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통계)은폐된 289억3288만원
②(사례)막히고 또 막히고…산재 노동자 20명 심층 인터뷰
③(대안)산재는 당연히 산재보험으로
④(인터뷰)국민건강보험공단·고용노동부 인터뷰
⑤(희망)산재보험, 594개 사업장에서 265만개로
노동자들은 경미한 부상을 대부분 묻고 넘어간다. 개인 돈을 쓰든 건강보험이나 실비보험을 이용하든 스스로 해결한다.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으려면 상당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산재가 은폐되는 환경에선 큰 부상도 은폐되고 만다.
도대체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산재가 은폐될까. 주로 어떤 집단에서, 왜 산재가 은폐될까. 산재를 당하고도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지 못한 노동자는 어떤 일을 겪을까. 은 아름다운재단, 노동건강연대, 윤소하 정의당 의원실과 협력해 산재은폐를 처음으로 집중 분석했다. 산재보험이 ‘그림의 떡’이 된 원인과 해결책도 찾아봤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최초의 사회보험이 태동하다.” 고용노동부가 2014년 펴낸 에 적힌 내용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시행한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은 적용 대상과 범위가 꾸준히 확장됐다. 근로복지공단이 발표한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1966년 594개였던 적용 사업장 수는 2018년 265만4107개로 50여 년 만에 4천 배 늘었다. 같은 기간 적용 노동자 수는 85배 증가했다. 이는 산업환경·사업구조 변화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산재보험이 앞으로 더 혁신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1964년 시행한 산재보험은 56년 동안 적용 범위와 대상, 업종 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면서 사회보험 역할을 해왔다. 산재보험이 도입되기 전에는 작업 중에 발생한 산업재해 보상은 개별 사업주 책임이었다. 보상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고 민법상 과실책임원칙으로 사업주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쉬웠다. 노동자가 제대로 보상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산재보험은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청구하던 손해배상을 사회보험으로 대체한 사회보장제도였다. 노동자를 보호하고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할 수 있게 한 조처였다.
500명 이상 사업장에서 특수고용직까지 확대
산재보험은 1964년 처음 시행할 때만 해도 상시 노동자 수가 500명 넘는 광업과 제조업으로 적용 범위와 대상, 업종을 한정했다. 근로기준법 적용 사업장의 1%를 약간 웃돌았고, 노동자 수는 18% 선이었다. 하지만 산재보험 적용 규모는 1989년 획기적으로 확대됐다. 기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사업’에서 ‘모든 사업’으로 강화한 것이다. 2000년 상시 노동자 1명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적용 범위와 대상을 넓혔고 이후 노동자를 사용하는 중소기업 사업주, 자영업자, 일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사각지대에 있는 대상으로도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업종도 다양해졌다. 산재보험을 처음 시행한 1964년에는 적용 업종이 광업과 제조업에 국한됐다. 하지만 1960년대 전기가스업과 운수창고업, 건설업 등이 추가됐다. 1980년대는 벌목업, 농수산물 위탁판매 및 중개업이 포함됐다. 1990년대는 농림어업, 교육서비스업, 금융보험업 등으로 확대됐다. 2008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전부 개정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되면서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콘크리트믹서트럭 운전사, 골프장 캐디, 택배·퀵서비스, 예술인 등까지 범위와 대상이 넓어졌다.
급여 종류와 수준도 꾸준히 나아졌다. 우선 보험 급여 지급 대상 기준이 되는 요양 기간을 11일 이상에서 1971년 8일 이상으로, 1982년 4일 이상으로 단축했다. 1981년에는 장해연금과 유족연금을 인상해 국제노동기구(ILO) 권고 수준에 맞췄다. 1989년에는 평균임금의 60%에 불과해 재해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 지원책으로는 미흡했던 휴업급여를 ILO 권고 수준 이상인 70%로 끌어올렸다. 이후 요양·휴업·장해·유족급여 등 기존 급여에 간병급여, 직업재활급여, 진폐장해연금·유족연금 등을 도입하면서 급여 종류와 수준을 개선했다.
산재보험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사업주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2019년 특수형태근로노동자 특례 적용 확대 내용을 담은 산재보험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특수형태근로노동자의 노동자성이 강화되면 노동자 전환 요구 등으로 이어져 사업 운영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2017년 출퇴근 재해 산재보험 전면 도입 때도 경총은 보도자료에서 “출퇴근 재해는 대부분 사업장 밖에서 일어나는데 무분별한 신청을 막기 위한 충분한 검토가 없었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 산재보험에 상당한 재정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사업주 쪽의 논리에도 산재보험 영역은 더 커질 전망이다. 산재보험 적용 범위가 산재보험법 제정 때와 견줘 크게 확대됐지만 급변하는 사회환경 변화에 맞춰 사회보장제도 역할을 하는 산재보험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 고도화와 직종 다양화에 따라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자 범위를 넘어서서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뒤늦게라도 산재보험 문턱을 낮추고 인정기준을 개선하면서 일부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2018년 사업주 확인 제도를 폐지하고 노동자가 사업주 눈치를 보지 않고도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게 하자, 산재 신청 건수(13만8576건)는 최근 10년 이내 최대를 기록했다. 같은 해 작업(노출)시간, 노출량 등의 인정기준을 충족할 경우 사용자의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자 업무상 질병 인정률(63.0%)이 전년보다 19.1%나 늘었다. 양적 성장과 질적 개선이 함께 일어나면서 산재 노동자가 제때 적절한 치료와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재 은폐 막고 예방 위한 고민 필요근로복지공단이 2015년 발표한 ‘산재보험제도의 선진화를 위한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에 외부 연구진으로 참여한 정연택 충남대학교 교수는 에 말했다. “산재보험은 1964년 도입 이후 꾸준히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미가입 사업장의 적용을 확대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업주와 노동자가 복합적이 이유로 산재를 숨기고 있다. 이제는 산재은폐를 막고 산재 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한 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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