지루하게 ‘낭독’한다. 그 지겨운 시간이 지나면, 뉴스는 분위기를 바꿔서 ‘전염병 퇴치’에 힘 쏟고 있는 전국 각지의 영웅 이야기를 소개하기에 바쁘다. 뉴스만 보면, 중국에는 온통 ‘뇌봉’ 같은 혁명적 영웅들이 전염병이라는 악마와 싸우면서 ‘꽃피는 봄날’을 준비하고 있다. 뉴스에는 비극도 희극도, 사실도 진실도 없다. 사스 때와 마찬가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에도 중국 언론은 여전히 영웅들을 만들어내기에 바쁘다. 바이러스라는 악마를 물리치면, 권력자들은 또다시 ‘모든 인민이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며 자신들의 치적과 공로를 자랑하기에 바쁠 것이다. 그리고 또 얼마 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중국몽’을 부르짖으며 태평성대를 노래할 것이다. 어차피 죽은 자들은 말이 없고 바이러스도 언젠가는 사멸할 것이기에.
그사이 입춘이 찾아왔고 베이징에는 2월 첫째 주에 큰눈이 연달아 두 번이나 내렸다. 올겨울에는 베이징에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눈이 많이 내리면 보통 상서로운 조짐이라고 여기지만, 올해는 모든 사람이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했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절대로 ‘눈장난을 치지 말라’는 당부도 하면서 말이다. 소복이 쌓이는 눈 위로 전염병 바이러스도 눈처럼 소복이 침전된다고 한다. 어쨌든 2020년 새해는 불길한 조짐으로 시작됐다. 먼 훗날, 사가들은 올해를 중국 ‘경자년의 비극’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베이징(중국)=<font color="#008ABD">글·사진</font> 박현숙 자유기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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